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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슴이따뜻해지는 이야기]전화상담원   미정
조회: 5570 , 1999-12-14 18:42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여러 이웃들 중에서 거의 첫번 째로 전화를 설치했다. 광택이 나는 참나무 전화상자가 층계참 벽면에 단단히 부착되던 그날의 일을 나는 똑똑히 기억한다. 상 자 옆에는 반짝이는 수화기가 매달려 있었다. 105번. 나는 그때 의 전화번호까지도 기억한다
나는 너무 어려서 전화기에 키가 닿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전 화기에 대고 대화하는 것을 호기심에 차서 듣곤 했다. 한번은 엄 마가 나를 번쩍 들어올려 출장 중이신 아버지와 얘길 나누게 해 주었다. 그것은 마술 그 자체였다!

얼마 후에 나는 그 경이로운 장치 속 어딘가에 굉장한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여성의 이름은 '전화 안내원' 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모르는 건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없었다. 엄마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들의 전화번호를 물을 수 있었다. 또 우리 집 시계가 고장났을 때도 안내원은 즉각적으로 정확한 시간 을 알려 주었다.

이 수화기 속의 요정과 내가 첫 번째로 대화를 나눈 사건은 엄 마가 이웃집에 놀러간 사이에 일어났다. 지하실에서 연장 통을 갖고 놀던 나는 그만 망치로 손가락을 후려치고 말았다. 아픔을 참을 수가 없었지만 아무리 울어도 소용없을 것만 같았다. 집에 는 내게 동정심을 표시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나는 욱신거리는 손가락을 빨며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계단이 있는 곳까지 이르렀다. 그때 전화가 눈에 띄었다. 아, 그 렇다! 나는 재빨리 거실에 있는 앉은뱅이 의자를 낑낑거리며 층 계참까지 끌고 올라갔다. 의자에 올라선 나는 수화기를 들어 귀 에 갖다댔다. 그리고는 내 머리보다 약간 위쪽에 있는 전화기 송 화구에 대고 "안내원!" 하고 불렀다.

찰칵 하는 소리가 한두 번 난 뒤 작지만 뚜렷한 목소리가 내 퓌에 대고 말했다. "안내원입니다!" 나는 전화기에 대고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다쳤어요. 엉엉 ." 이제 들어 주는사람이 있으니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안내원이 물었다. "엄마가 집에 안 계시니?" 나는 계속 엉엉 울면서 대답했다. "집엔 나밖에 없어요." "피가 나니?" "아니오. 망치로 손가락을 때렸어요." 그녀가 물었다.

"집에 얼음통이 있니?" 난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럼 얼음 한 조각을 깨서 네 손가락에 대고 있으렴. 그럼 아 픔이 가실 거야. 얼음 깰 때 조심하구." 그러면서 그녀는 부드럽게 타일렀다. "이제 그만 울어 . 괜찮을 테니까."

그 사건 이후 나는 무슨 일이 있기만 하면 전화 안내원을 찾았 다. 내가 지리 숙제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젼 그녀는 필라델피아 가어디쯤 있고오리노코 강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었다. 그 낭만적인 강에 대해 들으면서 나는 이 다음에 어른이 되면 꼭 그 강을 탐험해 보겠노라고 결심했다. 또 그녀는 내 산수 공부를 도 와 주었으며, 전날 내가 공원에서 잡아온 애완용 얼룩다람쥐가 과일과 열매만을 먹는다는 것도 가르쳐 구었다.

또 우리집에서 기르는 애완용 카나리아 새가 죽었을 때도 나 는 안내원을 불러 그 슬픈 소식을 전했다. 그녀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어른들이 흔히 아이들을 달랠 때 하는 말로 나를 위로했 다. 하지만 아무리 해도 난 슬픔이 가라앉지 않았다. 그토록 아 름다운 노래로 온 가족에게 기쁨을 주던 새가 왜 갑자기 깃털이 수북이 빠진 채로 새장 바닥에 죽어 있어야 하는지 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내 큰 슬픔을 눈치챈 듯 조용히 말했다. "폴, 노래 부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돼."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다소 진정이 되었다. 다른 날도 나는 전화기에 매달렸다. 이제는 귀에 익숙해진 목 소리가 "안내원입러다. " 하고 말했다. 나는 물었다. "(붙이다)를 어떻게 써요?" "벽에 붙이는 걸 말하니 , 아니면 편지를 부치는 걸 말하니? 벽 에 붙이는 것일 때는 (붙-이-다)라고 써야 해."

