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후회하기,   trois.
  hit : 2401 , 2013-09-24 10:37 (화)

엄마,
상담 받게 해서 나의 성폭력에 대한 상식 갖추게 하기.
그리고 나랑 화해.

아빠,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임,
겁을 줄 거야, 불안하게.
어쨌든 자신이 잘못을 했다는 걸 자기 스스로는 알고 있으니까.
나한테 미안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남들이 알아서는 안 된다는 걸 자각하고는 있으니까,
그 점을 이용해서 겁을 줄 거야.

아빠가 변하는 건 바라지 않아.
그를 그대로 두고, 
그 주변이 제대로 바로잡히는 걸 바라.
그러니까,
아빠가 나쁜 놈이라는 걸,
주변 사람들이 아는 것.
그래서 모두모두 아빠가 나쁘다고 말해주는 것.

그게 바로 잡힌 거야.


.
.


엄마도, 동생도
친척들도 모두모두.
될 지 안 될지 모르겠고
그 과정에서 무슨 상처를 또 입을 지,
잃기만 하고 뭘 얻을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병사가 총 맞는 게 두려워 전장에 안 나갈 수는 없는 것처럼
나 또한 찢어지는 게 두려워 그냥 넘기기에는
평생 후회할 일이 될 테니까.

그냥, 
할 수 있는 건 하고 넘어가고 싶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내가 다 책임지면 된다.
내가 무언가를 얻고자 시작한 일이었으니
그러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은 모두 내 책임.

그 끝에
심하게 다쳐 있을 지라도,
지금처럼 또 치유하면 그만이다.

어쨌든,
하고 넘어가야 하는 일이다.
할까 말까 할 때는 
하랬으니.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하고 후회하는 것이 낫댔으니.



결과야 어떻게 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고 했으니.





.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 한 번 해보련다.
이제, 
진짜로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련다.



아빠를 고소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겠다.
사실 거의 1년이 넘게 고민하고 있는 것인데
그 때 그 때마다 이 녀석이라는 것은
새로운 면모를 들고 나에게 나타난다.

어떤 때는
그가 징역살이를 해봤자 내가 얻는 게 뭘까,
대부분 징역을 받고서도 자기 잘못을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는다는데
그가 감옥에 들어간다는 것만으로
내 마음이 풀릴 수 있을까.
헛고생만 하는 거 아닐까.
더 억울하지 않을까.

어떤 때는
그래도 죄를 지었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지.
내 손으로 그를 벌 줄 수 없으니,
자기 죗값을 치러야지.

하다가,
어떤 때는
고소 과정이 힘들다는데
내가 그 과정을 겪어내면서까지 고소할 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
이게 정말 나를 위한 길일까,
하다가.





하지만 지금 드는 생각은
아마 안 하고 넘어가면
평생 저 세 가지 생각을 번갈아 하게 될 거라는 것.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지 않으면
반납할 때까지 그 책이 신경 쓰이는 것처럼.
연체가 너무 많이 돼서 연체료가 많을 까봐,
연체한 책을 반납하는 게 너무 눈치 보여서,
등등의 이유로 반납하지 않고 가지고 있으면
늘 신경 쓰인다.

이럴 때 상책은,
연체료가 있든 말든
눈치가 보이든 말든,
반납해버리는 것이다.

눈치야 한 순간이고
연체료야 갚으면 끝이고.
그러면 이제 나는 그 책으로부터 자유다.


고소 또한 마찬가지.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는다면 
나는 똑같은 고민을 계속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소할 수 있는 시기가 지나서도
늘 여운처럼 남겠지.
그 때 한 번 해볼 걸 그랬나.




그럴 바에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하고 넘어가는 것이 낫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히려 종합 세트가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도 든다.

막연하게 
살 빼야지,
하는 것보다는
올 여름에는 비키니를 입어야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막연하게
치유해야지,
하는 것보다는
고소를 준비해야지,
하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면
더욱 적극적으로 기억도 떠올려 내고
엄마와 이 주제로 이야기도 하고
아버지와 직면하는 계기도 되는 
그런 기회가 되지 않을까.

설령 내 뜻대로 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할 만큼 한 게 되니까.
잃을 건 없다.



작은 말하기 대회도,
한 번 가기 전에는
'갈까 말까'
늘 고민했다.

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 거리면서,
갈 필요 없을까,
가야 할까
고민했다.

그러다가 그냥 한 번 다녀오니
그 다음엔 결론을 내렸다.

더 갈 필요 없겠다.
그리고 깨끗하게 작은 말하기 대회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냥,
사람들 뵈러 한 번 더 가볼까,
하는 가벼운 수준의 생각을 가끔 할 뿐
처음 고민할 때처럼
나를 괴롭히지는 않는다.


할 만큼 하면 
그 문제는 나를 떠난다.
더 이상 할 게 없기 때문이다.

할 수 있는 것이 있는데
하지 않고 있으면
늘 고민이 되게 마련이다.



할 수 있는 게 있으면 하자.
결과는 생각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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