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보기   six/sept.
  hit : 2475 , 2017-12-16 03:22 (토)


아주 오랜만에 뭔가 제정신이 돌아온 것 같다.
요 며칠 새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아니면 스트레스나 피곤 탓인지 모르겠지만 
집에 들어오면 정신 없이 뭘 먹곤 했다.
그리고 할 일에 제대로 집중도 못하고,
가계부나 식단 일지를 제대로 쓰지도 못 했다.

오늘에서야 방청소와 집청소를 좀 하고
밀린 가계부는 일단 잔액만 대충 정리해서 앞으로 남은 돈만 체크하고
식단 일지 쓰기 시작하고
밀린 장도 봐왔다.

.
.

이번 학기 내내 내 몸을 컨트롤하려고 너무 애를 쓴 것 같다.
돈이 없으니 입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너무 아깝고 혐오스러워서 
그걸 조절하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던 것 같은데
그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나 싶다.
절식과 폭식의 반복이었다.
물론 폭식이라고 해도 배가 터질만큼 먹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양이 많은 편은 아닌데,
그냥 계속 라면이나 탄수화물 종류를 섭취하게 된다. 
돈을 많이 쓸 수는 없으니 싼 가격에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게
천 원짜리 초콜렛, 천 원짜리 짠 과자, 라면 이런 식으로 식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한 번씩 터지면 돈까스, 햄버거 등을 먹고.
낮에 기운이 있을 때는 '아 덜 먹어야지'하고 안 먹다가
밤에 스트레스가 누적되거나 피곤해서 자제력이 떨어지면
배고픔까지 더해져서 더 먹게 되는 패턴이 반복되었고
특히 아무 이유 없이 밤에 먹고는 자버리는 경우가 몇 번 있었다.
물론 1~2주 정도였으나-

2-3주 정도 식단을 잘 지키고 운동도 하다가
과제가 몰리거나 약속이 한 번이라도 있을라치면 균형이 바로 깨졌다.
날이 너무 춥거나 스트레스를 과도하게 받아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학기에 식단을 기록해보고 운동을 하면서 느낀 건데,
나는 바쁘지 않거나 크게 피곤하지 않다면 식욕을 많이 느끼지 않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
하루에 1000칼로리 내외로도 충분하고 
음식을 더 먹고 싶다는 생각도 굳이 들지 않는다.
오히려 저염식을 먹으니 속이 편하고
음식으로 자극을 덜 받으니 다른 감각들이 더욱 예민해지는 느낌이고
무엇보다도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되어서 좋았다.
그 전에는 그냥 '단 거', '짠 거', '매운 거' 등등 극단적인 맛만 느꼈다면 
한 동안 저염식을 먹고 군것질을 줄이니,
음식 특유의 맛들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새로운 즐거움들을 알아가던 찰나...
또 미친 듯이 바쁜 한 주를 맞이하였고,
정신이 없어진 나는 '에라이 무슨 식단 조절이야' 하며 또 밤에 군것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심신의 안정을 얻고 나서야 과제를 할 수 있었다.

아무튼 완벽하게 식단 조절과 운동, 체중 감량에 성공한 학기는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바쁘기도 했고 돈도 너무 없었다.
이 정도라도 한 게 정말 스스로 자랑스럽다.
돈과 시간이 없는 자에게 다이어트란 정말 극한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돈이 없는데 어떻게 영양적으로 균형잡힌 식단을 구성하며,
시간이 없는데 언제 도시락을 싸고 운동을 할 것인가?

어쨌든 그래도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했고,
그 결과 얻은 수확이 꽤 있다.
그것들을 정리해서 내년에도 실천해보도록 해야겠다.


1.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_ 나는 몸이 차며, 몸을 데우기 위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다. 추우면 추운대로 그냥 있는다.
별로 추위에 괴로워하지 않는달까. 하지만 에너지 소모는 크기 때문에 금새 피로해지고 
그러한 피로를 당으로 채우려 한다. 혈액순환이 되지 않아 수족냉증이 있으니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해야 한다.

※ 모자 쓰기, 목이 올라오는 양말 신기, 장갑 끼기, 손목과 발목에 워머 착용
따뜻한 물이나 차를 자주 마시기, 마스크 끼기, 목도리 하기, 패딩 사기, 따뜻한 신발 착용

이런 걸 다 적어야 한다는 것부터 내가 평소에 얼마나 보온에 신경을 안 쓰는 지 알 수 있다.
지금 내가 하고 다니는 걸 묘사해보면 히트택 상의, 니트(맨투맨 등), 기모 바지, 코트, 발목 양말, 
운동화. 끝이다. 방한 용품이라고는 하나도 하지 않는다. 번거롭기 때문인데, 좀 할 필요가 있다.
특히 모자! ★★

2. 잠을 잘 자야 한다.
_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이걸 깨달은 사람이 새벽 세 시에 이것을 쓰고 있다니
실천의 길이란 멀고 험하다..하지만 5시에 일어나는 것을 기준으로 10시에 잠드는 생활을 목표로 
잡아야겠다. 일찍 잠들 수록 수면의 질이 높아지고 질 좋은 수면은 컨디션을 좋게 만들어주고
스트레스를 낮춰주어 불필요한 식욕을 감소시켜준다. 이번 학기에 여러 수면 패턴을 실험해보면서
느낀 건데, 잠을 못 자서 피곤하면 무조건 폭식하거나 군것질을 많이 한다.

