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방을 지저분하게 해놓는
편이다.
정리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달까.
그냥
자주 쓰는 물건은
내 손이 잘 닿는 곳에
모아놓는다.
'정렬'
에는 관심이 별로 없다.
그런데 그렇게 살다보면
가끔씩
'편리'하지 못할 정도로
방안이 난삽해지는 때가 와서
그 때가 되면
방을 치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러면
방을 치우기 시작하는데
내가 방을 청소하는 방식은
죄다
'버리기'
내가
적어도 최소한
이틀에 한 번 이상
사용하지 않는 물건은
모조리 버려버린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멀쩡한 물건이라면
차마 버리지는 못하지만
남겨두면서도 찝찝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다.
어떻게 하면 저걸 없애버릴 수 있을까,
생각하며 그 물건을 노려본다.
지금의 내 방에도
버리고 싶은 물건이 참 많다.
일단
사놓고
몇년 째 쓰지도 않고 있는
어학 참고서들을
모두 버려버리고 싶다.
그런데
원래 어학에는 관심이 많고
언젠가 배우고 싶어질 가 올 것 같아
어학에 관련된 것만큼은
쉽사리 버리질 못하겠다.
하지만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불순물'
같아서.
그리고
사서 읽었지만
간직하고 싶지는 않은 책.
'은교'와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마라'
라는 책.
갑자기 정말 사고 싶어져서
덜컥
사버렸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웠던.
그래서 버리고 싶지만
정말 새책이라
쉽게 버리지는 못하겠다.
그렇다고 누굴 주자니
은교는 읽으면서 메모를 해버렸고
배고프지 않으면 먹지 마라는
딱히 갖고 싶어할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얘네들도
책꽂이의 한 켠을 차지하고 앉아 있다.
역시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불순물'
같아서.
다음으로
온갖 잡동사니들.
머리 핀, 파우치, 천 생리대, 샘플용 화장품 등등.
언젠가는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멀쩡한 물건들이라
방에 두고 있기는 한데
정말 거슬리고 찝찝하다.
'불순물'
같다.
마찬가지로
내 노트북도
쓸데 없는 것이라고는 담고 있지 않다.
인터넷 사용 기록,
컴퓨터 사용 기록 등은 주기적으로 모두 지워버리고
바탕화면에도 바로가기 아이콘이라고는
휴지통
하나 밖에는 없다.
'시작'에도
내가 자주 사용하는 네 다섯개의 아이콘만이
올라 있다.
지속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프로그램은
사용 후 곧바로 지워버린다.
툴바 같은 것은 하나도 깔지 않는다.
.
.
처음엔 그냥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또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심리에 관한 책을 자꾸 찾아 읽으면서,
그리고 무언가 자신을 자꾸만 변화시키려 하는
나를 보면서
'집착'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변화와 발전은 당연한 것이지만
나는 그것에
집착
하고 있다는 느낌.
.
.
그래,
'complex'였다.
정신적 상처를 입었다는
심리적인 문제를 많이 가지고 있다는
complex.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경계하고
스스로를 치유하지 않으면
분명히
내게는 문제가 나타날 거라는
그런 불안감,
그런 complex.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그런 모든 심리적인 문제들,
나쁜 기억들을
버려버리고 싶다는 느낌.
그런 느낌이
결국은
주변의 자잘한 사물들을
모두 버려버리고 싶고
실제로도 자주 버리는
행위로 나타난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러니까
결국은
나는 내 정신의 불순물들을
모두 버려버리고 싶은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는
그렇게도
'해독(디톡스)'를 하고 싶었다.
내 몸 안에 불순물이 많이 쌓여 있는 느낌이 들어서
모두 빼버리고 싶은
강한 욕망에 사로잡혔었다.
.
.
다
버려버리고 싶은 느낌,
결국은 깔끔한 성격인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심리적인 문제들
정신적인 불순물들을 모두 버리고
맑아지고 싶다는
욕망
이었던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면
나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것을 좋아한다.
복잡한 것을 싫어하고
본질에서 몇 겹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싫어한다.
산다면
단순하게
본질적으로 살고 싶다고.
가진다면
최대한
본질적인 것만
갖고 싶다고.
그렇게 생각하곤 했다.
한 때는 그런 것이
'소박함'
그리고
'무욕(無慾)'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이것조차도
정신적 불순물을 버리고 싶어하는
욕구의 발현인 것 같다.
복잡하게 꼬여 있는 것이 싫은,
무언가 지저분한 잔재들이 쌓여 있는 것이 싫은
그래서 다 버려버리고
최대한 깨끗한
최대한 단순한
마음을 갖고 싶은.
그런 욕망.
.
.
이 욕망을 어떻게 다뤄야 할 지는 모르겠다.
나에게 이로운 건지 해로운 건지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그대로 둔다면 발전의 원동력으로
쓸 수는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심리적인 문제를 붙잡고 늘어지는
동력원이니까.
하지만
그것에 집착하게 만드는
심리적 근원도 바로 이것이다.
나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 발전시키게끔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개조,
시키게끔 하는 근원.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기보다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고치려고 안간힘을 쓰게 하는
근원.
.
.
내가 좋아하는 한 언니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모든 것을 고쳐야 하는 것은 아닐 지도 몰라.'
맞는 말이다.
어쩌면
나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히 좋은 사람일 지도 몰라.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회피 방어기제를 조금 심하게 가지고 있고
성적인 욕망이 많이 억압되어 있고
성폭행 당한 나쁜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이쯤 써내려가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기는 하다.
그러나 만약
만약 나에게 그런 일이 없었다면
내가 가닿을 수 있었던 그 상태,
그 상태가 나는 욕심이 나는 것이고
나는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났다는 점이 억울한 것이고
그리고
그런 일이 없었던 상태로
나를 돌려놓겠다는
오기에 사로잡혀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스스로의 힘으로
나의 인생을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이해할 수 있다.
가련하다.
하지만
그게 과연
내가 행복한 길일까,
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무엇이 옳은 지
무엇이 나에게 좋은 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해줄 길인지.
.
.
고개를 이쪽 저쪽으로
돌려봐야겠다.
'complex를 사랑하라'
라는 말을 읊조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