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조간신문에서 3년전에 모셨던 상사의 근황을 읽었다.
높은 사람일수록 성격이 (더럽게) 급하다는 그간 경험에서 그는 예외였다.
온화했고, 화를 내는 법도 없었다.
금요일엔 싸이클 복장으로 출근을 해서 까페 회원들과의 모임때문에 5시에 퇴근을 하곤 했다.
한마디로 딴 세상 사람같았다.
그의 퇴근후에도 우리들은 일과의 반만큼 더 일했다.
"ㅇㅇㅇ가 큰일" 이라는 더 높은 분의 혼자말을 열심히 받아적은 수행 비서가
"ㅇㅇㅇ건에 대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여 보고 할 것"이라는 오더를 즉각 내렸으므로........
더 높은 분은 "ㅇㅇㅇ이 큰일"이라고 하루에도 몇번씩 중얼거렸으나,
그게 큰일 이라는게 모르는 직원은 아무도 없었다.
결국, 혼자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으나
깨달음 하나는 주었으니 "중국 나비의 날개짓이 대한민국 소시민의 가정을 깰수도 있다"는 것.
밤 10시.
참다못한 직원이 말했다.
"부장님, 죄송한데요, 오늘 집에 일이 있어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그는 자신이 속한 조직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이 돌아가는지 몰랐을까?
정권이 바뀌며 내려온 낙하산이었으므로 어쩌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난 그가 싸우고, 바꿔주길 바랬다.
우연한 근황 기사에 "필론의 돼지"를 떠올린다.
"필론의 돼지"는 현자가 아니다......................
2.
필론이 한번은 배를 타고 여행을 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나자 사람들은 우왕좌왕 배 안은 곧 수라장이 됐다.
울부짖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뗏목을 엮는 사람…….
필론은 현자(賢者)인 자기가 거기서 해야 할 일을 생각해 보았다.
도무지 마땅한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그 배 선창에는 돼지 한 마리가 사람들의 소동에도 아랑곳없이 편안하게 잠자고 있었다.
결국 필론이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돼지의 흉내를 내는 것뿐이었다.
- 이문열, "필론의 돼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