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이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마지막 산행이 지난 겨울, 12월 크리스마스 전이었던걸 생각하면
몸풀기엔 딱 좋았다.
일요일 오후부터 비가 온다는 소식에
오전중에 다녀오자, 하며 집을 나섰다.
팔공산 방짜유기박물관에서 북지장사까지.
가을에 함께 산 트래킹화를 신고 차를 타고 달린다.
머리를 평소보다 조금 짧게 자른 당신이 어색해 힐끔힐끔 쳐다본다.
왜? 하고 당신은 앞을 보며 묻는다.
아니, 그냥. 잘 생겨서.
푸- 실소를 내뱉으며 당신은 배 안고프냐고 한다.
아침 9시. 주말치고 좀 이른시간이긴 한가? 그러고보니 아침도 먹지 않고 나왔구나..
가방 속에 양갱 있는데 줄까?
아니, 괜찮아- 올라가다 먹지 뭐.
주차를 하고 채비를 한다.
신발끈을 다시 묶고 자켓의 지퍼를 올리고,
난 가볍게 올라갈 맘으로 가방도 매지않고 물병을 당신에게 건낸다.
자기만 가방 매, 난 그냥 갈래.
내 물병을 받아들고 가방 속에 집어넣고 자, 가자! 하고 앞장선다.
좁은 마을길을 지나니 어느새 소나무 숲길이다.
와. 소나무향 난다. 송진냄새도 나고.
당신 말대로 크게 숨을 들이쉬니 가슴 한가득 상쾌하다.
좋다 그치.
응, 이런데도 다 있었네, 덕분에 좋은데 다닌다.
저만치 앞서가는 산객들도 있고 뒤따라오는 산객들도 있다.
벌써 내려오는 산객들에게 안녕하세요-인사를 하고
그들은 우리에게 안산하세요-한다.
당신을 따라다니며 산행을 하면서 지나가는 산객들에게 인사하는 법도 배웠다.
서슴없이 인사를 건네고, 또 안부를 묻고
정상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묻고, 또 내려가는 길이 안전하길 바라며 인사하는 법.
계곡도 있어, 우와!
저기 물고기 큰 것두 꽤 있네?
여름에 와두 여긴 시원하겠다, 그치
어느새 산사의 입구.
하얀 백구 한마리가 어슬렁거리며 서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내가 달려가서 예쁘다, 하며 따라갈래? 하고 묻자
이녀석 말귀를 알아듣는지 내 뒤를 따라 어슬렁어슬렁 걷는다.
산사의 보살개라고 산객들이 말한다.
절 입구에는 작은 연못이 있었다.
연못 안에 갇혀, 넓은 강이 어떤지도 모른채 살아가는 잉어들.
사람 발소리만 나면 떼를 지어 몰려들는.
근처 벤치에 앉아 물 한모금씩 나눠마신다.
바람이 불고 꽃과 나뭇잎들이 떨어진다.
오랜만이다.. 좋다.
당신덕분에 내가 등산을 다하네.
오니까 좋지? 시원하구..
응, 너무좋다. 비가 안오려나봐.
양갱을 나눠먹고 약숫물 한바가지씩 마시고 스님들께 인사를 하고 다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언제나 아쉽고 또 쉬운듯 어렵다.
올라오는 산객들에게 다시 인사를 하고, 귀여운 아이들의 웃음에 함께 웃는다.
4개월만에 산에서 당신이 웃는 모습을 다시 본다.
도란도란, 내려가서 뭐먹을까? 하고 묻는 내게
살뺀다더니 또 먹는 얘기냐? 며 구박을 한다.
요즘 입이 너무 달아. 막 맛있어서 못살겠어, 열무김치가 맛이 들어서 얼마나...
따발따발 말하는 내 입을 막으며 당신은 내 옆구리를 꼬집는다.
아악, 아파!
방금 내 손에 잡힌 그것은 뭐??
애..애교?
어처구니없다는 듯 당신은 날 보며 고개를 젓는다.
히힛, 우리 파전이랑 동동주 먹을까?
동동주 좋지! 넌 도토리묵이 더 좋다며.
당신 안 먹으니까 그냥 해물파전에 동동주 먹자.
그렇게 팔짱을 끼고 팔랑팔랑 ...
이제 날이 더 따뜻해지면 더 많은 곳으로 다녀야겠다.
다음번엔 오어사에 가야지.. 힛
+) 동동주 한통을 둘이서 다 비우고, 해물파전에 버섯전골을 시켰지만
버섯전골이 너무 맛있어 밥한그릇씩 싹 다 비우고, 파전은 절반도 못 먹었다는것.
동화사로 한바퀴 더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
오후 3시부터 내린다던 비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방울씩 내리더니
퍼붓기 시작했다는 것.
당신을 사랑하는 것도, 이렇게 해가 나오고, 또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불고 하듯
자연스러워졌다는 것. 일상이 되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