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 영역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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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올라가는 게 귀찮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도 귀찮고, 악 쓰고 기 쓰고 버텨대는 것도 귀찮다. 그냥 여기에 이렇게 앉아 오후의 따스한 햇살과 훈훈하게 끼쳐오는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이 동네에서 늙어가는 것도 별로 나쁘지 않을 성 싶다. . . 뭔가 노인네 같은 생각. 중년의 친구들이 나한테 그랬는데. 늙으면 어느 정도 느긋해지고, 느슨해진다고. 그러니까 젊을 때는 치열할 필요가 있다고. 나는 어릴 때 치열했고 젊을 때 느슨해져버린 건가. 너무 하얗게 불태웠나, 음. 아무튼, 그냥 이렇게 아무도 없는 집 안에 혼자 앉아 기계가 웅웅 거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나는 제일 좋다. 버스와 지하철의 혼잡함, 사람들로 들끓는 대학, 시끄러운 악기 소리, 그리고 열 명이 넘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 것은, 내게 피로일 뿐이다. . . 사실 아무하고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데 이야기하는 것도 싫다. 별로 좋지도 않은 사람들하고 한 자리에 있는 것도, 좋지 않다. 다만 정기적으로 하는 활동이 없으면 생활에 중심이 잡히지 않을까봐, 그저 기계적으로 꼬박꼬박 나가고 있을 뿐이다. 열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해야 할 최소한의 것들을 할 뿐. 또 잔뜩 늘어져버린 건데, 생활 환경 탓일까 날씨 탓일까. 나는 어떤 사람일까. . . 확실히 이게 나로서는 가장 편한 상태이기는 하다. 하지만 목구멍이 뒤집어져 튀어나올 정도로 뭔가 지루하기는 하다. 지루함이 좋은 건지, 아니면 싫은 지는 모르겠지만. 뭐, 막상 학교에 들어서면 이런 생각들은 없이 또 기운이 솟을 테지만- 어쨌든 사람이 바글바글한 곳은 그다지 좋지 않다. 태백산맥이나 읽고 여명의 눈동자나 봐야겠다. . . 앞으로 남은 시간이 참으로 많다. 20대를 거쳐 30대, 30대를 지나 40대, 40대를 살아내고 50대 50대가 훌쩍, 지나가면 60대, 건강하기만 하다면 70대, 80대까지. 하긴, 그리 긴 시간은 아니다. 눈 깜짝 할 새에 22년이 갔는데 까짓 60년 쯤이야 여차저차 뭉개면 금방 흘러갈 것이다. 적당히 살고 적당히 벌고 사람도 적당히 만나고, 순간 순간 만족하면서 살면 금방 살아지는 인생, 왜 나는 죽자고 달려들어 악착같이 살려고 하는 걸까. 뭘 얻겠다고. 열심히 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걸까. 게으름에 죄의식을 느끼고 그게 무엇이든 열심히 하기만 하면 좋다고 생각하는 걸까. . . 나는 내가 자라면서 참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중학생 시절이고, 고등학생 시절이고, 나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그 때나 나나, 사는 것은 별로 재미 없었고, 그 재미를 찾고자 열심히 노력했다. 중학생 때 내가 붙잡은 것은 공부와 소설이었다. 아이들하고 놀러 가기도 무섭고 그 남는 많은 시간을 채워줄 것은 공부와 소설이었다. 내가 할 것이 없고 살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잊게 해주는, 내 시간을 채워주는 것들. 고등학생 때 내가 붙잡은 것은 입시였다. 입시 공부. 나는 다른 건 생각할 필요 없이 지금은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고, 내가 별로 하고 싶은 일이 없다는 것을 열심히 합리화 했던 것이다.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14살을 기점으로 나뉘는 지도 모른다. 14살 초반의 나는 초등학생에 가깝고, 14살 후반의 나는 중학생에 가깝다. 그리고 초등학생 나와, 중학생 나는 완전히 다르다. 초등학생 때는 우리 학년 전체가 나의 친구였지만, 중학생 때는 진짜 친구는 한 명 뿐이었고, 같이 다니는 친구들도 손에 꼽을 정도만 되면 된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나로 하여금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고, 친구에 대한 회의를 느끼게 했는지 나로서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일기를 써놓았더라면 참 좋았을텐데, 싶지만 불행하게도 그 때는 일기라는 걸 잘 쓰지는 않았던 것 같다. . . 어찌 되었든, 나는 이제 붙잡을 것이 분명하지 못하다. 시간은 남아 도는데 입시처럼 뚜렷하고도 남의 시선에도 합리적인 목표가 없다. 그렇다면 또 뭔가 살아야 할 이유를 붙잡아야 하는 걸까. 아니면 그저, 이렇게 늘어지는 대로 살면 되는 걸까. 살아야 할 이유를 잡아야 한다면 또 내가 맹목적으로 좇을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뭔가를 그렇게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나를 위한 길일까. 뭐 어쨌든 그렇게 21년을 어찌어찌 보내기는 했다. 어쩌면 그런 맹목적인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이만큼 버텨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적어도 그 시간을 때우는데 술이나, 담배나, 일종의 나 자신을 상처 입히는 그런 것들에 눈길을 돌리지는 않았으니까. 부모에게 복수한답시고 집을 나가지도 않았고, 약한 사람을 괴롭히지도 않았다. 병신 같이 그런 짓 한 번 못 했냐고 스스로를 나무랄 때도 많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지금의 나는, 온전히 내 스스로가 지켜온 나 자신인 것이다. . .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나도 머리를 텅 비워버리고 신나게, 그냥 한 평생 신나게 살아보고 싶다. 하지만 내 안에는 납덩어리가 들어 있는 것인지, 그렇게 자유롭게 신나게 살아보고자 하면, 금새 다시 둥지 속으로 끌려들어와 버린다. 오뚜기가 감히 날려고 했기 때문일까. 나는 이 자리에 박혀 있는 것이 맞는 것일까? 그것이 내가 존재하는 방식일까? 나에게 맞는? . . 알 수 없다, 그런 것은. 아무튼 사람들 속은 괴롭고 내 속 역시 괴롭다. 내가 있을 곳은 사람들과 나 사이의 좁은 공간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는 그 좁은 중간 영역. 나는 나 자신을 거기에 놓아둔 채 내 안으로도, 사람들 속으로도 빠져버리지 않기 위해서 가까스로 중심을 잡고 있다. 어느 쪽으로나 빠져버리는 건 위험하고 무서우니까. 세상은, 아직 나에게는 위험한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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