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새로운 공장으로 들어갔다.
무슨 3D 안경을 만드는 곳이라고 했다.
집에서 조금 멀어지기는 했지만,
일도 굉장히 쉽고
밥도 맛 있고
무엇보다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좋았다.
감독이 돌아다니면서 작업 지시를 하지도 않고
그냥 같이 일 하는 사람 중에 좀 더 오래된 사람이 어떻게 하는 지 알려주기만 했다.
게다가 라인도 안 타서
뭐에 쫓기듯이 할 필요도 없었다.
갑자기 수출량이 많아져서
일감도 많아 잔업과 특근이 많은 것도 좋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같이 들어간 언니가 오늘 잘린 것이다.
차라리 언니가 문제여서 잘린 거였으면 나았겠다.
억울하지도 않고.
그런데 언니랑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느라 물량을 맞추지 못 하는 바람에
그 파트 사람들이 몽땅 잘린 것이다.
언니는 진짜 뜨거운 기계 때문에
쉬는 시간에 찬 물에 손 대 가면서 열심히 했는데.
전화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은근히 얘기했단다.
드디어 정착하나 했더니-
또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굉장히 아깝다.
언니가 내가 일 하는 파트에서 했으면 진짜 오래 일 했을텐데.
되게 열심히 하는 언니라는 거 안다.
생산직이 처음이라 잘 하지는 못 해도
적어도 웃고 떠들면서 농땡이 피울 사람은 아닌데.
공장도 너무했다.
관리자가 하는 일이 뭔가?
일 잘 안 하는 사람 봐뒀다가
골라서 자르는 건데.
그 파트를 전부 몽땅 잘라버리는 게 어딨어.
.
.
하,
암튼 그래서 일단 내일은 나 혼자 출근하고
모레 다른 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딱 한 번만 옮기고
거기서도 정착을 못 하면
진짜 다른 일 찾을 거다.
난 정말 텍사스를 가야 한다고.
내년에 복학도 해야 한단 말이야.
이제 좀 돈 벌어서
치과도 가고
라섹도 하고
그러나 싶었더니.
.
.
그래도 아깝다고 나 혼자 일하느니
언니랑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다.
공장이 좋아봐야 얼마나 좋다고-
어딜 가나 하루 종일 똑같은 일,
모르는 사람들 투성이에
그냥 부품 취급 당하는데,
조건보다는 맘 맞는 사람이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게
정신 건강에 더 좋다.
게다가 여기보다 더 좋은 곳에 면접봤다가
거기서 언니만 나오라고 했는데도
언니는 안 나가고 나랑 같이 여기로 온 거다.
그러니까 나도 이번에 언니랑 같이 다른 곳으로 옮겨야지.
어쨌든 확실한 건
서비스업보다는 생산직 쪽이 지금은 훨씬 더 하기 쉽다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일을 하고 집에 와도
탈진 상태가 아니다.
카페는 6시간만 하고 와도
1시간은 누워있어야 기력이 회복된다.
계속 손님들 신경쓰고
매니저 눈치 보고
억지 웃음 짓고
가식 친절 베풀고
진상 부리는 손님들 상대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모든 서비스업은 그렇다.
몸이 안 힘들어도
마음이 힘들어서 일 하고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된다.
그래도 생산직은
이대로 일 하다가는 어깨가 돌이 될 것 같이 아파도
그냥 어깨가 아픈 것이다.
쓰리디 안경이 나를 스트레스를 줄 것인가.
먼지가 나한테 해코지를 할 것인가.
그냥 마음 비우고 하루 종일 같은 일 하면서
앞에 다른 언니들이랑 얘기도 하고
혼자 이것저것 생각도 하고
그러다가 집에 오면 초코 과자 먹으면서 응답하라 1988 보면서 쉬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면 그만이다.
아침 여섯시에 일어나서 저녁 아홉시에 집에 들어와도,
청소기도 밀고 빨래도 하고 밥도 해 먹는다.
드라마 보느라 늦게 자서 아침에 일어나기 좀 힘들기는 하지만.
일만 일정하면 단기로 하기에는 생산직이 훨씬 나은데.
얼른 안정이 됐음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