3. 음식=스트레스 해소의 연결고리를 끊는 인지행동치료가 필요하다.
_ 사실 이게 인지의 문제인지 생물학적인 문제인지 모르겠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내게 음식이란
특히 자극적인 음식과 군것질은 자위와도 같은 존재이다. 먹음으로써 극도의 쾌감을 한 순간에 
폭발적으로 느끼고 안정감을 느끼는. 그래서 과자를 사서 집에 들어와서 옷도 안 갈아입고
그 자리에서 먹어치우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다. 맛을 위해서 먹는 게 아니라는 증거다.

이걸 끊으려면 음식 이외의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출구를 많이 만들어주어야 한다.
특히 입 안, 그리고 식도의 감각 이외의 감각들을 이용하는 것이 필요할 듯 하다.
'향'이라든지, '촉감' 등을 이용한 스트레스 해소를 추가해야겠다.
시청각적인 스트레스 해소는 사실 좀 부족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는 뇌를 자극해서 
더 많은 자극을 원하게끔 하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특히 스마트폰을 이용한 시청각 자극은!
시청각 자극도 전자기기를 통한 자극(유투브 영상, 페이스북, 인스타 등)이 아니라 
책, 미술 작품, 자연 등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자.

스트레칭과 운동도 좋은 방법인데 사실 이 방법은 정말 피곤할 때는 잘 안 들어먹힌다.
움직이기가 싫어지기 때문. 음식을 먹는 것과 맞먹을 정도로 간단하고 즉각적인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한
다른 출구도 필요하다. 방울토마토나 아몬드를 씹어먹는 건 적어도 내게는 효과가 없다.
그걸 대신 씹어먹을 자제력이 있으면 먹지 않아도 됐기 때문.
다크 초콜릿을 평소에 먹어주어 단맛에 대한 욕구를 줄여놓는 베이스 외에도 
자극을 충족할 수 있는 향이라든지 촉감(슬라임) 놀이를 연구해봐야지:D

그리고 기존에 갖고 있던 음식과 먹는 행위에 대한 인식도 조금 분석해봐야겠다.
지금까지 분석해본 몇 가지 인식은,
1) 음식을 같이 먹는 행위를 통해 유대감을 형성하고 관계가 더 가까워질 수 있다.
2) 음식=스트레스 해소
3) 하루에 3끼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 등등이 있다.

1번은 사실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한데, 그렇다고 같이 먹는 자리에서 
많이 먹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것은 아니다. 먹으러 가서 조금 덜 먹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남긴 것을 안 먹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런 인식들을 분석해보고 바꿔봐야겠다.

4. 내 몸 파악하기
_ 나의 생활 습관을 단순히 의지의 문제로만 귀결시키지 않아야 한다. 좀 더 나의 체질,
생물학적인 몸의 상태와 연관시켜 객관적으로 판단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서 내가 지난 주에 했던
폭식은 단순히 내가 의지박약이어서인가, 아니면 폭식을 하게 되는 환경과 생물학적 조건이 
형성되어서인가? 후자라고 생각한다. 
호르몬, 혈액순환, 체질 등의 문제. 수면의 질, 수면 패턴, 스트레스, 정신적 상태 등을 고루
고려해야 한다. 종합적으로 봤을 때 지난 주는 수면 시간이 충분치 않았고, 
생리할 때가 다 되어서 호르몬적으로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고, 
갑작스러운 추위로 인해 체온이 상당히 낮아져 있었다.
그런 상태에서 제대로 보온도 하지 않고 학교까지 걸어다니기를 감행했으니-
컨디션이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파악한 것이 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습관 중에 배에 힘을 주는 습관이 있다.
배를 들어가보이게 하려고 무의식 중에 배에 계속 힘을 주고 있는 건데
문제는 밖에서 뿐만 아니라 혼자 있을 때도 무의식적으로 계속 힘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복근은 엄청 단단하지만 호흡을 깊게 들이마시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쩌면 산소가 충분하지 않아서 혈액순환이 잘 안 되는 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확하든 정확하지 않든, 내 습관에 대해서 파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내 몸을 좀 더 잘 듣자.

