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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요즘   cinq.
조회: 2869 , 2015-05-31 16:23


남자친구를 사귀지 않은지 2년의 다 되어간다.
작년까지는 정신이 없었다.
올해부터는 조금 여유가 생겨서 연애를 해볼까,
싶기도 했는데
아직도 남자친구가 '생기진' 않았다.

딱히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지도 않고
내게 관심이 있다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조금 의기소침하기도 하고,
괜히 연애에 관한 잡생각만 많아지는 요즘이다.

연애는 왜 할까, 라든지.
연애가 뭘까, 라든지.

사실 요즘 친구들도 연애를 하고,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나도 연애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첫 째로는 크게 호감가는 사람이 없다.
있다면 이런 고민의 글은 커녕
그 사람 생각이나 하고 있었겠지-
연애를 꿈꾸면서.

둘 째로, 
호감 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 기회를 만들어보려는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전 같았으면 새로운 단체에 들어가본다거나,
새로운 사람을 사귀어본다거나 했을 텐데.

지금은 그냥 귀찮다.

셋 째로,
꼭 남자여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다.
요즘 여성주의를 공부하고 있는데
꼭 연인이 남자여야만 할 필요는 없다는 점에 대해서 깨닫고 있다.
여자를 좋아해본 적은 없지만, 
그리고 여자가 나를 좋아한다고 한 적도 없지만
그런 일이 있다고 해도 별로 놀랍지는 않을 것 같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을 것 같다.



.
.

아무튼.
이번 일기는 뭘 정리하려고 쓰는 글도
누가 보라고 쓰는 글도 아니므로
프레지보다도 더 어지럽게 써야지.


.
.

괜찮다 싶은 사람이 몇 사람 있긴 했다.
한 사람은 누가봐도 잘 생기고 착하고 이것 저것 다 잘 하는 사람.
착하고 순해보여서 관심이 갔는데
여자친구도 있고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여자가 너무 많아서
별로 친해지고 싶지 않다.

또 한 사람은 전에 같이 일도 해보고,
수업도 같이 들었던 사람이다.
붙임성도 좋고, 진지한 면도 있고,
다재 다능하고 생각도 깊어서 좋은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역시 이 사람도 여자친구가 있다.
요즘 나에게 연애 상담도 하고 그러는데,
거리를 좀 둬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또 한 사람은 동기 남자애다.
대학 새내기 때 좋아했고 서로 좀 꽁냥꽁냥 하다가 
결국은 흐지부지되어버린 애.
사실 그 꽁냥꽁냥도 내 입장에서 그렇지
진짜 그랬는지도 잘 모르지만.
쨌든 나는 확실하게 좋아하고 잘 해보려고 했는데
동아리 남자애 하나가 눈치없이 너무 대놓고 엮어대는 바람에
서로 어색해져버렸다.

그 아이는 군대를 갔고,
얼마 전에 제대를 했고,
몇 년 동안 만나지도 않았던 터라 그냥 어색하게 인사 정도만 했었다.
그런데 나랑 친한 동생이 요즘 그 아이와 친해져서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나에게 했다.

그래서 그냥 새삼스레 옛날 생각도 나고 그런 것 같다.



.
.

쨌든 지금 가장 호감에 가까운 건 두 번째의 오빠인데,
여자친구가 있는 사람을 건드릴 생각은 없다.
요즘 여자친구와 사이가 별로 안 좋은 것 같으니
헤어지면 그 때 친하게 지내봐야지.


.
.

요즘은 그냥 평범하게 살고 있다.
대단한 고민도 별로 없달까?
고민이라봤자 연애, 교환학생, 과제, 돈.

평범의 범위 안에 들어온 것 같아서 기분이 색다르다.
내 친구들이 하는 고민들이 나에게도 1순위가 된 기분:-)

물론 고민이란 기분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요일 오후 카페 창가에 앉아 써내려가는 글이,
나도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다'라는 건
조금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랑스럽고.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쭉 놀았다.
학교 축제라서 금요일 저녁에 친구들과 놀았다.
저녁을 먹고 포켓볼을 치다가,
호프 집에 가서 술을 먹고,
자리를 학교로 옮겨 노상을 차렸다.
새벽까지 놀다가 학교 공용 공간 아무곳에나 들어가
의자를 이어 붙여 쪽잠을 잤다.
새벽같이 일어나 악기를 챙겨서 공연을 하러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동아리 친구들과 놀았다.
오전에 공연을 뛰고
밥을 먹고, 빙수를 먹고 다 같이 연극을 보러 갔다.
저녁까지 든든하게 먹고서야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을 탔다.
집으로 오는 길에 친구와 둘이서 공원에 누워서 또 고민 상담을 하다가
집에 와서 룸메언니랑 수다를 떨다가
이불에 쓰러져 잠들었다.

