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독일에서의 1년 반이라는 시간. 언어는 거북이 걸음을 하는데 시간은 너무 빠르다. 언어에 대한 절박함을 못 느껴서인지 자꾸만 게을러진다. 언제든지 떠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 언어는 정착을 하게 되면 그때 시작하자는 나만의 핑계를 일삼아 매일 일상을 영어로 대~충 뭉퉁그려 살고 있다.
그래도 일년 반동안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고 용감하게 새로운 도전을 했다. 독일기업에 우연한 인터뷰 기회가 생겨 면접을 봤다.면접을 대비하여 그동안 일을 어떻게 해왔는지, 개인적인 질문 혹은 추상적인 질문에 답변을 어떻게 할지 많은 시간을 들였는데, 정작 나이와 앞으로의 계획 등 개인적인 질문은 하나도 없이 경력에 대한 질문과 회사에 대한 나의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한국 기업같이 딱딱한 분위기가 아닌 카페에서 처음 본 사람과 적당한 시간동안 약간의 긴장과 함께 얘기한 기분이었고, 내가 이 회사에서 뭘 해야 하는지, 내가 알아둬야 할 점은 무엇인지, 보고 체계는 어떻게 되는지 궁금한 점도 모두 다 물었다. 별로 큰 기대가 없었다. 그냥 외국 기업에 면접은 이런거구나.. 하고 떨어져도 좋은 경험으로 받아들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도 면접 본 몇 시간 후 바로 합격 통보가 왔다.
단 기간 프로젝트라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던 회사를 옮기는 것은 도전이었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었다. 여기서 언제 한국으로 돌아갈지는 모르지만, 외국 회사의 시스템을 경험하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서 하고 싶었다. 해외에 있는 한국 기업은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해외 노동법이 있지만 한국 근무 환경으로 일하길 원하고 막대한 업무량은 사는 곳이 해외인지 한국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차라리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생활하는 한국이 더 나을 듯하다. 합격 통보를 받고 난 후 고민도 하지 않고 퇴사 통보를 하고 비자를 변경하여 지금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
아직도 회사에 첫 출근한 날은 생생하게도 기억에 난다. 점심시간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어찌 동양인은 나 한명인지, 그 흔한 인도 사람도 없다. 다들 나를 한번씩 쳐다보는 것 같고 외계어보다도 이상한 독일어가 귀에서 웅웅 울리는데 차라리 일하는 게 낫지 점심시간이 다가오는 게 싫었다.
지금은? 하루 하루가 행복하다. 업무량도 한국에서 일 했을 때보다 많지 않다. 다른 동료들은 힘들다고 하지만 여러 프로젝트를 한번에 맡아 했었던 업무량에 비하면 나한테는 널널한 업무량이다. 일년에 거의 한달 가까이 있는 휴가도 있고, 오버타임은 이 업무량으로는 할 수도 없다. 가끔가다 퇴근 후 동료들과 했던 술 한잔이 그립고 왁자지껄한 골목이 그립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내 시간을 즐길 수 있다.
외국인도 다 사람이고 외국 회사도 사람들이 일하는 곳이다. 생김새와 문화. 언어가 달라도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더라. 내가 한번 더 웃어주고 같이 나누다보면 적대심은 사라지고 어느새 내 개인적인 얘기도 공유하게 된다.
지금은 내가 걷고 있는 길도 보이고 주위에 나무, 새, 떨어지는 낙엽들도 보인다. 시간의 변화가 모두 눈에 들어온다. 사람과 시간에 치여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나 자신에서 벗어나 나와 주위도 살피는 여유와 마음을 가진다. 이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하루 하루를 내가 얼마나 즐기고 감사하고 있는지 매일 되새김질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