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바빴다.
10년째 떨어져 살고 있어서, 어버이날이면 아침 밥상을 차려드릴 수도 없고.
부랴부랴 반죽을 해서 롤케익을 말았다.
아빠가 좋아하는 단팥빵도, 직접 팥을 끓여서 앙금을 만들고,
호두, 땅콩도 다져넣고 만들었다.
천연비누를 만드는 언니에게 카네이션 비누를 만들어달라고,
그걸 모카빵이랑 바꿔서;; 비누까지 들고
예쁘게 포장해서 덜렁덜렁 들고선 엄마에게로 향한다.
진아!
어, 자.
의아한 눈으로 뭐냐고 묻는 엄마에게 빵이야- 하고 배시시 웃어보였다.
엄마는 이걸 줄려고 여기까지 왔냐고 묻는다.
겸사겸사 왔지.. 하며 다시 웃는 내게 엄마는 고맙다 하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전화를 한다.
진주에서 약국하시는, 주말부부인 아빠는 받자마자 어~그래- 하신다.
응, 어버이날이라서 한번 해봤어.
하하하, 어,그래~
말수 적기로 유명한 박 사장님.
하지만 그 뒤로 아빠가 짓고 있을 미소가 눈에 선해서 나도 웃는다.
밥 잘챙겨먹고요, 일요일에 저녁이나 같이 먹어~ 하는 내 말에
아빠는 알았다며, 너도 열심히 해라~ 하고 끊으신다.
어린이날, 당신과 포항에 다녀왔다.
회를 못 먹었던 내가 당신을 만나던 1년 가까운 시간동안
회를 먹게 되고, 소주의 참맛을 알게되었다랄까?
이번엔 내가 회 먹고싶다고 포항 죽도시장에 가자고 했다.
어린이날이라 경주쪽으로 차가 많이 밀릴 것같아서-
자동차전용도로를 타고 달리며 날씨 좋다, 그치? 하며 서로 웃는다.
죽도시장에서 2만원에 한접시하는 회에 상추쌈, 깻잎쌈, 김치쌈을 싸먹으며
소주도 한잔.
캬, 좋다 그치그치-
바닷바람도 쐬고, 시장구경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
시간이 없어서 보지못한 설국열차를 함께 본다.
저, 양갱이 그거구나.
왜?
설국열차, 개봉했을때- 사람들이 양갱 들고가서 먹으면서 봐야한다고 막 그랬거든.
완전... 으- 리얼인데?
다신 양갱 못 먹겠다고 막 그랬어.
바퀴벌레로 만들어진 단백질 블럭-이라고 표현되는데 모양새가 꼭 양갱.
주인공들이 막 씹어먹는데, 그 소리.. 음향까지 양갱먹는 소리였다.
우리 산에 갈때 이제 양갱 들고가지 말까?
하하하하, 하고 당신이 웃는다.
영화를 다 보고 피부관리 좀 하라고 말하니 까칠한 자신의 피부를 만지며
그래야겠지? 요즘 너무 푸석하고 주름도 느는 것 같아, 라고 울상이다.
응사였나 응칠인가- 쓰레기가 우루오스 광고하던데 당신도 오빠피부 되볼래?
당신은 빙긋 웃는다.
마지막 수업을 준비하면서, 잠시 자리에 앉았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선생이라는 자리.
쌤-이라고 부르는 학생-이라기보단 회사원-들을 가르치면서,
내가 배운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게 좋았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배워서 썩힌 동안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고정관념을 깰 수 있는 기회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고,
내게 배웠던 사람들이 더 새롭고,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나가는게 좋았던 것 같다.
내게 3차원, 정밀측정방법 등을 배운 사람들을 위해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하면서 당신에게 줄 선물도 준비했다.
자주가는 카페에 들러, 토요일저녁에 함께 생일파티를 하자고 말한다.
남사장님이 왠 파티? 하며 남자친구? 라고 웃길래
응, 맞아요- 토요일 생일이라서, 케익 만들껀데 밤에 파티하구 같이 먹어요.
알았어요, 승아한테도 말해놓을께- 하고 웃는다.
당신에게 어머님 드리라고 카네이션비누를 보냈다.
자신이 쓸거라고 우겨댔지만, 난 꼭 어머님 드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하길 바라시는 어머님.
서른 중반인 아들, 그리고 그 위에 형까지 결혼을 안 한다며 걱정하시는 어머님.
용한 점집에 가서 점을 보셨다는데..
형님은 올해 장가가는건 틀렸고,
둘째인 당신은, 여자친구가 있다고 말했다 한다. 그리고 올해 결혼할꺼라고.
그 말을 듣고 나는 여자친구 있어? 했더니
너잖아, 너! 하고 소리를 지른다.
근데 결혼할꺼라고 말했대? 하고 의아해하니,
다른사람이려나... 하고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어머님께 나는, 실속없는 여자,이다.
그런 실속없는 애나 만나지말고, 여자친구 있으면 빨리 집에 데리고 와라.. 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내 자존심에,
그래, 나 실속없는 여자다. 당신하고 결혼할 생각 없으니 걱정마시라구 해! 하고
버럭 소리나 지르지,, 하며 친구들은 말했지만.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라서 너무 아프다.
조금만.
조금만, 정말 조금만 더.. 하고 빌어본다.
당신과 함께 할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나는 행여, 나때문에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기회를, 시간을 낭비하는게 아닐까, 하는
자책을 한다. 당신을..
그냥 놔줘야하는건지. 계속 이대로 조금만, 이라고 되뇌이며 붙잡고 있어야하는지.
잘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