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641 , 2004-09-19 15:36 |
거미숲은 잊혀진 영혼들이 사는 곳이다.
그 곳에는 자신을 다른 기억속에 이식시키기위해 기다리는 잊혀진 영혼들이 떠돌고 있다.
왜 그렇게 기억받고 싶은걸까.
기억이 존재해야만 자신의 실체를 인정받을 수 있는걸까.
기억속의 내가 없어도 내가 존재한다면 존재하는거잖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있었다라는 명제가 변하는건 아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자신을 기억시키기 위해 그렇게 울면서 긴시간을 떠도는거야?
그럼 그 기억은 옳은 실체야?
비틀린 기억속의 나라도 그게 그렇게 중요해?
점점 더 느끼는건데 기억과 실체는 거의 같지 않다.
그냥 비슷할 뿐이다.
기억도 주관적인것이라 같은걸 보고도 다 다른걸 기억시킨다.
학교다닐때 색채학시간에 교수님이 여학생들의 립스틱을 여러개 수집해서 책상위에 올려놨다.
한가지 색깔을 지정해서 기억시킨뒤 다른 립스틱색깔 사이에 섞어놓고 아까 보여준 색이 어떤건지 맞출 수 있겠냐고 물었다.
대부분의 학생이 헷갈려하며 갸웃거렸다.
같은 립스틱 색깔은 하나도 없는데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는 것에 깜짝놀랬다.
기억이란 정말이지 나를 속이기 가장좋은 능력인것 같다.
그 기억이 정확하면 정확할수록 확신하면 확신할수록 나는 거짓속에서 살게 되는 양이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능력중에 하나가 순발력과 기억력이다.
난 아주 끔찍한 기억력을 가졌다.
내 기억력을 스스로도 무시하고 있기에 뭐든 기억하려고 애써 노력하지 않음 대부분은 기억력 밖으로 튕겨나가버린다.
농담처럼 [내가 바로 살아있는 메멘토의 주인공이야..]라고 떠벌리며 내 기억력을 남에게도 기대하지 않게 만들었다.
그래서 누구와 얘기끝에 내가 기억하고 있는게 정확해서 우기다가도 상대방의 큰 목소리에 금방 누그러진다.
나 자신도 내 기억력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래서 정확한 기억력의 소유자들을 부러워하고 그런 기억력을 갖고 싶었다.
그런 우격다짐에서 이겨보고 싶어서라는 유치한 발상에서 시작된 욕심이었지만 살다보면 기억력한계때문에 불편한게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매일 다니는 강의실이 5층인지 4층인지 갈때마다 고민하는건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밤새 술마시고 함께 놀던 친구랑 헤어지고 그 친구 얼굴이 기억이 안나는건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내겐 기억보다는 느낌이 더 정확한거 같다.
기억은 안나지만 느낌은 남아서 아는 사람일꺼 같을때가 있다.
그럴땐 느낌에 의존해서 기억하지 못함을 무마하곤한다.
하지만 느낌을 정확하게 소통하기 위해선 기억이 필요하다.
구체적인 기억의 능력이 정확한 표현으로 이어지니까.
느낌만 가지고는 소통할 수단이 없다.
하지만 기억은 때론 느낌을 약하게 만든다.
기억은 한두가지 인상적인것만 골라서 기억하지만 느낌은 순간의 100%를 흡수하니까.
한두가지 강렬한 기억때문에 나머지 느낌들은 잊어먹는다.
하지만 느낌을 간직하려면 역시 기억이 필요하다.
기억은 거의 주관적인 거짓이기때문에 할 필요가 없는가.
바로 주관적인것 때문에 기억이 필요하다.
나만의 주관을 갖기 위해 필요하다.
타인의 기억속에 내가 어떤 주관으로 인식되었는지 확인할때 필요하다.
타인이 자신을 잃어버렸을떄 확인시켜 줄때 필요하다.
난 잠시 너에게 잊혀졌나.
난 잠시 나에게 잊혀졌나.
내가 나를 잊어먹었을때 다른 사람의 주관을 잠깐 빌릴 수 있어서 기억이 필요하다.
내가 나를 확인하는데 다른 사람의 기억이 필요하다.
내 주관과 틀린 기억이라도 그 기억의 주체가 나이기 때문에 필요하다.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기억받고 싶다.
말해줘...
널 기억해...
그리고 한마디를 더 붙여주면 좋겠어.
내가 어떻게 널 잊겠니.
그 기억이 비록 네 주관으로 물들인 너만의 것이라도 넌 나를 그렇게 기억해주고 있구나..
내가 나를 잊으면 나를 다시 기억시켜줘..
내 안의 너에 대한 오해도 네 기억으로 바로 잡아줘.
그렇게 서로를 자신에게 기억시키는 도구가 되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