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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145 , 2003-06-24 03:43 |
아는 사람만 아는 나의 병적인 우울증이 찾아왔다.
나 원래 우울한거 딱 질색에다가 우울한거 즐기는 변태 아니다.
근데 갑자기 그 검은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걍 길을 걷다가도 눈물이 후두둑 흐른다.
세상 모든게 비관적이고 의미가 없고 무기력해지다가 살아있는거 자체가 쪽팔려진다.
살아있는게 쪽팔린거 이거 참 난감하다.
이 거대한 등치를 한번에 죽일 수도 없구 살아있자니 공간을 차지하는 육체자체가 거추장스럽고 귀찮아죽을 지경이다.
이게 전조가 별루 있는것두 아니구 갑자기 미칠듯이 밀려오면 진짜 대책 안선다.
길가다가 땅바닥에 눕고 싶고 눕는 즉시 그대로 내 몸이 식용유같이 녹아서 바닥보다 작은 분자로 스며버렸음 좋겠다.
전철에서 부터 갑자기 눕고 싶은 기분이 밀려오더니 여의도역을 빠져나가는 계단에서부터 눈에서 2% 부족한 액체가 나 대신 바닥에 눕는다.
그쳤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는데 이런 죽고 싶은 우울증에 사로잡힌 애가 우산을 쓰는건 왠지 안어울리는거 같아서 걍 조금 맞고 걸었다.
아무래도 싶어서 우산을 켜보니까 기분이 좀 나아졌다.
여의도 광장을 들어서니까 넓은 공간과 더불어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보며 사진 몇장을 찍었다.
몰두하면서 하늘의 기운을 받으니까 기분이 좀 더 나아졌다.
늘 가던 그 길을 지나 가는데 낯익은 비린내가 느껴졌다.
비오는 날은 원래 비린내가 나긴하지만 이건 다른 종류의 비린내다.
냄새란 기분을 환기시키는 좋은 매개다.
요새 계속 비린내의 정체와 성분과 원인을 머릿속으로 더하고 빼기를 해오던 참이라 반사적으로 비린내를 묵상하기 시작했다.
세상을 이루는 모든 냄새는 비린내의 서로 다른 쟝르이거나 비린내의 변형이거나 비린내의 근원이거나 비린내가 섞인 일종일거라고 억지 분석을 해오고 있었다.
그래서 비린내가 포함되지 않은 냄새가 존재할까를 찾기 위해 줄곧 냄새를 관찰해 오고 있었다.
지하도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의 성분속으로 들어가면 둔탁한 비린내가 존재한다.
맑은 공기중 산소의 청결한 냄새중에 비린내를 얇게 저며 곱게 바른 냄새가 난다.
사람의 피부에는 톡쏘는 암모니아로 가리운 뽀송한 비린내가 난다.
특히 물기묻은 거의 모든 것들에선 연하고 보드라운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는 보통 날카롭고 예리하며 깊기 때문에 가볍게 지나기엔 앗~ 비린내!라는 구체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떠오르게 하는 강한 존재감을 가진다.
그 존재감을 찾아 숨겨진 비린내의 1인치를 분석해오던 지난 몇주간을 돌이켜 오늘에야 비린내의 완성도를 높이는구나 생각하며 상처처럼 뾰족한 비린내에 기분을 환기시켰다.
기분이 우울한걸 조금 잊어먹었다.
가는 길에 늘 한나라당을 지나치는데 그 앞은 늘 전경 아그들로 말뚝을 쳐놨다.
비옷을 입은 전경 아그 몇명이 이상한 삽질 중이었다.
아니 비오는 날 왠 물청소래?
저게 신종 얼차롄가??
열심히 비맞으며 물호스를 뿌리는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그만 소리내서 혼자 웃어버렸다.
가까이서 보구선 물청소의 정체와 비린내의 정체를 한꺼번에 알아버렸다.
바닥에 이리저리 껍질과 엉켜서 노릇하게 엉켜있는 점액들은 닭의 알이었다.
내가 오기전에 무슨 일이 있었던거지.
한나라당이 또 무슨짓을 한거지.
아니 사실 별 관심없다.
문제는 정경아그들의 비오는 날 물청소가 날 웃게 만들었다는거다.
아이러니한 웃음이지만 여의도역을 빠져나오면서 시작된 호르몬의 반란들이 그대로 웃음속에 누워버렸다.
난 다시 그 재밌는 광경들을 내 디카프리오에 담고 수업에 들어갔다.
영혼을 담는 카메라, 강한 알약보다 좋은 호르몬제.
불의나라왕자와물의나라공주
03.08.05
정말 ...........
글을 잘쓰시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