그 순간이었다. 나에게 겁주는 걸 광적으로 좋아하는 두살 위 의 누나가 계단에서 점프를 하며 내게 덤벼들었다. 그리고는 "우 히히히!" 하고 귀신처럼 고함을 질렀다. 나는 놀라서 앉은뱅이 의자에서 넘어졌다 그 바람에 수화기가 전화통에서 떨어져 버 리고 말았다. 우리는 둘 다 겁에 질렀다. 안내원은 더 이상 나타 나지 않았다. 나는 내가 수화기를 잡아뽑는 바람에 그녀에게 상 처를 입힌 것이 아닌가 몹시 걱정이 되었다.

몇 분 뒤 어떤 남자가 현관에 나타났다. "난 전화기 수리하는 사람이다. 저 아래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안내원이 너희 집 전화에 문제가 생겼다고 알려 주었다. " 그 남자는 내 손에 들려져 있는 수화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난 거니?" 난 그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걱정마라. 일이 분 정도면 다시 연결할 수 있으니까."

그가 전화통 뚜껑을 열자 전선줄과 코일미 미로처럼 연결된 내부가 드러났다. 그는 수화기 코드블 이리저리 만지고는 작은 십자 드라이버로 나사 몇 개를 조였다. 그리고는 후크를 몇 차례 누르고 나서 전화기에 대고 말했다. "여보세요. 나 피터요. 105번 전화는 이제 아무 이상 없어요. 아이의 누나가 아이를 미는 바람에 수화기 코드가 전화기에서 빠진 것뿐예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끊은 뒤 내 머리클 쓰다듬고는 밖 으로 나갔다 이 모든 일이 태평양 북서 해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났다. 그러다가 내가 아흡살이 되었을 때 우리집은 대륙 건너편의 보 스톤으로 이사를 갔다 나는 내 가정교사를 잃은 것이 못내 아 쉬웠다. 안내원은 옛날에 살던 집의 나무상자로 된 그 낡은 전 화통 속에만 살고 있었다. 나는 왠일인지 새로 이사간 집의 거 실 테이블 위에 놓인 날렵한 새 전화기를 시험해 볼 마음이 나 지 않았다.

하지만 사춘기가 되어서도 어렸을 때의 그 대화에 대한 기억 들이 한 번도 내 곁을 떠난 적이 없었다. 종종 인생에 대한 의심 과 불안한 순간들이 닥쳐을 때면 나는 전화 안내원에게서 올바 른 해답을 들었을 때 느졌던 그 안도감과 마름의 평화를 회상하 곤 했다. 그녀가 얼마나 많은 인내심과 친절한 마음을 갖고 한 어린 소년을 대해 주었는가를 깨닫고 나는 뒤늦게나마 감사한 생각이 들었다.

몇 해가흘러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다시 미국서부로 가던 도 중에 내가 탄 비행기가 시애틀에 도착했다. 나는 다른 비행기로 갈아탈 때까지 30분 정도의 시간이 밤아 있었다. 나는 당시 그곳 에서 아이의 엄마가 되어 행복한 결흔 생활을 하고 있는 누나에 게 전화를 하면서 15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옛날에 살던 고향 마을의 전화 안내원에게로 다이얼을 돌 렸다. 그리고는 "안내원 부탁합니다. " 하고 말했다.

