우리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한다고.
나는 들을 때마다 이해가 안 간다.
본인은 본인 인생 사시는 거고-
'나는 가난한 부모가 돼야지. 딸을 낳으면 불행하게 만들 거니까
돈을 안 가질 거야!', 라고 생각해서 돈이 없거나
혹은 '아 살기 귀찮아. 돈 안 벌어. 니들은 굶어 뒤지든지 맘 대로 해.'
라는 생각으로 돈을 벌지 않았거나-
라면 모르겠는데.
주어진 인생 사셨고,
평생 돈 버셨는데,
본인이 본인한테 미안하면 미안했지
나에게 왜 미안한 지 모르겠다.
나는 내 자식에게 나를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네게 온 것이고
내가 너를 낳았으니까.
내가 능력이 없어 안 됐기는 했지만
이건 우리가 운명 공동체인거지
내가 너에게 미안해야 할 일은 아니야.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
누구도 주지 못할 사랑을 줄 거야.
하지만 돈은 못 줘.
돈이 있는데 안 주는 것도 아니야.
없어서 못 주는 거야.
내가 돈이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니야.
누군가 돈이 많은 게 그 사람이 잘 살아서가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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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가 돈이 없는 건,
엄마 팔자가 못 났거나
엄마가 게을렀기 때문이 아니야.
자본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 수가 없어.
그런 세상이야.
엄마에게 무슨 자본이 주어졌어?
돈이 없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아?
게으르다는 뜻?
아니야.
욕심이 없어 착하다는 뜻?
그것도 아니야.
돈이 없다는 건,
자본이 없다는 거야.
돈은 자본에서 나와.
땅, 주식, 신분, 회사, 권력, 특수한 재능.
하다못해 인맥까지.
엄마한테 이 중 뭐가 있어?
엄마가 가진 건 노동력밖에 없어.
노동력을 가진 사람이 돈이 많다는 건,
누가 줬거나 훔쳤거나 둘 중 하나야.
이건 그냥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자연 법칙이야.
콩 심으면 콩 나고 팥 심으면 팥 나고.
콩 심어놓고 팥이 안 나와 미안할 필요 없는 거야.
그러니까 자꾸 나한테 부모 잘못 만나서 고생이란 말 하지마.
한 번도 돈 때문에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엄마가 한 '행동',
그걸 원망한 적은 있어.
그런데 엄마가 돈이 없는 걸 원망한 적은 한 번도 없어.
가지고 있는 사람이 쥐고 안 주는데
무슨 수로 가져?
돈이 있어야 돈을 버는데 돈 없는 사람이 돈을 어떻게 벌어?
우린 자본이 없어, 엄마.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가 가진 건 우리의 노동력 뿐이야.
그러면 돈이 없는 건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팔자 타령 하지마.
이건 그냥 불평등인 거야.
나는 이 불평등 격차를 줄이기 위해 노력할 거야.
그러고 싶어.
내가 가진 자본이 0인 이유,
이것이 자연 법칙인가?
불평등은 자연적인가?
전혀.
소유와 소유권이 제도인데
어떻게 빈부격차가 자연의 섭리야?
이건 사회 현상이야.
만들어진 거라고.
만들어졌다는 뜻은
바꿀 수도 있다는 거야.
나는 믿어.
점점 좁혀질 거야.
늘 불평등은 좁혀져 왔어.
그 사이는 조금씩, 조금씩
피를 흘리며 좁혀져 왔어.
나는 믿어.
그렇게 나아갈 거야.
그러니까 나는 엄마 원망 안 하고,
내가 가난한 원인이 엄마에게 있다고 조금도 생각 안 해.
나는 단지 내가 가져야 할 몫의 자본을 쥐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할 뿐이야.
일 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버냐?
더 부지런히 벌어라?
개풀 뜯어먹는 소리.
네가 돈 버냐?
돈이 돈 벌지?
나한테 돈 줘봐.
나도 너만큼 벌 수 있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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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열심히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의 돈을 다 뺏어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야.
적당히 해야 한다는 거지 적당히.
자기 몫들을 나눠가지면서,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다른 사람의 몫을 차지하면서까지 자신의 부를 늘리는 건
사회 전체의 건강을 해치는 거야.
자기 반경 50m의 물을 깨끗하게 만들겠다고
쓰레기는 밖으로 다 던지면,
전체는 어떻게 되겠니?
.
.
아 어쨌든 결론은 엄마 잘못 아니니까 어깨 펴라고.
용돈 못 줘도 상관 없다고.
이제껏 키워줬음 됐지 무슨 용돈이야 다 컸는데?
등록금 못 줘도 상관 없어.
못 주는 게 엄마 탓이야?
드럽게 비싼 등록금 탓이지.
그렇게 자꾸 자신을 탓하는 이데올로기에 물들지 마.
원인을 봐.
엄마가 못난 게 아니야.
못나게끔 만드는 구조가 실재해.
그걸 봐야 해.
그래야,
자유로워질 수 있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