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진력이 동이 났다.
뭔가 한참을 맹렬하게 달려온 것 같다.
한동안 썼던 일기들을 돌아보니
무슨 오프라 윈프리 자서전 흉내내듯이 쓴 것 같다ㅋㅋ
다시 돌아보면 약간은 부끄럽기까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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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달리지 않아도,
주변 풍경을 뒤로 밀어내지 않아도,
나를 유지할 수 있겠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듯 하다.
누가 나를 붙잡고 말려도,
일상 다반사, 세상 일에 현혹이 되어도
내가 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그런 중심이 생긴 듯 하다.
이제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뚜벅뚜벅 걸어가면 된다.
샛길로 새지도,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도 않을 수 있으니까.
월요일 오후 8시 반에
친구와 함께 고소장을 제출하러 가기로 했다.
그러려면 오늘까지 고소장 마무리하고
증거 자료 정리해둬야지?
어제는 친구랑 엄마한테
고소 이야기 꺼내는 연습을 해봤다.
엄마가 할 예상대답을 친구와 함께 대비해보기!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그런 것까지도 그냥 다 꺼내봤다.
'너 고소 안 한다고 했었잖아?'
'동생 등록금은 어떻게 하고?'
'엄마 그런 거 싫어, 징그러워.'
'네가 알아서 해. 난 몰라'
'그냥 잊어버리면 안 되?'
등등.
하나 하나 어떻게 대답할 지 같이 나누다보니,
저 질문이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는.
대신 화만 내지 말자!
발끈하는 성격이 있어서
저런 말을 들으면
'아 그 때는 그 때고 지금은 지금이고!'
'등록금이 문제야? 나보다 돈이 중요해?'
'징그러워? 그게 지금 딸한테 할 소리야?'
'모른다니, 어떻게 모른 척 할 수가 있어? 진짜 무책임 한 거 아니야?'
'잊어버릴 수가 없다고. 어떻게 잊어버리냐고 이걸!'
이라며
짜증을 내기 십상이다.
짜증내지 말자, 나무관세음보살.
저런 건 엄마가 평생 해오던 말버릇이고
엄마의 폭포다.
그 흐름을 내가 무슨 말을 하든 바꿀 수는 없다.
그 폭포가 내 몸에 구멍을 뚫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 몸의 굴곡을 따라 흘러지나가도록,
나를 가다듬자.
질문에 담긴 여러 의도에 일희일비 하지 말고,
그저 그 질문에 답을 하자.
'그 때 안 한다며?'
짜증이 나는 질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때는 무서웠어. 고소할 준비가 안 되어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준비도 많이 했고, 마음의 준비가 많이 되었어.
무엇보다도 아빠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아.
그래서 고소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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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야기하자.
'왜 나를 몰라?'
라고 소리 지르지 말고,
상대는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모른다면 설명하자.
알아야 하는 게 당연하더라도
당연하다는 사실만으로 없던 지식이 생겨나지는 않는다.
중3인 동생에게 피타고라스의 법칙을 가르치다가
제곱근도 모르는 걸 발견하고,
답답하고 이해가 안 가
'중 1 때 배운 제곱근을 왜 몰라?'
라고 생각하지만,
내 동생은 제곱근을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게 아니다.
공부를 안 한 건 혼나야 할 일이지만,
만약 동생을 혼내고 싶은 게 아니라
피타고라스를 알게 해주고 싶은 거라면
뭐가 됐든 제곱근을 설명해주어야만 한다.
혼난다고 모르던 제곱근을 뿅, 하고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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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를 내고 울부짖는다고 해서
모르던 것을 엄마가 알게 되는 건 아니다.
나에 대해서 설명한다.
내가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면
그 태도는 분명 잘못된 태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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