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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일기장   deux.
조회: 3483 , 2012-02-05 12:15

형체가 없는 생각들이
마치 빛처럼 그 경계도 없이 자꾸만 머릿속을 떠돌아다니고
뒤엉켜 있는 미역처럼 전혀 정리가 되지 않을 때는
글로 적어서 정리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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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되었지만
언제부터인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데
나는 한 공책을 오래 쓰지 못한다.

필기 노트는 그래도 한 학기 꾸준하게 쓰는데
일기장은 도통 질려서 반 이상을 쓰지를 못한다.
다이어리도 몇 달 쓰다보면 질려버린다.
그렇다고 새로운 것을 사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내 마음에 쏙 드는 일기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트 폴리오라고 하나
그런 것도 내 마음에 쏙 들게 만들고 싶은데
그렇게 생긴 공책도 없고.

내가 번번히 하는 생각은
블로그나 홈페이지 처럼 
페이지를 썼다 지웠다를 간편하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내가 원하는 자료를 원하는 곳에
붙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리되지 않고 나돌아 다니는 프린트나 사진들을 보면 심란하다.
그리고 일기를 쓰긴 써야 하는데
일기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꾸만 울트라 다이어리나
노트북을 이용하게 된다.
어쩔 때는 줄공책에 쓰고 싶고 어쩔 때는 무지에다가 아무렇게나 쓰고 싶고
어쩔 때는 그림도 그리고 싶은데
줄공책에는 그게 안 된다.
그래서 속지를 만들어놓고 내가 쓰고 싶은 날 써서
적당한 두께가 되면 제본을 뜰까 생각도 해봤는데
모으기가 귀찮다.



"음, 어떻게 하면 내 마음에 쏙 드는 일기장을 만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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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내 마음에 쏙 드는 것이 있기는 할까?"

.
.

"왜 이렇게 일기장에는 빨리 질릴까?"


지금까지 내가 썼던 일기장들은 별로 남아 있지 않다.
다 버려버렸기 때문이다.
물건을 쌓아두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 탓에.
그나마 몇 권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고등학교 때 샀던 위로 넘기는 스프링 노트.
선홍빛. 심플한 디자인.
역시 앞부분밖에 쓰지 않았다.
넘기다 보면 정말 보기 싫은 부분이 나온다. 
전체 칸 중에서 위의 몇 줄만 쓴 날. 그리고 아랫부분은 텅 비어있다.
종이가 아깝다.
그렇다고 한 쪽에 이틀을 쓰는 것도 깔끔하지 못하다.
하루에 한 장씩, 이 깔끔하다.
나는 어떤 날은 일기를 폭풍 많이 쓰고
어떤 날은 한 두줄 쓰기 때문에 기복이 심하다.

-

그 다음 일기장은 갈색의 양장 공책.
역시 깔끔한 디자인.
TV나 블로그에 올라오는 예쁜 일기장을 따라해보겠다고 산 듯 하다.
하지만 양식이 딱딱 정해져 있는데다가
공책이 완전히 펼쳐지지 않아 왼쪽 페이지가 붕 뜬다.
나는 붕뜬 곳에 글씨 쓰는 것을 싫어한다.
오른쪽의 평평한 부분이 좋다.
이 공책은 앞의 몇 장밖에 쓰지 않았다.
코팅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줄 간격도 너무 작아 글씨를 쓰는 것이 답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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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택한 조그만 수첩 같은 일기장.
일기를 많이 쓰지 않는 날엔 공책이 아까우니
아예 작은 일기장을 사서 조금 쓸 날엔 조금 쓰고
많이 쓸 날엔 여러 장에 쓰자, 하며 샀던 것 같다.

역시 반도 못 썼다.
이 공책의 가장 큰 문제 역시 완전히 펼쳐지지 않는다는 것.
왼쪽 페이지가 붕 떠서 
아예 쓰지 않은 적도 많다.
하지만 그런 것은 종이가 아깝다.

