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머리를 너무 굴렸다.
밖으로 나가지 않고 집에서,
침대에 누워서,
다른 동작을 최소화하고,
뇌만 굴렸다.
가벼운 편두통이 올 정도로.
끊임업이 계산하고
계획하고
고민했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했고
세계와 삶에 대해 고민했다.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무래도 휴학을 해서, 시간이 남아돌게 되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처음이다.
계획에 속하지 않게 된 시간을 갖게 된 건.
의무교육이라는 것에 편입된 후부터
나의 시간들은 언제나 누군가가 정해준 큰 틀에 의해 굴러갔다.
학교 다녀라,
쉬어라,
다시 나와라.
오늘은 몇 시까지 수업이다,
무슨 요일까지는 수업이다.
일상은 커다란 틀에 의해 규정되고
내가 스스로 다룰 수 있는 것은
그 안의 작은 시간들 뿐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온전한 나의 시간과 마주했다.
그래
처음은 불안할 수밖에.
나는 동물이니까.
-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떤 부족의 누군가에게
"당신은 몇 살입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안 세봐서 잘 모르겠네요."
라고 말하며 웃더라.
저것이다,
싶었다.
2011년, 2012년
1월, 2월, 3월, 4월
1일, 2일, 3일, 4일, 5일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1시, 2시, 3시, 4시, 5시, 6시, 7시, 8시
18살, 19살, 20살, 21살, 22살, 23살, 24살
세어가며
또 세어가며 사는 나는
그가 부러웠다.
나는 저런 셈들이 중요한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안 셀 수는 없더라도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어
이 생각으로부터의 자유.
어서 무언가를 해야 해
젊었을 때 뭔가를 해야 해
이 압박으로부터의 자유.
아, 올 해는 어떻게 보내야지,
하는 계획으로부터의 자유.
-
이 강을 어떻게 건너지,
하는 계획은 좋다.
그런데 제발,
강의 폭을 분할해서
이 구간은 어떻게 건널까
이 구간은,
그 다음 구간은,
그 다음 다음 구간은,
하며 계획을 세우는 일에 목숨 걸지 말자.
강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해도 되겠지만
삶이라는 강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들 모두 이 강은 처음이니까.
그러니까
가보지도 못한 강을
어떻게 건널지 생각하기보다,
그냥
한 걸음 한 걸음
강을 건너가 보자.
내 바로 발 밑의 강바닥을 느끼면서
수심을 느끼면서
물살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
강을 건너가 보자.
그러면 어느새
강의 막바지가 다다라 있을 거야.
지나온 길의 기억 따위는 필요 없다.
다 왔으면
건너가 버리면 그만이야.
-
사는 것은 직물을 짜는 것과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직물을 짜려면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짜기 시작한다.
차근차근.
그리고 짜면서 어느 정도의 체크가 필요하다.
하지만,
성급한 마음에
지금 짜고 있는 부분이 아니라
다른 부분,
훨씬 더 앞부분을 미리 짜두면,
나중에 직물이 울어버릴 수도 있고
문양이 맞지 않을 수도 있다.
직물은 한쪽 방향으로 차근차근 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삶이라는 직물은
다시 풀 수 없다.
-
나는 무슨 까닭에선지는 몰라도
사람으로 태어났고
시간을 부여 받았다.
그냥 눈 떠보니 살고 있었고
살다보니 지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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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의 눈물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생물의 삶의 본질은 살아 있는 것이다.
펭귄도
혹등고래도
코끼리 해표도
살아 있으려고 산다.
나도 그냥 살아 있는 데에 집중하기로 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그리고 인간이기에 누리는
뭐 그 어떤 지성의 유희라든지
살아 있음과 죽음에 대한 자각이라든지
복잡한 문화라든지
사랑과 전쟁이라든지
그런 것들을 간간히 누리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염세적이 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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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또 감정에 귀찮은 침입자가 생기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런 건 내가 나한테 지는 것이므로 하지 않는다.
염세도 마찬가지다.
뭐, 가끔 염세적이 되어도 상관 없다.
나는 내 인생 손해 볼 결정은 안 한다.
그동안 잘 버텨왔으니
많이 치료했으니
가끔은 좀 쉬고
그냥 살아도 된다.
뭐랄까
나를 키우던 또 다른 나,
다른 나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근데 확실히 나는 두 부분인 것 같긴 하다,
아무튼 나의 내면의 엄마는 좀 쉬라고 두어야겠다.
나도
내 엄마인 나도
이제는 조금 지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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