아침에 꾸물꾸물 일어나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비빔면을 해먹고, 
악기를 가져다놓으러 동아리 방에 갔다가
청소를 하는 애들을 만나 만두를 먹고,
청소를 좀 도와주다가 과제가 하도 밀려서
지금은 카페에 와서 아이스초코를 하나 물고 노트북으로 일기를 쓰는 중이다.

종강이 3주 남았다.
대학에 들어와서 가장 편하게,
즐겁게,
아무 생각 없이 다닌 한 학기였다.

명확한 목표가 있었고
함께 할 친구들이 있었으며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았다.

다 내 선택에 의해서 만들어진 평안과 행복이라 더욱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나 자신 말고,
'너와 나'에 대해서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는
내가 궁금했고
네가 궁금하긴 했어도
'너와 나'가 궁금한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런데 요즘은 '우리'가 궁금하다.
'사이'가 궁금하고, '관계'가 궁금하다.



.
.



사람들이랑 수다 떠는 것도 한층 편해졌다.
그렇게 얘기를 나눠보면 볼수록
내가 하는 고민 중의 태반은 
다른 사람도 하고 있다.

다들 타인의 눈치를 보고
미움 받을까봐 무서워하고
연애 문제로 힘들고,
외롭다.

나는 혼자서 생각하고 살아오면서
나의 이런 문제들이 내가 성폭행을 당해서 그런 줄 알았다.
내가 성폭행을 당해서, 아버지에게 미움을 받아서
타인의 눈치를 보는 거고
연애가 힘든 거고,
외롭고 우울한 거라고.

그런데 전혀.
어제 내가 같이 이야기를 나눈 친구는
정말 예쁘고 부모님도 정말 좋으시고
돈도 많고 착한 아이였는데도
타인의 눈치를 본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싫다고 했고.
연애도 힘들다고.



.
.


그냥 그런 것 같다.
성폭행 때문에 내가 앞으로 힘들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금까지 힘들었던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나의 모든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완전히 영향이 없는 것은 없다.
당연히 영향이 있겠지.
하지만 모든 것이 그것으로부터 비롯되지는 않았다.

연결짓지 말자.
진실이 흐려진다.

내가 지금 연애를 안 하는 것이 성폭력 피해자이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니까 너무 그 문제랑 연관 짓지 말고 살자.
진짜로 거기에 원인이 있다면
해결하면 그 뿐이다.


물론 현실적인 문제들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진짜 문제인지,
아니면 문제라는 사회 통념상, 편견상 문제인 것인지도 확실히 구분해야 한다.


성폭력 피해자는 평생 힘들다.
이 명제는 참인가, 거짓인가?

답은,
'내가 만든다.'이다.

성폭력 피해자는 연애를 못한다.
참인가, 거짓인가?


역시,
'내가 만든다.'이다.

물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환경들이 있고,
타인들이 있다.
하지만 저 명제를 '참', '거짓'으로 나누기가 힘든 것이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아닐 수도 있다'라는 답을 얻을 수 있는 쪽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성폭력 피해가 나를 힘들게 할 수도 있지만,
최대한 덜 힘든 쪽을 택해서 살아가면 된다.

연애가 힘들 수도 있지만,
이 문제를 이해해줄 수 있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고
그런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혹은 그런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내가 모든 경우의 수를 알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확답을 할 수가 없는 것이다.


.
.

이제 나 자신에 대해 좀 더 확신을 갖고 살고 싶다.
뭔가 잘못되었을 거라는 의심 대신에.



일반명사   15.05.31

왠지 읽기 좋다고 느끼고, 또 응원하게 되어요 ㅎㅎ

李하나   15.06.22

감사합니당♥

프러시안블루   15.06.02

내가 본 하나양은
늘씬하고 예쁘니까 맘만 먹으면 남친쯤이야 언제든지.

李하나   15.06.22

헐ㅠㅠ감사해요 블루님, 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