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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정서적 상호작용   치유일지
조회: 2447 , 2017-04-23 04:47

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등의 프로그램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한다.
전공은 사회학이지만 심리학에서도 배울 것들이 많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 프로그램은 각각
사람의 심리와 동물들의 심리에 대해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잠깐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보는데,
공격적인 성향을 보이고 한 가지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왔다.
부모를 공격하고, 욕을 하고, 성(性)과 관련된 주제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문제는 그런 행동들이 적절히 조절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본인도 본인의 분노를 절제하지 못해 결국은 자신의 몸에까지 상처를 입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결론은 맞벌이를 하는 부모에 의해 방치된 탓에
건강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배우지 못했고,
아버지의 폭력적인 훈육과 어머니의 지나치게 감정적인 반응들로 인해
아이는 건강한 정서적 교류를 배우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조절 능력을 담당하는 뇌마저 충분히 발달되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양측 부모 모두 일을 하고,
게다가 아버지는 밤에 일을 하고 낮에는 잠을 자기 때문에
아이를 돌봐줄 현실적인 여건이 안 되는 상황에서,
부부의 양육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먼저 나의 이목을 끌었지만,

어쨌든 또 하나 내가 집중했던 부분은
바로 '정서적 상호작용'이었다.
나는 내가 관계를 맺는 방법이 조금 이상하다고 늘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친구도 많고, 사람들과 있는 것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뭔가 하나가 모자라다는 느낌? 

프로그램을 보면서 깨달았다.
나는 자라면서 제대로 정서적 상호작용을 경험해본 적이 없다는 점?
사람과 어떻게 관계 맺는 지 잘 모른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늘 생각을 했었는데,
어렸을 때 그런 경험을 한 기억이 별로 없다.
부모가 먼저 내게 좋은 감정을 표현한 적도 없고,
그렇다고 내 쪽에서 그렇게 한 적도 없다.
내가 한 모든 감정표현은 분노와 슬픔,
그러나 그것들조차 받아들여진 적은 별로 없었다.
무시와 배신, 억압의 연속.

그런 성장 환경 속에서
학교와 또래집단, 다른 확대 가족들, 가족 바깥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 덕분에
도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대학에 들어온 이후로는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느낌을 늘 묘하게 받았었는데
드디어 답을 찾은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정서적인 교류라는 걸 한다.
단순히 관계 안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그 관계에 대해서 소통한다.
우리 관계는 이런 것 같다, 나는 너에게 이런 걸 원하고 저런 걸 원하지 않는다, 등등.
나는 그런 게 뭔지 잘 모른다.
해본 적도 별로 없고.

사실 그런 걸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와서
없이 사는 게 훨씬 편하다.
그리고 아마 내가 연애가 굉장히 불편하고,
하기 싫어하는 이유도 여기에서 비롯된다는 결론을 잠정적으로 내렸다.
사실 남자가 싫어서라고 하기는 어렵다.
연애는 여자랑도 할 수 있는 건데
그렇다고 내가 여자랑 연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내가 연애라는 것을 떠올렸을 때 
가장 먼저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나 느껴지는 감정은
상대방에 대한 것들이 아니다.

감정적인 부담이 가장 크다.
늘 누군가를 신경 써야 하고,
누군가의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고,
맞춰야 하는 것들이 나는 너무 힘들고 익숙치 않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으니까.

부모가 내게 기대하는 감정적인 것들은 깔끔히 무시하며 살았다.
그들도 내게 사랑을 기대하긴 했다.
좀 더 살갑게 대하라거나, 연락을 자주 하라거나 그런 것들을
내게 요구하기는 하지만,
나는
'뭐라는 거야'
라며 늘 무시해왔다.

생각해보라,
나를 때리고 성폭행하는 사람이
'아빠한테 좀 살갑게 대할 순 없겠니?'라고 하는데
내가 그 말을 들어야겠는가?
나 참 어이가 없어서.
늘 콧웃음만 쳤다.

엄마도 마찬가지.
늘 싸우면 우리를 버리고 도망가고 - 물론 지금은 엄마 역시 무서웠다는 걸 이해하고,
가부장제의 피해자라는 점이 보이지만, 
어렸을 때는 그런 것들은 커녕 그저 밉기만 했다-,
내가 성폭행을 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조치를 취하지 않았(못했)던 것들에 대한 원망이 커서,
늘 엄마에게 역시 마음을 열지 못했다.


.
.


그래서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정말 편하고,
물론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 역시 좋고 
같이 무언가를 하고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깊은 정서적 교류를 한다는 게 익숙하지가 않다.

그러니까 당연히 연애란 게 이상하지.
내가 그동안 하지 않아왔던 것들을 갑자기 하는 건데.
친구 관계는 그럭저럭 유지할 수 있다.
그런 감정 교류가 조금 느슨하니까.

그런데 연애는 다르다.
갑자기 시작되는 그런 감정 교류의 호수를 
내가 감당하기가 쉬울 리가.

다시 프로그램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가족 솔루션을 진행하면서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그동안 때려왔던 것에 대해 사과하고
앞으로 때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는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가 사과를 하는데,
아이가 갑자기 아버지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당연히 잘못한 행동이나,
동석했던 전문가가 이런 첨언을 했다.

'이 아이는 이렇게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상호작용하는 게 너무 어색한 아이다.
지금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그것이 폭력으로 표출된다기보다는,
그냥 감정의 문을 닫아버리거나,
피해버리는 것으로 표현되지만
어쨌든 그 뿌리는 같다.

나는 진지하게 마음을 터놓는 것이나,
정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것이 어색하다.
배워본 적이 없어서.


.
.

뭔가 답을 하나 찾은 거 같아서 속이 시원하다.
물론 뭐가 문젠지에 대한 답이지,
어떻게 하면 될 지에 대한 답은 아니지만.
이제 그것도 찾으면 되지!

자, 
그러면 어떻게 하면 정서적인 상호작용을 배울 수 있을까?

연애?
이 답은 너무 막막하다.
이 문제 때문에 연애하기가 힘든데
연애를 통해 배워야 한다는 건 마치,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서는 경력이 필요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느낌.

동물이나 아기와 교류해보기?
아무튼 조금 더 공부해보고 방법을 찾아봐야지.
26살인데 다시 키워내야 하는 부분이 참 많다.
후아 
그래도 정말 잘 하고 있으니 편하게 생각하기!

정서적 상호작용과 관련한 고민을 좀 해봐야겠다:)


기쁘미   17.04.23

아 그런데 저는부모님과 정서상호작용 잘하고 자랐다고 생각하는데도 사람관계가 부족한거보면 참 제가ㅈ더모지리같아요

HR-career   17.04.24

제 전 여자친구도 애정결핍에 힘들어하던 사람이었는데, 고아원에 봉사활동을 가서 자주 돌봐주라고 했었는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을 열고 교류하게 된다는 건 남을 위한다는 건 결국 나를 위하는 것이더라구요.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