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239 , 2004-12-29 14:05 |
어디에 속하는, 그것도 지속적으로, 뺄 수 없는 곳에 속하게 되는 것에 지구멸망같은 두려움을 갖고 있다.
그것이 어디가 됬든 나는 종신형을 선고받은 느낌이다.
난 내가 지구에서 이 땅 어디에 소속된 사실도 시시때때로 부인한다.
삶을 싫어하고 죽음을 동경하고 내가 외계인일거라고 스스로 믿게끔 한다.
그치만 뻔하다.
난 내가 죽음에 속하고 외계에 속하게 되면 그것도 싫어질거다.
[현실 도피]
이 네글자는 나같은 겁쟁이에게 늘 따라다닌다.
난 늘 현실 도피속에서 종신형을 산다.
그리고 무엇도 거부한다.
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을 미워한다.
사랑으로 나를 자신에게 속한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사랑으로 날 덮으면 난 세상에서 제일 무기력해진다.
나를 사랑하는 자여.
당신은 사실 나의 공룡같은 미움을 받고 있소.
사랑을 거두고 내게 상처를 안기지 마오.
같은 이유로 결혼이 싫다.
내 살아온 방식과 생각을 송두리째 바꾸는 행위다.
난 정신적인 창녀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디라도 속하게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즐긴다.
어디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 누구나 나를 건드려주길 바란다.
결혼이란 안정된 테두리속에 갖혀서 `남의 영역`으로 제한되어지기 싫다.
누구나 나를 쉽게 건드려 주길 바란다.
하지만 그 누구나도 사실은 내가 선택한 누구나다.
그 누구나가 날 쉽게 껄덕거려 주면 좋겠다.
내가 결혼이란 안정과 정착에 뿌리 내리는 날
나는 평생 창녀처럼 살아온 육체의 자유, 정신적 부자유를 버려야 한다.
정신의 부자유는 육체의 한없는 자유의 댓가다.
육체의 자유 대신 정신은 너무나 넓은 자유의 영역안에서 방황한다.
종로도 갈 수 있고 영등포로도 갈 수 있고 차라리 청량리로 내뺄 수도 있는 나침반 한가운데가 자유일까.
아니다. 그건 부자유한 방황이다.
하지만 난 방황을 즐긴다.
내 발걸음이 어디라도 옮길 수 있다는 가능성을 사랑한다.
실제로 내 발길은 어디도 옮기지 못해 발만 구르는데 나는 그걸 가능성의 불안정으로 보고 무척 즐거워 한다.
안정!
난 안정이 싫다.
안정 그것만큼 사랑해본 적이 없는 것도 없다.
내 피는 내 핏줄안에서도 길을 잃고 서로를 못알아 보는거 같다.
무슨 피가 한 방향으로 도는 법이 없냐.
무엇과 무엇의 혼혈이길래..
그렇게 상충하는 핏줄은 동분서주 나를 옮기우게 요동치는데 난 그것을 자유롭다고 생각하고 무척이나 방황의 고통을 사랑하고 있다.
2004년 03월 0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