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엄마는 증언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자신은 하기 싫다며.
얼마 전에는
둘이서 이야기를 하자며 나를 차에 태워 나가더니,
아빠에게로 데리고 갔다.
차창 밖으로 아빠가 보이는 순간
움직이는 차에서 뛰어내려
무작정 도망쳤다.
달리고 달려서 근처 식당 뒷편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통 옆에 숨었다.
수중에는 돈 한 푼 없었고,
그 곳은 버스가 잘 들어오지 않는 동네였다.
나는 거기에 쭈그려 앉아 덜덜 떨고, 울었다.
여차저차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그 뒤로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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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하기 전에
상담사 선생님께서
엄마에게 무엇을 기대하느냐고 물으셨을 때,
나는
'증언이요'라고 대답했다.
모든 것을 이해해주고, 인정해주고,
잘못했다고 사과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그저
경찰서에서 부르면 경찰서에 가서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다,
고 증언해주기를 바랐을 뿐이다.
나는 그게 최소한이라고 생각했고,
그 정도면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최소한이 아니었다.
참,
어느 정도 현실적이 되어야하는 지.
아무튼,
지금에 와서는 엄마가 왜 증언을 안 해줄까, 생각하다보면
혹시 자신도 찔리는 게 있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왜 당시에 이혼을 하지 않았는지,
왜 신고를 하지 않았는지,
뭐 그런 걸 추궁달할까봐 무서운 건지.
지금은 일단 성폭행 자체에 대해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제 앞으로는 둘이 손을 잡고 어떤 행동을 보일 지,
모르겠다.
내 예상대로라면
엄마가 아빠 편을 드는 것도
있지 못할 일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둘은 '이해관계'가 일치하니까.
둘 모두 나의 고소 취하를 바란다.
각자 다른 이유이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둘이 힘을 합치면 충분히 이 사건을 혼란으로 빠뜨릴 수 있는 힘이 있고
엄마는 몰라도 아빠는 이런 점을 분명하게 캐치해내고 있을 것이다.
워낙에 두뇌 회전이 빠른 사람이니까.
그렇게 된다면
나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배신을 당한 것이 된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별로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배신이란 건 이미 오래 전에 당했다.
아빠에게는 7살 때 당했고,
엄마에게도 비슷한 시기에 당했다.
다만 아빠의 배신은 내가 확실하게 겪어내고 있었고,
엄마의 배신은 내가 무기한 연기시키고 있었을 뿐이다.
합리화를 시키고,
면죄부를 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하지만 둘 모두 이미 나를 배신했었고,
이제 그게 수면으로 떠오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고소를 한 이유
내가 가장 바라던 것도
이 모든 것을 수면으로 떠올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
.
상황이 좋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울하다거나,
절망적이라거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다거나,
하지는 않다.
지금 이 일기도 굉장히 맑은 정신으로 써내려가고 있다.
어제는 동아리 쫑파티에 다녀왔다.
'이 상황에 무슨 쫑파티야, 안 가'
가 아니라,
'이거랑 그거랑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이럴 수록 더 가야지.'
라고 생각했다.
전 같았으면 이 무게에 짓눌리고 휘둘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내가 상황을 판단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상황의 주인이 된 것이다.
어른이 된 내가, 어린 나를 용서하고
어린 내가, 어른이 된 나를 용서하는 느낌이 든다.
편안한 느낌.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내가 이 느낌을 위해 고소를 했다고 해도
엄마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게 나에게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 것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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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나는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고소와 관련해서 해결해야 할 것들도 해결 하고,
당장 있을 곳도 구하고
아르바이트도 새로 구해야 한다.
나 자신을 동정하지 않으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것들이다.
물론 슬프면 울 수도 있다.
필요하면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다만,
스스로를 동정하다가 구덩이에 빠지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티아레님이 말씀하시기를,
선택은 다이빙이라고 하셨다.
물 속에 뛰어들기까지가, 나의 선택.
그리고 남은 것은 급류에 몸을 맡기는 것.
나는 고소라는 선택을 했다.
다이빙을 했고,
나머지는 이제 흐름에 맡긴다.
최선을 다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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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하나'에
더욱 더 가까워지고 있는 중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