5. 혼자 모든 것을 해야 한다는 강박 버리기
_ 내 몸은 나 혼자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기. 내년에는 피티도 받고 한의원도 좀 가보고 
해야겠다. 전문가들이 괜히 있겠는가. 한의원은 꼭 가봐야겠다. 수족냉증과 홍조가 동시에 있는데
어떻게 하면 혈액순환을 원활히 할 수 있는지. 첫 생리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하게 생리주기가 불규칙한데 자궁이나 호르몬에 이상은 없는지도 살펴봐야겠다.
무릎과 턱관절도 안 좋은데 진단도 좀 받아보고 
왼쪽 몸에 비해 오른쪽이 상당히 굳어 있으니 이것도 좀 풀어보고-
한의원, 헬스, 마사지 등등의 서비스를 내년에는 좀 이용해야겠다.

6. 내 몸은 내 생활 습관의 결과물이다. 
_ 몸을 나의 생활과 떨어뜨려놓고 조형할 대상으로 보지 않아야 한다. 몸을 이렇게 만들고 싶다
저렇게 만들고 싶다, 하고 대상화하는 것은 스스로를 온전하게 인식하지 못하게 만든다.
내 몸은 나라는 사람이 살아온 방식의 결과물이다. 그러한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사는 방식을 바꾸면 된다. 그러면 몸은 바뀌어 있을 것이다. 

7. 주변 환경 파악하기
_ 미국에 있을 때, 나는 군것질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교내에 매점도 없었고, 식당이 닫으면
뭔가를 먹을 수 있는 방법은 갖고 있던 음식 먹기, 시켜 먹거나 학교 밖으로 나가기, 아니면 자판기 
뿐이었다.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가게나 편의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원래 음식을 쟁여두는 성격은 아니다. 보이지 않으면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 편이어서
갖고 있는 음식은 없었다. 그 흔한 라면도 없었다. 오히려 내 미국인 룸메가 매일 신라면을 끓여먹고
나는 1년 동안 먹은 라면이 손에 꼽을 정도다. 
학교 밖으로 나가는 일은 나는 차가 없었기 때문에 대개 친구들과 함께 나가야 했다. 매일 나가는 것이 아니므로 이 또한 잦지는 않았다. 그리고 가장 쉬운 방법은 자판기인데, 사실 다행인지 자판기에는 
그렇게 맛있는 것들이 들어있지는 않았다. 결국 식당에서 주는 밥을 먹고 나면 저녁에는 무언가를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집에 오는 길에 편의점이 있다. 정말 들어오는 그 길에 딱 있다.
매일매일 들르는 것 같고 집에 있다가도 뭔가가 먹고 싶으면 편의점에 가게 된다.
이러한 환경이 더욱 더 군것질을 하기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게다가 통신사 할인도 되어서 
더욱 자주 가게 된달까..아무튼 이렇듯 주변 환경을 파악하는 것도 중요! 


아 졸리다.
친구랑 치킨을 먹어서 배가 너무 불러서 소화를 시키고 자야지 안 그러면 체할 것 같은데
너무 졸리다. 내일까지 과제 제출인데 하나도 못 썼다.
알바 끝나고 써야지- 이제 슬슬 자야겠다.

아무튼 이번 학기는 내 몸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살폈던 학기였다.
사실 살을 빼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는데,
살을 빼다 문득 깨달은 건, 
근본적인 생활 습관을 개선하지 않는 이상 단기적으로 빼봤자 다시 찔 게 뻔하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다시 찔 것을 왜 그렇게 열심히 빼야 하는가?
차라리 그 전에 생활 습관을 먼저 개선해두고,
그동안 쌓여왔던 지방을 태우는 게 순서일 것이다. 그래야 유지도 쉬울테니! 

어쨌든 내가 원하는 것은 무슨 완벽한 몸이 아니다.
그저 스트레스 받는다고 먹지 않았으면 좋겠고
맛있어서, 다양한 맛을 느끼면서 천천히 먹고 기분 좋은 배부름을 느꼈으면 좋겠고
이것이 평생의 식습관으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상치 못한 식비 지출이 적었으면 좋겠고 
불필요한 지방들을 털어버리고 싶다.
지금 내 허벅지의 튼실한 근육은 그동안 내가 열심히 걸었던 생활의 결과물이다.
내 풍부한 뱃살은 그동안 열심히 먹고, 군것질 해서 모아온 것들이다.
좋은 것을 천천히 맛잇게 먹는 습관을 통해 그동안 모은 뱃살들을 모두 이용하게 되었으면 한다.
내년에는 좀 더 좋은 습관을 가지고 그것이 몸에 반영되기를!
masterkey  17.12.16 이글의 답글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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