기적처럼 , 나는 다시금 그 작고 뚜렷한 목소리를 들을 뿌 있었 다. 내가 너무도 잘 기억하고 있는 바로 그 목소리였다. "안내원입니다. " 나는 미리 그럴 계획을 갖고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자신도 모 르게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붙이다)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주시겠써요?" 한참 동안 침묵이 있었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대답이 흘러나 왔다. "지금쯤은 손가락이 다 나았겠지?" 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아직도 옛날의 당신이군요.그시절에 당신이 내게 얼마 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아마 당신은 모르셨을 거예요. 이걸 꼭 말 씀드리고 싶었어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 시절에 네가 나한테 얼마나 중요한 존재였는지 넌 아마 몰 랐을 거다. 내게는 아이가 없었지 . 그래서 난 언제나 네가 전화 해 주기를 기다겼단다. 내 얘기가 참 바보처럼 들리지?"

그렇지 않았다. 전혀 바보처럼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난 그렇 게 말해 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나는 지난 여러 해 동안 내가 얼마나 자주 그녀를 생각했는가를 말했다. 그리고 첫 학기를 마 치고 방학 때 누나를 만나러 올 텐데 그때 다시 전화해도 되겠느 냐고 물었다.

그녀는 말했다. "물론이지. 네 전화를 기다리고 있을께. 샐리를 찾으면 돼." "그럼 안녕히 계세요, 샐리 ." 안내원이 이름을 갖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게 들렸다. 난 말했 다. "다음 번에 또 얼룩다람쥐를 만나면 과일이나 열매를 먹으라 고 말해 줄께요." 그녀가 말했다. "그렇게 하렴. 난 네가 오리노코 강을 탐험할 날을 기대하고 있으마. 잘 지매라. 안녕."

정확히 석달 뒤 나는 다시 시애틀 공항으로 돌아왔다 다른 목 소리가 대답했다. "안내원입니다. " 나는 샐리를 바러 달라고 부탁했다. "샐리의 친구인가요?" 나는 대답했다. "네, 아주 오래된 친구죠." "그럼 안 좋은 소식이지만 말씀드려야 할 것 같군요. 샐리는 지난 몇 해 동안 시간제로만 여기서 일을 했답니다. 건강이 좋치 않았기 때문이지요. 샐리는 5주 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 하지만 내가 전화를 끊기 전에 그 여자가 말했다. "잠간만요. 지금 전화 거신 분 이름이 빌리아드라고 했나요?" "네 ." "샐리가 당신에게 전해 주라고 메시지를 남겼군요. 짤막한 메 모를 남겼어요." 나는 얼른 알고 싶어 물었다. "무슨 내용이죠?" "이렇게 적혀 있군요. 제가 읽어 드실게요. (빌리아드가 전화 하면 이렇게 전해 주세요. 나는 아직도 노래 부를 다른 세상 있다는 걸 믿는다구요. 그렇게 말하면 무슨 뜻인지 알 거예 요.) 이게 전부군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샐리가 한 말이 무슨 뜻 인지 나는 알았다.

폴 빌리아드

www.phpschool.com 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가슴이 찡해져서 이글을 올립니다.

프러시안블루_Opened   12.01.09

운영자님
참 좋은 글입이네요.
생각없이 공개일기 마지막 페이지부터 읽어오다가 운영자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땐 지금보다 훨씬 젊으셨겠죠?
PHP를 열심히 공부하고 계셨을거구요

문득 공개게시판에 올려져 있는 18,000개의 글을 모두 읽어 보고 싶다는 욕심이 드네요..

운영자   12.01.10

^^ 네 훨씬 젊었죠.. 제가 73년생이니까 이때가 27살이었네요.. 햐~~ 사실 지금은 그 시절에 대한 감도 가물가물하것 같아요.. ㅠㅠ
저도 최근에는 모든 공개일기를 읽는것은 아니지만 불과 2-3년전까지만 해도 모든 일기를 읽었습니다. 충격받은 글도 있고 사람들 즐거워하고 고민하는일이 별반 다르지 않구나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요즘은 관리에만 신경을 쓰는 편이고 예전같은 그 어떤 그런 호기심이랄까? 어떤 에너지랄까 그런게 없는것 같습니다. 저도 이제 확실히 젊은 나이는 아니라서 그런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아직 마음은 20대 같은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