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8월 초, 더운 여름날.
이사하고 얼마되지 않았다.
원래 살던 동네까지 걸어서 15분.
친구와 만나 방학숙제를 하기로 했다.
아파트 단지 입구쯤 걸었다.
한 남자가 다가온다.
그 아저씨의 입에서 아빠 이름이 나온다.
아빠 친구란다.
아빠가 부탁했는데, 집에 뭘 가지고 가라고 아빠가 전화하셨단다.
집에 가고 있던 중이라고 그 아저씨는 말했다.
어른에겐 항상 예의바르게, 라는 교육.
아 그러세요, 그럼 같이 집에 가서 제가 찾아봐드릴께요.
그 아저씨는 여자아이가 그러길 바랬을 것이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새로 이사한 집은 아파트 단지에서 멀지 않는 주택.
1층엔 우유 대리점이었고, 2층이 여자아이의 집이었던 빨간벽돌 양옥집.
계단을 오르고, 아빠가 말씀하신게 뭐였어요? 라고 묻는다.
그리고서
집에 온 손님에겐 물 한잔이라도 내드려야한다는 엄마의 말씀을 기억하고서
냉장고에서 오렌지쥬스를 꺼내 투명한 유리잔에 예쁘게 내어온다.
그 아저씨는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많이 컸구나, 어렸을때도 예쁘더니 지금도 예쁘네, 라는 말을 한다.
웃으며 감사합니다, 라고 대답한다.
키가 많이 크구나, 아빠를 닮아서 그런가. 라며 여자아이의 손목을 잡고 침대로 이끈다.
12살 여자아이가 유린당한다.
소리를 지르고 울며, 하지말라해도 어찌할 수가 없다.
지옥같은 시간들을 버텨내고 그 아저씨가 바지를 추스르며 나간다.
전화를 들며, 엄마를 찾는다.
엄마. 엄마..
엄마를 기다리는 그 시간동안 여자아이는 그대로 얼어붙어 울고만 있는다.
부모님이 들어오고 112신고를 하고,
경찰이 도착할때까지 부모는 여자아이를 다그친다.
여자아이가 받았을 충격, 상처는 부모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그 일이 일어났다는 자체만으로 그들은 흥분해있었다.
여자아이의 떨고있는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왜이렇게 바보같냐며, 왜이렇게 멍청하냐고,
왜 낯선 사람을 집에 들였냐며 소리를 지른다.
여자아이를 이렇게 만든 그 아저씨도 잘 못했지만
원인제공을 한 자신도 잘못이 있다며, 여자아이는 자책한다.
내가 바보야, 내가 멍청해서. 내가 잘못했어.
경찰들이 집안으로 들어왔다.
아이를 다그치던 부모는 잠시 숨을 돌리며 창밖을 바라보고
아이와 경찰은 그 사건이 일어난 방 안, 현장 속으로 들어간다.
어디에서도, 아이가 받은 충격을 감싸주는 이 하나 찾을 수 없다.
그 아저씨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여자아이에게 어떻게 했는지,
차.근.차.근. 자.세.히. 설.명.해.보라고 한다.
다시금 그 충격을 간접적으로 겪는다.
그 뒤로 여자아이는 자신의 방에서 잘 수 없었다.
동생과 방을 바꿨다.
시간이 지나 점점 잊혀지는듯했다.
부모에게만.
학교에서 시작되는 성교육, 당연하게 강요되는 순결의식 등
여자아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곪고 터지고 있었다. 속으로, 속으로.
어느하나 보듬어주는 이 없고,
어느하나 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다.
내 잘못이야, 내가 바보같았어, 내가 멍청했어, 라는 생각들은
금새 난 이미 더러워졌어, 순결하지 못해, 이렇게는 사랑받지도 사랑하지도 못해, 라는 자책, 자학.
여자아이가 여학생이 되고,
여자가 되어서도 계속 되었다.
남자친구와 둘이 있는 시간이 되면, 손 끝이 닿기만 해도
그녀는 화들짝 놀랐다.
남자친구가 의아해하거나, 미안해할때마다 그녀 스스로가 더 미안했다.
그런 죄책감을 갖지 않기 위해 그녀는 솔직해졌다.
남자친구가 생길때마다 솔직하게, 그런 경험, 그런 상처들이 있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 떠나갈테면 떠나가고, 견뎌볼 수 있으면 견뎌봐라.
그래도 사랑할 수 있겠다 싶으면 내 옆에 있어라, 라는 마음.
바로 떠났다.
또 괜찮다고 말했다가 떠났다.
안을때마다, 관계를 가지고자 할때마다
덜덜덜 떠는 그녀를 감당키 어려워했다.
괜찮다고 말하고, 정말 괜찮다고 웃어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지만
몸은 어쩔수가 없었다.
상대는 그런 그녀를 안타까워하다가 나중엔 포기하고 만다.
멈칫거리다가 포기한다.
그녀에게 사랑은 그랬다.
숨기려고 해도, 숨겨질 수가 없는 것.
낙인찍힌 죄인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