-

그 다음 일기장은
정말 잘 펼쳐지는 500원짜리 제본 공책.
분홍색이긴 하지만 깔끔한 내지와
적당한 줄간격.
반 이상 쓴 유일한 일기장이다.
하지만 역시 남는 공간이 눈엣가시다.
그렇다고 날마다 일기를 꼭꼭 채워서 쓰는 것도
힘들다. 나는 정말 그날그날 다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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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다이어리 겸 일정 공책.
깔끔한 디자인과
360도로 펼쳐지는 것이 마음에 들어
비싼 가격을 주고 산 공책이다.
하지만 내가 쓰지 않는 공간이 많다.
이제는 겨우 달력칸만 쓰고 있을 뿐이다.
달력 앞 뒤로 남는 그 어마어마한 공간들이
자꾸만 거슬린다.
달력을 다 쓰면
많은 공간이 남아 있는 채로 공책을 버리게 되겠지.


그래서 A4용지에 쓰고 싶을 때마다 쓰고 싶은만큼만 써서
따로 모아놓은 것이 있는데
보기도 좋지 않고 별로다.

-

그러면 이제 내가 꾸준하게 잘 쓰는 공책을 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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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에게 남아 있는,
내가 거의 다 쓴 공책은 한 권이다.
1학기 때 쓰던 옆으로 넘기는 스프링 노트.
회색 빛의 깔끔한 디자인.
스프링이니까 당연히 360도로 펼쳐진다.
적당한 줄간격,
과 낭비 없는 공간.
한 학기 동안 질리지 않고 썼다.
하지만 과목별로 부분을 나눠 쓰느라
중간 중간 남는 공간이 많다.
그 부분을 보면 불쾌하다.

2학기 때 쓰려고 산 인디고 핑크빛의 공책은
과목별로 부분만 나눠놓고
한 두 장 밖에 쓰지 못했다. 
360도로 펼쳐지지 않을 뿐더러
1학기 때 쓰던 것처럼
공책 한 편에 핵심을 정리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1학기 때 쓰던 것과  똑같은 공책을 또 쓰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이면지에 필기를 했다.
그런데 그 종이들은 다 잃어버렸다.

-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것치고 
털었을 때 문제가 없는 것은 드물다.
무엇이든 
뚜렷한 이유나 목적, 용도 없이 반복되는 것은
비효율적이기 때문에
들여다보고 풀어낼 필요가 있다.

일기장에 관한 불만은
내가 아예 일기를 쓰지 못하도록 만든다.
정말 이 날을 기억하고 싶어서
일기를 쓰고 싶은데도
쓰고 싶은 곳이 없으니
쓰지 않는다.
그러면 그 날의 기억과 느낌은
기록으로 남겨질 기회를 잃고
휘발한다.

일기를 쓰는 것이 귀찮아서 쓰지 않는 것은 좋다.
일기를 쓰는 것에 관심이 없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다만 문제는
일기를 정말 정말 쓰고 싶음에도 불구하고
뭔지 모를 강박적 생각들 때문에 쓰지 못하는 것이다.
그 불만은 뱃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기 때문에
답답하다.

그래서 풀어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내가 일기를 쓰게 되건 말건
적어도
'일기가 정말 정말 쓰고 싶은데
일기장이 마음에 들지 않아'라는 이유로
일기를 쓰지 못하지는 않도록.


-


정리해보자면

1. 360도로 펼쳐지는 공책
2. 깔끔한 디자인
3. 적당한 줄간격
4. 낭비 없는 공간
5. 질리지 않게끔 다양한 양식(줄 없는 것, 줄 있는 것, 작은 것, 큰 것 등등)


이런 일기장이 나에게 필요하다.
가장 이상적인 일기장은
울트라 다이어리 같이
내가 일기를 써야지만 페이지가 생겨나는 것.
그리고 내가 쓰는 길이만큼만 페이지가 생겨나는 것.
그리고 내가 따로 모아둘 필요 없이 잘 모여져 있는 것.
사진, 동영상이나 음악은 잘 쓰지 않으니 그것까지는 필요 없다.



