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 만화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만화다,
나는 로봇 만화는 별로다,
판타지가 아니냐,
하는데
나에게 있어서는 둘도 없는 만화다.
나도 로봇 만화는 별로 안 좋아한다.
판타지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에반게리온은 좋아한다.
그러니까 결론은
에반게리온은 로봇 만화, 판타지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는 이야기다.
내가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사는
'ぼくは ぼく'
.
.
'나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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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인공인 신지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로부터도 버림을 받았다.
그러다가 에반게리온이라는 로봇에 탈 파일럿이 필요하자
신지의 아버지 겐도의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에바에 타게 된다.
신지는 인공 지능을 가진 에반게리온과
놀라운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연이어 적들을 물리친다.
에바에 타는 것은 두렵고 힘든 일이지만
신지는 계속해서 에바에 오른다.
사람을 죽일 뻔 하고
자신도 죽을 뻔 하며
몇 번이고 더 이상 에바에 타지 않겠다며 도망치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와
에바에 타서 적과 싸운다.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왜 에바에 타는가?'
.
.
그리고 대답한다.
'내가 에바에 타면, 사람들이 나에게 잘 대해줘.'
'내가 싸우면 사람들이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줘.'
'내가 에바에 타서 적과 싸워 이기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반겨줘.'
.
.
'나는 에바에 타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어.'
.
.
마치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다.
나는 무언가를 잘 해야 이 안에 있을 가치가 있어.
내가 공부를 못 한다면
내가 운동을 못 한다면
내가 반장이 아니라면
나는 가치가 없어.
무엇이든 잘 하기 위해
무엇이든 자리를 하나 맡기 위해
노력하던 그 때.
자리를 맡지 못 하거나
무언가를 가장 잘 하지 못하면
한 없이 주눅들고
그 안에서 버티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신지의 모습이 곧 나였다.
과거의 모습이 아닌
지금도 내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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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마지막에 신지는 말한다.
'ぼくは ぼく'
나는 그냥 나 자신으로서 가치가 있는 거라고.
에바에 타기 때문에 있어도 좋은 것이 아니라
나이기 때문에 그대로 좋은 거라고.
'나는 여기에 있어도 된다고.'
.
.
어찌 내가 이 만화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저 대답을 얻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데.
나와 똑같은 남자 아이가
나와 똑같이 저 대답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마침내 얻어냈는데
내가 어떻게 가슴 벅차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내가 에반게리온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주인공이 로봇에 타서 싸우고 적을 쓰러뜨리는 게 주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비틀거리는 모습
고뇌하는 모습과
마침내 그것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에반게리온이 최고의 만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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