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게 영 녹록지 않은 일이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을 포기하지 않는
우리의 갸륵한 수고.
아,
좋은 날이다.
<어디 아픈데 없냐고 당신이 물었다>
.
.
오랜만이다.
한동안 연필로 생각을 써내려갔다.
그렇게 표현한 생각들의 잔여물이 쌓이고 넘쳐
펜시브로 흘러내린다.
-
오늘은 신정인데
공휴일 근무 당번이 되어
약국에 나가 하루 종일 일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목이 메였다.
집에 들어와서도
방바닥에 널부러져
텅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리고 방금 통화한
오빠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하루 종일 카톡만 하다가
한 번 통화하는 건데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아
10분만에 끊어버렸다.
그게 너무 미안했다.
괜히 나같이 우울하고 불행한 여자애를 만나서
여자친구하고 기분 좋게
통화 한 번 못 하는 오빠가 너무너무 불쌍해서.
그런 내가
나란 존재가
너무나 미안해서.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스스로를 갉아먹다가
안간힘을 다해서
'투사'된 감정을
'정조준'했다.
.
.
모든 미안함을
나에게로 돌렸다.
요즘 들어 성폭행으로 인한 괴로움이 한층 더 깊어져가고
일 문에 힘들어하는 나에게.
그래서 너무나 지쳐버려
방바닥에 쓰러져 옴짝달싹도 못하고 있는
불쌍한 하나에게.
나는 지금 정말정말 불쌍하구나.
혼자 바닥에 누워서
얼마나 힘들면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바라보지 못하고
이렇게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어야만 하는
나는 지금 정말 정말 불쌍하구나.
수고 많았다.
그리고 나는
누워 있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일으켜 안아 무릎 베개를 해주고
위로해주었다.
참으로 불쌍한 아이라고, 너는.
수고했다고.
그리고
나는
엉엉 울었다.
.
.
요즘은
'투사'된 감정을 파악하고
다시 제대로 된 곳에
'정조준'하는 것을
연습하는 중이다.
분노는 아버지에게로.
투정은 어머니에게로.
연민은 나에게로.
감정들이
제자리를 찾도록
그래서 엄한 사람,
즉 남자친구에게로 모두 흘러가버리지 않도록,
정조준,
하는 연습.
훨씬 더
마음이 가벼워졌다.
확실히 모든 사람에게 화가 났을 때보다
한 사람에게만 화가 나니까
마음이 훨씬 좋다.
모든 사람에게 투정을 부릴 때보다
한 사람에게만 투정을 부리니까
마음이 훨씬 좋다.
모든 사람을 동정할 때보다
한 사람만 동정하니까
마음이 훨씬 좋다.
증오할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할 사람을 미워하고
동정할 사람을 동정하고.
.
.
사람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들 때마다
그 감정을 모두 나에게로 돌리기로 했다.
*
거실에서 혼자 밥을 먹고 있는 어머니가 불쌍하다.
내가 나가서 같이 먹어줘야 하는 건데.
어머니가 얼마나 외로울까.
나는 나쁘고 어머니는 불쌍하다.
↓
방 안에서 혼자 '아주 특별한 용기(성폭행 치료 가이드)'를 읽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
누군가 함께 해주고 도와주면, 응원해주면 참 좋을텐데.
나는 외롭고 힘들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은 나쁘고 나는 불쌍하다.
*
나같은 여자 만나서 고생하는 남자친구가 불쌍하고, 미안하다.
↓
아버지를 잘못 만나서 끔찍한 일을 당하고, 그 상처와 악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는 내가 불쌍하다. 그 개새끼가 나한테 미안해하고 사과해야되는데.
나한테 무릎꿇고 사과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나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졌으면 좋겠다.
.
.
그렇게 내가 불쌍해질 수록
나를 동정할 수록
나는 점점 더 화가 난다.
내가 10살 때
아버지는 매주 수요일,
나를 성폭행 하기 위해
직장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왔다.
3학년이던 나는
수요일에는 4교시를 해서 일찍 끝났기 때문에
집에 와 있어야 했다.
내가 집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으면
3시나 4시쯤 되어
아버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다.
아버지의 열쇠 꾸러미가 흔들리는 소리
그리고 흥얼거리는 콧노래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아버지의 옷은
차갑다.
화가 난다.
나는 도망가고 싶은데 도망가지도 못하고
가슴을 죄며
아버지가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
집에 오지 않기를
아니면 동생이 일찍 돌아오기를
어머니가 아파서 직장에서 조퇴하기를
친구가 놀러오기를
내가 밖에 나갈 일이 생기기를
친척들이 놀러오기를
가스나 정수기 점검 기사가 찾아와주기를
간절히 바라며
괴로워할 때
아버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그 시간을 즐겼다.
나는 하루하루 죽어가고 있을 때
그 개새끼는 하루하루를 즐기고 있었다.
콧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나를 빨고 물고 내 안에 사정할 그 시간을 기다리며
열쇠꾸러미를 흔들면서
콧노래를 부르면서
직장에서 몰래 빠져나와
차를 몰고 집으로 들어왔을
그
그 빌어먹을 새끼에게
진심으로 화가 난다.
나는 어째서
죽지도 않았고
그 밑에 깔려
단지 영혼의 도피만을 했던 것일까.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다.
아버지와 함께.
벗은 몸의 그 새끼도
같이 벗고 그 밑에 깔려 있는 나도
모조리 도끼로 찍어 두동강 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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