'그럼 그냥 울트라 다이어리나 노트북에 계속 쓰면 되잖아? 왜 굳이 아날로그로 쓰려고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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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편견이 아닐까? 글씨는, 일기는 종이에 펜으로 써야 한다는 고정관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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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를 인터넷이나 컴퓨터에 키보드로 쓰면 어때. 똑같은 일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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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아.
굳이 일기를 아날로그로 쓸 필요는 없다.

나는 일기를 정갈하게 정리하여 쓰지 않는다.
생각나는 대로 막 쓴다.
자동기술이라고나 할까.
그러면 속이 후련해진다.
좀 중구난방이 되긴 하지만 그 편이 오히려
그 당시의 감정을 잘 알 수 있어서 좋다.
그런데 종이에 펜으로 쓰려면 답답하다.
한정된 공간도 답답하고
좁은 줄간격도 답답하고.
그렇다고 줄 없이 쓰자니 비뚤어지는 건 또 못 보겠고.



하지만 마음은 공책에 글씨를 쓰는 것이 끌리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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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갖고 싶은 공책을 직접 만들어볼까?"


"그런데 그렇게 만들었는데 그것도 질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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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일단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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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 근데 뭔가 조금은 알 것 같아. 내 마음에 쏙 드는 일기장을 원하는 이유.
나는 뭔가 전시욕이 있어. 깔끔하게 딱 정리해서 꽂아놓고자 하는. 그리고 나중에 펼쳤을 때
감상하고 싶어 하는. 블로그나 카페에 포스팅 되는 그런 깔끔한 다이어리를 선망한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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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걸 굳이 내가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일기는 쓰는 게 목적이지 보는 게 목적이 아니다.
또한 남들에게 보일 것도 아니다.
오히려 숨길 물건이다.
그런데 굳이 제대로 만들고 싶어하는 이유가 뭘까?



아무래도 그 블로그 포스팅이 가장 큰 이유인 듯 하다.
정말 예뻐서 나도 저렇게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
하지만 손재주도 없고
그렇게까지 할만큼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정작 만들지는 못하고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채로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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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책 천국 같은 데 가서 내 마음에 드는 공책을 찾아볼까?
아니면 일기를 그냥 컴퓨터로 쓸까?



아, 이렇게 하자.
일기를 어디다 쓰느냐가 아니라
일기를 쓰는 '행위'에 집중하자.
하루에 한 번씩 일기를 쓰기로.
대신 정해진 곳 없이
그 날 그 날 쓰고 싶은 곳에 써보자.
한 달 동안.
그리고 내가 가장 편했던 곳에 계속 쓰면 되겠지.


아 몰라
일단 해본다.
알아서 되겠지.
생각 정리 끝.


유탄지   12.02.05

많은 부분에서 공감가는 이야기네요. 저도 매일 꼬박꼬박 일기를 쓰기 시작한 지는 4년쯤 됐는데, 몰스킨 노트, 굽네치킨에서 쓰는 소녀시대 다이어리-_- 등 이것저것 많이 써 봤습니다만,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구요. 저는 한 번 일기를 쓰면, 최대한 많은 것을 자세하게 쓰려고 하는 타입인데, 손으로 일기를 쓰다 보면 손이 아프거나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썼습니다. 그래서 결국 컴퓨터(MS 워드)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죠. 이것도 얼마나 가겠나 싶었는데, 결국은 1년, 2년이 지나고 그 버릇이 그대로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여러가지 시도해 보시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 꼭 찾으세요. ㅎㅎ

바나나우유처럼달콤한   12.02.06

공감되네요 ㅎ
울다에서 열심히 일기써보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