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철이라고, 일손이 모자라 배추를 옮기고- 김장을 도와야한다고 하더니
당신은 회사일로 바빠서 오후에 출근했다.
궁싯거리면서.
킥킥 웃다가,
나는 엄마의 생신을 챙기고 미역국을 끓이고
온가족이 모여서 저녁식사를 한다.
생일축하노래를 부르고, 케익을 자르고- 같이 밥을 먹으며
단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맥주도 한잔하고.
술문화가 없는 집이라, 맥주 한병으로 온가족이 나눠먹고도 남는다.. ㅎ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당신이 언제 볼까? 하고 먼저 묻는다.
12시? 1시? 하다가 어디갈까? 한다.
오랜만에 바다도 보고싶고, 또 절에 가서 걷고도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하며 어물쩡하니
바다보러갈까? 하길래 응. 한다.
먼저 내려가 승아네에서 우엉차를 마신다.
승아가 키우는 강아지와 주변사람들이 키우는 강아지 세마리들이 뛰어놀고
예쁘다며 쓰다듬고, 우엉차를 마시고,
입술이 터진 나를 보고, 승아 남자친구가 립밤을 준다.
천연립밤이라고, 핸드메이드라고.. ㅎㅎ 고마워요, 하고 받아들곤 책을 보다가
밖에 렉돌이가 보이길래 나 갈께~ 하고 뛰어나간다.
밤새 잠을 못 잤다며 피곤한 표정을 짓는데, 그럼 멀리가지 말고 영화나 볼까? 하고 당신을 배려한다.
당신은 바다보고싶다며, 가지뭐- 하며 운전을 한다.
사실, 울산 방어진- 또 가고싶었는데,
가장 가까운 포항 영일대로 향한다.
몇년전 소개팅했던 언니들과 친구사이라며, 수십분 통화를 하길래
좀 토라져서 창 밖만 보고 있으니, 화났나며
변명같은 이야기를 끌어낸다.
됐어, 안 궁금하니까 말하지마. 관심없어.
당신은 나를 보더니, 삐졌어? 에이~ 하며 내 볼을 꼬집고 허벅지를 꼬집고 옆구리를 콕콕 찌른다.
하지마~ 간지러- 하며 깔깔깔 웃으니
이제 풀렸지? 화내지마~ 재잘재잘 떠들어야지, 그래야 좋지. 하며 웃는다.
그제야 당신을 보고 당신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약때문인지 자꾸 입이 말라서 휴게소에 들러 물 한병을 사고 다시 영일대로 향한다.
깔끔하게 정비된 해안가를 걷고 바다를 보고,
얼마전부터 죽도시장 늘 가던 횟집에서, 백김치에 회 올려서 먹고싶다고 노래를 했더니
죽도시장으로 데려간다.
그러나 ㅠㅠ.. 평소보다 더 많은 차.. 주차장도 만차에 꽉 막힌 도로에..
한번도 가보지 않은 회타운으로 들어가, 타워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횟감을 골라다가 식당에 자리 잡고 앉았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소주도 한잔 하고.
나때문에 아줌마한테 백김치 따로 없냐고 묻고 챙겨달라고 이야기하는 당신을 보며 웃는다.
회를 듬뿍 올려서 쌈싸서 입에 넣어주고는,
나 말고 누가 이렇게 쌈싸서 주냐~ 그치~ 하고 웃는 당신에게
맞아, 당신 말곤 없지.. 하고 따라 웃는다.
내가 가장 좋은데도 내가 가장 밉다는 당신을 보며, 나도 그래, 라고 말한다.
니가 나한테 푹 빠진게 아니라, 내가 너한테 길들여진 것 같아.
뭐래, 당신이 나한테?
그래. 너 아닌 다른 사람을 내가 어떻게 만나겠냐.. 걱정이다..
그래도 만날거잖아..
모르는 일이지만, 노력은 하겠지만, 잘 안되겠지. 니가 나를 이렇게 길들여버렸는데..
당신은, 나때문에 당신이 변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내가 당신을 길들였다고.
그런가, 하며 웃다가 복이아저씨를 보러 가자고 말한다.
가서 당신 옛날 이야기도 듣고, 같이 밥도 먹고 그러자. 진짜 복이아저씨는 보고싶어.
주변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지 않는 당신.
그 중에, 제일 친한 친구인 복이아저씨에게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내 이야기를 했다고 했었다.
복이아저씨는 나를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고.. 같이 산에 가자고 말했고.
저질체력으로 같이 가겠냐며 걱정하는 당신에게 갈 수 있어! 큰소리를 치니
이번엔 힘들다고 낙오하면 안 데리고 올라갈꺼야, 버릴꺼야~ 하며 으름장을 놓는다.
안돼.. 데리고 가야지.. 업어달라고는 안 할게.
수시로 내가 괜찮은지 묻는다.
약은? 챙겼어? 하며 나보다 내 끼니와 약을 챙기는 당신.
오래오래, 봐야지, 산도 같이 다니고. 술도 한잔하고.. 그럴려면.
웃기셔, 다른 남자 만날테야.
그래, 만나라, 만나. 너 버리고 갈꺼야, 나 혼자 집에 간다.
안돼.. 집까지는 데려다줘야지, 하며 쫓아가자
나도 안되는데, 니가 되겠냐, 다른 사람 만나는게... 하고 웃는다.
못 갔던 여름휴가를 다시 가자고.
1박 2일여행하자고 말한다.
집에 돌아갈 걱정하지 않고, 하룻밤 곤히 당신 안고 자고싶다고..
그리고 같이 눈뜨고 일어나고 싶다고.
그 때 너 아프면 어쩌냐.. 아플까봐, 걱정이지, 라고 말하는 당신에게
나는, 사랑하는 사람 품에 죽어도 괜찮겠는데? 하고 툭 내뱉으니
당신 표정이 굳는다.
말을 해도...
히, 완전 로맨틱하지~ 하고 웃는 날 보며, 내 볼을 꼬집는다.
문경에 가자. 가는 길에 영주에 들러서 부석사도 가고,
복이아저씨도 보고, 문경새재도 걷자.
언제가 좋을까?
그동안 아프기라도 하면, 또 안 데려간다고 하겠지?
입맛이 없더라도, 뭐라도 잘 챙겨먹고. 약도 잘 챙겨먹고.
조금씩 운동하고 책도 보고.
연말에 갈까? 연초에 갈까?
소백산에 눈은 언제 올까?
이번주는 일요일은 당신의 시험.
토요일에 선 보려나.. 어머님이 건네주신 선 볼 아가씨의 전화번호를 받았다던데.
괜찮은 척 하는거야, 라고 말했더니
그게 더 나빠, 쿨한 척, 괜찮다고 웃는거. 그게 뭐냐?
그게 어떻게 쿨한 척이냐, 내가 울면 당신이 더 신경쓸까봐 그런거지.
괜찮을 거다.
푸하하하..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인진 모르겠지만,
나보다 더 나은, 괜찮은, 사랑할 만한, 예쁜, 이해심 많은 여자는 없을테니까.
당신을 온전히 사랑해줄 여자.
바다보고 와서, 미쳤나보다.
자꾸 샘솟는 긍정의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