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 학교 후기 졸업식이 있었다.
룸메 언니가 졸업을 해서,
꽃다발을 사들고 가서 축하해주었다.
전체 졸업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과별 졸업장 수여식에만 참석했다.
후기 졸업식 참석 인원은 얼마 되지 않아서,
졸업하는 학생들이 차례로 나와서 졸업 소감을 말했다.
그 뒤를 이어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보내는 자신들의 소감을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한 분, 한 분 돌아가면서 말씀을 하시는데
이상한 말씀을 하는 분들도 있었고,
재밌는 말씀, 감동적인 말씀들을 하시는 분도 계셨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이 있어서
일기에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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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졸업 소감을 이야기하면서 우는데,
왜 울까,
생각해봤다고.
아마 대학 생활이 가장 아름다웠고
앞으로의 사회 생활은 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
우는 게 아닐까,
싶었다고.
물론 우리가 졸업하고 맞닥뜨릴 사회적 상황이 힘든 것은 맞지만,
우리 학교, 그리고 우리 학과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쳐준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 어려운 순간에,
친구를 찾으라는 것,
이라고.
사람에 대한 믿음,
그게 있다면
앞으로 겪을 어려운 일들을 잘 이겨낼 수 있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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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이 들 때
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사회에서 실천하면서
수많은 벽과 부딪힐 때,
친구에게 전화를 하세요.
전화를 받아줄 거라는 믿음,
그리고 그 친구가 언제든 자신에게 전화를 하면 받을 거라는 그 믿음.
타인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자신감 있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어요.
우리가 가장 자신감 있어지는 순간,
엄마 앞에서입니다.
왜?
엄마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받아줄 거라는 걸 아니까.
그런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친구가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을 사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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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너무 소중한 말씀이다.
자신감은
우리가 많이 배워서
스펙을 많이 쌓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때
생기는 거라고.
그 말씀을 듣는데,
내가 1학년 때 이 교수님의 그룹 지도를 받을 때,
나눴던 대화가 생각났다.
당시 자존감에 대해 여러 고민이 많았던 나는,
한 학기 과정의 그룹 지도의 마지막 시간에 소감을 말하면서
이렇게 말했었다.
'대학에 와서 참 열등감이 많았다.
그런데 이 학교를 다니면서,
그리고 수업을 들으면서 그런 것들이 많이 사라졌다.
자신감이 생겼다.
내가 잘났다는 것을 깨달아서가 아니다.
잘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 때 교수님이
그걸 알았으면 이제 졸업해도 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땐 이해하지 못했다.
배울 게 산더미인데
겨우 저걸 알았다고 다 알았다니.
하지만 이번에 하신 말씀을 들으니
교수님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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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그런 믿음을 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무엇을 하든 받아주는 친구.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게 해주는
부모 이외의 내 사회적 관계의 원천.
그 친구에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사랑하는 법, 걱정하는 법, 관심을 표하는 법을 배운다.
상대방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
사과하는 법 역시 배운다.
그 친구가 있었기에
나는 다른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었던 거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아직도 그 친구를 다 믿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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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에게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내 전화를
반길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상대방이 반갑게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그 친구에게도
엄마에게조차도
전화를 하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신뢰를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사소한 곳에서,
아직까지도 내가 사람을 잘 믿지 못함이 드러난다.
내가 전화를 싫어하는 걸
단순히 통화라는 수단을 싫어한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교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
다시 한 번 생각이 바뀌었다.
나는 상대방이 전화를 받아줄 거라는 믿음이 없다.
무섭다.
전화를 받지 않을까,
반기지 않을까.
그 믿음을 키우기 위해,
전화를 걸어봐야겠다.
내가,
받아들여질 거라는,
믿음.
그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한 번더 깊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