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후회하기, │ troi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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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상담 받게 해서 나의 성폭력에 대한 상식 갖추게 하기. 그리고 나랑 화해. 아빠,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임, 겁을 줄 거야, 불안하게. 어쨌든 자신이 잘못을 했다는 걸 자기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미안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는 있으니까, 그 점을 이용해서 겁을 줄 거야. 아빠가 변하는 건 바라지 않아. 그를 그대로 두고, 그 주변이 제대로 바로잡히는 걸 바라. 그러니까, 아빠가 나쁜 놈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아는 것. 그래서 모두모두 아빠가 나쁘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바로 잡힌 거야. . . 엄마도, 동생도 친척들도 모두모두. 될 지 안 될지 모르겠고 그 과정에서 무슨 상처를 또 입을 지, 잃기만 하고 뭘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병사가 총 맞는 게 두려워 전장에 안 나갈 수는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찢어지는 게 두려워 그냥 넘기기에는 평생 후회할 일이 될 테니까. 그냥, 할 수 있는 건 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다 책임지면 된다. 내가 무언가를 얻고자 시작한 일이었으니 그러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은 모두 내 책임. 그 끝에 심하게 다쳐 있을 지라도, 지금처럼 또 치유하면 그만이다. 어쨌든,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랬으니.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댔으니. 결과야 어떻게 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했으니. .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 한 번 해보련다. 이제,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련다. 아빠를 고소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겠다. 사실 거의 1년이 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인데 그 때 그 때마다 이 녀석이라는 것은 새로운 면모를 들고 나에게 나타난다. 어떤 때는 그가 징역살이를 해봤자 내가 얻는 게 뭘까, 대부분 징역을 받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다는데 그가 감옥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풀릴 수 있을까. 헛고생만 하는 거 아닐까. 더 억울하지 않을까. 어떤 때는 그래도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 내 손으로 그를 벌 줄 수 없으니, 자기 죗값을 치러야지. 하다가, 어떤 때는 고소 과정이 힘들다는데 내가 그 과정을 겪어내면서까지 고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이게 정말 나를 위한 길일까, 하다가.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아마 안 하고 넘어가면 평생 저 세 가지 생각을 번갈아 하게 될 거라는 것.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반납할 때까지 그 책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연체가 너무 많이 돼서 연체료가 많을 까봐, 연체한 책을 반납하는 게 너무 눈치 보여서, 등등의 이유로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늘 신경 쓰인다. 이럴 때 상책은, 연체료가 있든 말든 눈치가 보이든 말든, 반납해버리는 것이다. 눈치야 한 순간이고 연체료야 갚으면 끝이고. 그러면 이제 나는 그 책으로부터 자유다. 고소 또한 마찬가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는다면 나는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소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서도 늘 여운처럼 남겠지. 그 때 한 번 해볼 걸 그랬나. 그럴 바에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히려 종합 세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도 든다. 막연하게 살 빼야지, 하는 것보다는 올 여름에는 비키니를 입어야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막연하게 치유해야지, 하는 것보다는 고소를 준비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기억도 떠올려 내고 엄마와 이 주제로 이야기도 하고 아버지와 직면하는 계기도 되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설령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할 만큼 한 게 되니까. 잃을 건 없다. 작은 말하기 대회도, 한 번 가기 전에는 '갈까 말까' 늘 고민했다. 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갈 필요 없을까, 가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한 번 다녀오니 그 다음엔 결론을 내렸다. 더 갈 필요 없겠다. 그리고 깨끗하게 작은 말하기 대회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 뵈러 한 번 더 가볼까, 하는 가벼운 수준의 생각을 가끔 할 뿐 처음 고민할 때처럼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할 만큼 하면 그 문제는 나를 떠난다. 더 이상 할 게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으면 늘 고민이 되게 마련이다.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하자.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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