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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러시안블루
14.06.02
네
가시길 잘하셨네요...
왜 갑자기 김광규 시인의 <조개의 깊이>란 시가 떠오를까요?
무언가 가슴속에 담고 사는 삶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거에요
결혼을 한 뒤 그녀는 한번도 자기의 첫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도 물론 자기의 비밀을 말해 본 적이 없다.
그렇잖아도 삶은 살아갈수록 커다란 환멸에 지나지 않았다.
환멸을 짐짓 감추기 위하여 그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말
을 했지만, 끝내 하지 않은 말도 있었다.
환멸은 납가루처럼 몸 속에 쌓이고, 하지 못한 말은 가슴
속에서 암세포로 굳어졌다.
환멸은 어쩔 수 없어도, 말은 언제나 하고 싶었다. 누구에
겐가 마음속을 모두 털어 놓고 싶었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면, 마음놓고 긴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때로는 다른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해 주는 경우도 있었다.
책을 읽다가 그런 구절이 발견되면 반가와서 밑줄을 긋기도
했고, 말보다 더 분명한 음악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
나 끝까지 자기의 입은 조개처럼 다물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끝없는 환멸 속에서 살다가 끝끝내 자기의 비
밀을 간직한 채 그들은 죽었다. 그들이 침묵한 만큼 역사는
가려지고 진리는 숨겨진 셈이다. 그리하여 오늘도 우리는 그
들의 삶을 되풀이하면서 그 감춰진 깊이를 가늠해 보고, 이
세상은 한번쯤 살아 볼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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