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 내 안에 │ 치유일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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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라는 간단한 말이 이해가 가는 순간이 왔다. 모든 것은 내 안에 있고 모든 문제와 답은 내 안에 있다. 한동안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 힘들었다. 이유도 없이 혼자 있게 되면 오늘 하루 동안 나를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나를 언제나 혼자 둔다고 나만 소속된 무리가 없다고 사람들은 나를 안 좋게 볼 거라면서 불안에 떨었다. 그런 불안 속에서 나는 눈을 부릅뜨고 내가 왜 그렇게 느끼는 지 바라보았다. 모두 나의 '생각'이었다. 사람들의 평범한 말과 행동들이 나의 해석과정을 거쳐 '나를 싫어하는' '나를 미워하는' '나를 무시하는' 으로 해석된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저 나에게 '안녕'이라고 말했을 뿐인데 나는 그게 나와 같이 있기 싫어서 나를 얼른 보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은 그저 나의 카톡에 답장을 보냈을 뿐인데 나는 그 답장이 짧다거나 무성의하다고 느끼고 나를 무시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왜 이다지도 다른 사람들이 나를 싫어한다고 느꼈을까.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발달심리학 시간에 유아의 '자기중심성'이라는 용어를 배웠다. 자기 자신의 관점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물건을 다 가려서 뒷사람이 보지 못하게 만들어놓고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뒷사람도 보고 있다고 생각하고 '여기 좀 보세요!'라고 말하는 것, 전화기 너머 사람에게 자신이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을 보라고 말하는 것, 등 유아는 자신이 보는 것을 타인도 똑같이 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아이의 자기중심성이다. 그러나 어른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자기 자신을 보는 방법으로 타인을 본다. 타인이 진짜로 어떻게 보는 지를 보는 게 아니라 자기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자기 눈에 비친 타인의 모습을 그대로 타인에게 투사한다. . . 나는 사람들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밀어내고 같이 있고 싶지 않아하고 귀찮으면 답장을 짧게 한다. 그리고 좋으면 좋다고 무지무지하게 표현한다.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의 행동도 이런 관점을 중심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람들을 밀어낼 때 하는 행동을 타인이 나에게 보여주면 그 사람이 나를 밀어냈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할 때 하는 행동을 타인이 하면 그 사람이 나와 같이 있고 싶지 않아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가를 귀찮아 할 하는 행동을 타인이 하면 그 사람이 나를 귀찮아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가 좋을 때 하는 표현을 상대방이 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가. 타인의 고유한, 타인 그 자신만의 행동방식과 반응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로지 내 관점에서 그 모든 행동들을 해석하고 있었다. 나는 웬만해선 카톡을 씹지 않는다. 내가 카톡을 씹는다는 것은 정말로 귀찮거나 답장을 하고 싶지 않을 때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굳이 답장을 할 필요가 없는 카톡은 답장하지 않아도 될 수도 있다. 그냥 말투가 원래 짧은 걸 수도 있다. 카톡보다는 통화를 좋아할 수도 있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람 고유의 행동과 반응과 표현이 있는 것이다. 앞으로 그 특성들을 잘 봐서 그 사람에 맞게, 그러니까 그 사람이 의도한 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노력하자. . . 그리고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다. 나는 지극히 자기 중심적이어서 내가 나를 생각하는 대로 타인이 나를 생각한다고 느낀다. 만약 내가 오늘 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특정한 누군가가 나를 마음에 들지 않았을 거라고 그렇게 느낀다. 그러다가 누가 나한테 말이라도 짧게 했다면, 당연히 내가 그 행동을 해서 그런다고 판단하고 불안해한다. 지난 주에 룸메가 자기 고향집에 내려갔다. 그런데 카톡도 하지 않고 내 카톡에 답장도 하지 않고 페이스북에 다른 사람에게는 하트 뿅뿅 다정한 댓글을 남겼다. 그래서 나는 무지무지 불안해졌다. 룸메가 나를 싫어하는 걸까봐. 그래서 나에게는 답장도 하지 않고 다정한 댓글도 남겨주지 않는 거라고. 룸메가 돌아오기까지 사흘 정도는 불안에 떨었던 것 같다. 온갖 생각을 다했다. 왜 내가 싫지? 내가 청소를 잘 안 해서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없었다. 요근래 정신이 없어 청소를 잘 하지 못한 것. 