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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오락가락   trois.
조회: 2733 , 2013-11-30 00:13




나도 내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내가 일 하는 곳에서 교육이 있어,
스텝으로 천안에 다녀왔다.

성폭력 피해자 역할극에 대한 교육이었는데,
나는 계속 밖에 있다가 
선생님들이 실습을 하는 시간에
잠깐 몸을 녹이러 안으로 들어갔다.

맨 뒷자리에 앉아 
아늑함을 맛보고 있는데,
역할극의 내용이 들려왔다.



엄마 역할을 맡은 분의,
'우리 딸 인생 어떡할거야! 어떡할 거냐고, 사과해! 잘못을 인정해!'

가해자 부모의 역할을 맡은 분의,
'우리 애도 죽고 싶다 그래, 인생 망쳤다 그런다고! 걔도 동의했다고! 
옷 벗는 거 도와줬다니까?'



.
.




세 개나 되는 조들이 
각각 만들어내는 이런 소음들이
나를 약 2, 3년 전으로 돌아가게 해준 듯 했다.

내가 그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내가 늘 속으로 삼켰던 말들이 오고가는 것을 들으면서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한 번 쯤 울어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간만에 우니까 좋았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울었다.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지도 않으면서 울었다.
그저, 

남들과 다름 없이
'엄마'
하면서 울었다.

내려놓고 울어본 게 얼마만인지.



.
.

하지만 그 후로는 기분이 조금 가라앉았다.
역시 피해자로서의 나에 대한 생각이 나를 사로잡은 듯 했다.
터치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죽고 싶다,
고 생각했었는데

별로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은 게 아니다.
나는
나 자신을 죽여버리고 싶은 것이다.




'죽고 싶다'
는, 내가 내 삶이 힘들어 스스로 끝내고 싶다는 것이고

'나 자신을 죽이고 싶다'
는, 내가 나 자신이 밉다는, 나에게 화가 나 있다는 뜻이다.
삶에 대한 원망이 아닌,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인 것이다.

그러니까 답은,
삶을 끝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화해하는 데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 끝 차이에서 나오는 전혀 다른 결론이다.
생각을 갈고 닦아야 하는 이유는 여기 있다.
비슷해 보이지만,
조금만 더 정확해져도
결론이 바뀐다.




나와의 오해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에 대한 감정, 아빠와 동생에 대한 감정만큼이나
나에 대한 감정 역시 복잡하게 얽혀 있으니까.



.
.



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갔지만,
오래 붙잡아두지는 않고
바로 밴드에 털어버렸다.

네이버 밴드 앱에
아무도 초대하지 않고
페이스북처럼 쓰고 있다.

페북과 다른 점은 친구가 전혀 없이 나 혼자 쓴다는 것.
한적하고 좋다.





.
.



그렇게 다운된 상태로 집까지 왔다.
별로 삶을 지속하고 싶지 않은 기분으로
천안에서 집까지 왔는데,

집에 와서 동생이랑 인사를 하고
엄마랑도 인사를 하고
할머니가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서 씻고 있으려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그냥 지금 살고 싶은 대로 살련다.
태어나서 얼마나 행복해봤다고,
또 행복을 뒤로 미룬다는 거야.

큰 거 안 바란다.
그냥 지금 행복했으면 좋겠다.

몇 년 뒤,
성공한 뒤,
직업을 가진 뒤가 아니라
그냥 지금 좀 행복했으면 좋겠다.

성공을 바라지도
많은 돈이나 명예를 바라지도 않는다.
나는 그냥 
어디에서 뭘하든

행복하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내가 말 하는 행복이라는 건,
대단한 것은 아니다.
단지, 
더 이상 과거의 기억에 의해 무기력해지거나 
삶을 포기하고 싶어지는 기분에 휘어잡히지 않는,
그런 편안한 상태이다.

앞에 있는 사람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고
내가 지나온 길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고
오늘 일을 생각할 수 있는
명료한 그 상태.

나와 내가 하나가 되는 그 상태.
내가 일상을 살도록 내버려둔 뒤에
또 다른 나는 살짝 다른 세상으로 빠져나오는 
그런 일상이 아니라.


그렇게만 되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렇게 살기 위해 살 것이다.


자격을 쌓으려
인정 받으려
전문가가 되려
안정된 직장을 얻으려

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지 않기에는 불안하다.
살아본 적이 없으니, 무엇이 옳은지를 모르겠다.



일을 다니면서 나보다 스무살, 서른 살씩 많은 분들에게
여쭤보곤 한다.
어떻게 사셨는지,

대학을 안 나오면 불편한 지,
경력을 쌓는다는 게 그렇게 중요한 지,
지금 하는 일이 좋으신 지.


답은 비슷했다.
대학을 나와야 확실히 기회의 폭이 넓어진다,
짧게 일한 건 쳐주지 않는다,
지금 하는 일이 완전히 좋은 건 아니지만 
그런대로 만족하며 어딜 가든 똑같다,

라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기로 했다.
20년 남짓 살아오면서
나 자신을 위해서 살아본 적이 있었는가.

늘 다른 사람을 위해 한 발 물러섰다.
엄마에게서 남편을 빼앗고 싶지 않아서
동생에게서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아서

나는 나 자신을 아빠에게 내어주었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그리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내가 스스로 자처한 거래였다.

이제는 그 거래를 스스로 끝내고 싶다.
나 자신을 내어주고 싶지 않다.
그 누구에게도.

틀렸대도 상관 없다.
이렇게 산 걸 후회한대도,
미래의 나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 내가 좋은 걸 해야겠다.



.
.


가보고 싶은 곳을 가보고
해보고 싶은 것을 해보고.
한 군데 오래 있는 것보다는
이것저것 경험해보는 것이,
아직은 좋다.

경험해보고 싶은 것들이 아주 다양하게 많이 남아있으니까.
뭔가 나중에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오래 하고,
그런 것은 싫다.


나만의 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살아야겠다.
대신 좀 더 넓게 보기 위해 노력하면서.
여행을 많이 다니고,
사람들과 삶의 모습들을 조금 더 만나봐야겠다.



오늘도 처음으로 수원에 가봤는데,
수원이 그렇게 큰 곳인지 처음 알았고,
도심 한 복판에 그렇게 큰 성곽이 있는 게 참 신기했다.

일 하는 곳에서 
나이가 많은 분들과 같이 일 하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 좀 알 것 같기도 하고.




.
.



뭐, 무튼-
결론은 나를 위해서 좀,
지금의 나를 위해서 좀 살아야겠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미래의 나도 아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해주자는 것이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들을.



.
.



몇 시간 전에는,
최대한 예쁜 모습을 하고 죽어야겠다
는 생각을 하더니

지금은
어떻게 살아야겠다,
는 생각을 하는 데에

조금씩 적응을 하는 중이다.
나는 원래 이렇게 오락가락 하는 모양이다.
처음엔 죽어야겠다,
고 생각하는 쪽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게 일시적이라는 걸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 다시 회복되는 시간이
짧아지고 있다.

처음에는 몇 개월 걸렸던 것 같고,
점점 달수가 줄어들어가면서
몇 주, 
몇 일,

이제는 몇 시간이면 되는 것 같다.
인식의 힘이다.

오락가락,
이럴 때가 있으면 저럴 때도 있는 것,
늘상 이렇지만은 않다.

사는 지혜가 조금은 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