그래서 룸메가 나를 싫어하게 된 것 같았다. 싸우는 상상도 해보고 화해하는 상상, 온갖 상상을 다 했지만 막상 돌아와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 전과 마찬가지로 나를 좋아해주었고 나도 내 룸메가 좋았다. 그 사흘 동안 나를 불안에 떨게 만들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청소하지 않는 나 자신을 미워하는 나의 마음이 룸메에게 투사된 것이 아니었을까. 만약 내가 청소하지 않는 나 자신을 사랑했다면 나는 그런 불안에 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나를 사랑하는 것이 가장 첫 번째 일인 것 같다. 타인이 나의 행동의 기준이 되지 않는 것,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 잘못했다면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처벌을 내릴 것이 아니라 당당히 책임을 질 것. 책임으로서 잘못을 감당해야 한다. 죄책감과 수치로 감당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 그러면 된다. 실수를 할 수도 있는 거니까:-) . . 마지막으로 생에서 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람에 대한 미움과 증오를 거두어야 할 필요를 느낀다. 한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증오가 나를 어떤 식으로 조종하는 지 이제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미움은 향기나 드라이아이스 같은 기체와 같아서 가둬둔다고 가둬지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아버지라는 상자 속에 담아 꼭꼭 숨겨 놓아도 스물스물 새어나와서 다른 상자에도 스며든다. 이제는 그 상자 속에 든 미움들을 공기 중에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겠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직면해야지. 친부와 대화를 해야겠다. 당신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앞으로 나에게 어떻게 할 것이냐 이야기를 하고 친부의 태도를 보고 판단해야겠다. 아마 그는 반성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때 나 대신 그를 벌 줄 사람을 찾아야지. 아니, 사람이 아니라 '제도'를. 그를 미워하고 벌 주는 것은 이 사회에 맡겨두고 나는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야겠다. 그를 미워하는 것이 나의 업이 아니니까. Innocent Atlas. 한동안 내가 나에게 붙였던 단어였다. 죄없는 아틀라스. 지구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아틀라스, 나에게는 내가 꼭 그런 것 같았다. 그런데 나는 아무런 잘못도 없었으니 Innocent Atlas라고 나에게 이름을 붙였던 것이다. 이제는 그 지구를 내려 놓으려 한다. 다 같이 들어주세요. 나 혼자 들기에는 너무 무거워요. 엄마, 동생, 친척들, 내 친구들, 그리고 우리 나라 사람들, 세상 사람들 모두가 같이 나눠서 들어주세요. 그러면 조금씩만 들어도 되고 나는 훨씬 더 가벼워질 수 있을 거예요:-) 엄마에 대한 미움도 풀어야한다. 엄마는 좋다. 물론 어린 모습을 보여서 짜증날 때도 있고 어렸을 때의 일 때문에 쌓인 것도 있다. 그리고 나는 엄마가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엄마는 이래야 한다'는 환상이 엄청나게 부풀려져 있다. 그런 모성에 대한 환상을 깨고 인간으로서 우리 엄마를 바라보고 싶다. 엄마, 가 아니라 김여사. 그 여자 자체를. . . 모든 것은 내 안에 있으며 그리고 또한 바깥에 있다. 그 둘을 잘 구별하면서 왜곡없이 받아들이고 내놓는다면 나는 훨씬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나 자신과 소통하기. 지금의 나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의 나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살아야 한다. 과거를 잊어서도 미래를 가벼이 여겨서도 현재를 등한시 해서도 안 된다. 현실에 발 담그고 살되 미래의 나와 행복과 고통을 분담하는 통찰을 가져야 한다. 미래의 나도 나이니까. 그리고 과거의 나에게 나 자신에 대한 답을 들어야 한다. 우리가 노인에게 지혜를 얻듯 내가 나에 대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과거의 나이기 때문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과거의 '나'이다. 그러니까 6살 때 일어났던 '일'을 지금의 눈으로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6살의 내가 그것을 어떻게 느꼈는지, 6살의 나에게 그것이 어떤 일이었는지를 듣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나를 이루는 것은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느낀 6살의 나와 그 아이의 느낌이니까. . . 나 자신에 충실하자. 타인의 생각, 타인의 반응, 타인의 판단은 온전히 타인에게 맡겨두고. 나와는 상관 없는, 나와는 섞이지 않는, 내가 손 댈 수 없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라 생각하고. 그리고 내 안을 자주 들여다보고 자주 비춰보면서, 그렇게 살자. 그럼 행복해질거야.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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