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가 고민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열등감이다.
나는 특정 집단과 상황에서 열등감을 느낀다.
내가 외모를 꾸미지 않았을 때(특히 안경을 썼을 때) 누군가를 만나는 것,
교내 동아리, 두 번째 해외 봉사팀에 대해서
열등감을 느낀다.
그 사람들과는 연락도 하고 싶지 않고
만나면 자신감도 없다.
물론 티는 나지 않는다.
내가 열등감을 표현하는 방식이 상당히 방어적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한테 관심 없어'
그래서 나는 늘 주변 사람들에게 시크하게 보일 뿐
열등감이 있는 사람으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나와 연애를 해보거나
조금만 지내보면
그게 다 나의 열등감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성폭행 피해자라는 것 때문에도 수치심과
열등감이 심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건 없어졌다.
누구를 만날 때 내가 성폭행 피해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경우도 별로 없고.
그래서 사실 열등감도 심한 정도는 아니다.
생활이 불편하지도 않고,
단체 생활도 다 가능하고
대중 앞에서 말 하는 것도 문제 없고
친구도 있다.
다만 나는 그저 가끔씩, 그리고 특정한 상황에서 찾아오는
열등감의 정체가 '궁금' 할 뿐이다.
그리고 왠지 조금만 파면 알 것 같기도 하고.
그 뿌리는 분명 가족이다.
이번에는 우리 네 식구 뿐만 아니라 외가 식구로 확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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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엄마가 갖고 있는 형제들에 대한 열등감이
내게도 전해졌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특히 갖고 있는 열등감 중 하나는,
내가 '찌질해보이지 않을까'하는 건데
이 느낌은 내가 외가 식구들과 함께 있을 때
우리 가족에 대해서 느꼈던 느낌이다.
우리 가족은,
특히 우리 부모는 다른 식구들에 비해 잘 놀지도 못 하고
뭔가 촌스러운 것 같았다.
이모, 삼촌들은 어디를 놀러가도 제대로 갔다.
살림살이는 거의 다 비슷했던 것 같고
오히려 우리 집이 제일 나았던 것 같았다.
유일하게 빚이 없고 집도 차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친척들이 겨울이면 스키장, 여름이면 수영장을 가도
우리 집은 절대 안 갔다.
특히 엄마가 안 갔다.
엄마는 뚱뚱하기도 하고 자신감도 별로 없어서
바깥 활동을 잘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맘 먹고 수영장을 가도
수영복 하나도 제대로 없었다.
외가 식구들은 바닷가에 가도 그냥 가질 않고
텐트나 보드 같은 것들을 가지고 가서 재미있게 노는데
우리 집은 그런 건 하나도 없었다.
어린 마음에 그게 창피했고
주눅이 들었던 것 같다.
친척 언니 오빠들은 예쁘게 꾸미는데
우리 엄마는 그런 것은 사주지도 않았다.
그런 열등감,
사실 사춘기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열등감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그게 해결이 안 된 모양이다.
아직까지도 남아 있는 걸 보면.
왜 해결이 안 됐는지는
차차 들여다보면 알겠지만
아마 그 뒤로 친척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기만 해서일 수도 있다.
점점 우리 집의 상황은 안 좋아졌고
엄마는 가족들 사이에서 외톨이가 되어갔다.
스스로가 문을 걸어 닫기도 했다.
나는 그런 우리 엄마가 너무 찌질해보였다.
왜 당당하지를 못 할까,
왜 스스로를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만들면서
저렇게 찌질함을 자처하는 걸까.
가족 행사가 있으면
나가기 싫다고 절대 나가지 않았다.
다들 짝이 있는데 자기만 거기 가서 무슨 청승이냐고-
그런 모습들이 너무 창피했다.
다들 한 번씩들 무너지면서 사는데.
이모네 집은 이모부가 바람을 펴서 이혼할 뻔한 적도 있었고
큰 외삼촌네 집은 사업이 쫄딱 망한 적도 있었다.
작은 외삼촌네 집은 작은 외삼촌이 망나니여서
매일 술먹고 숙모와 오빠를 때려서 결국에는 이혼을 하고 말았다.
사실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막내 삼촌밖에 없다.
결혼을 안 했고,
중국에 가서 일 하고 있기 때문에 가족들과의 마찰도 적은 것이다.
그런데 유독 우리 엄마는
자꾸 숨는다.
천성이 조금 내성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다행히 나는 자라면서 아빠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서
당당함이 80%, 수줍음이 20%이지만
특정 코드에서는 수줍음이 증폭한다는 점이
나는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아마 내 자신이 만족스럽지 않나보다.
그냥 모든 순간에 자신감이 충만했으면 하는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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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뭔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보이거나
노는 것에 능숙한 사람들에게 열등감이 느껴진다.
그 사람들의 눈에 내가 찌질해보일 것 같다.
이 원형은,
친척 언니다.
친척 언니는 나보다 3,4살이 많다.
사실 만난 지 오래 돼서 정확한 나이를 잘 모르겠다.
서로가 어렸을 때는 잘 놀았다.
그런데 언니가 중학생이 되고서
되게 예쁘게 꾸미기 시작했다.
옷도 예쁘게 입고 귀걸이도 하고-
사실 숙모가 예뻐서 그런 걸 잘 챙겨줬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몇 살 아래였던 나는
아직 어리기도 하고 그래서
그만큼 꾸미지도 못했고
또 그런 걸 사지도 못 했다. 옷이나, 예쁜 악세서리.
그래서 어린 마음에 언니를 굉장히 동경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우리 집이 부끄러웠다.
친척들 사이에 가면 늘 수줍어서 조용히 앉아 있었다.
지금도 막내 삼촌을 만나면 말도 잘 안 한다.
다른 친척들은 서로 말도 잘 하고 하는데
나랑 내 동생은 거의 말도 없고
데면데면하게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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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오
이것이 내 수줍음의 원형인 듯 하다.
친척 언니와 외가 친척들에 대한 자신감을 회복해봐야겠다.
내가 열등감을 느꼈던 건
엄마, 아빠, 그리고 경제력.
세부적인 건 차차 생각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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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열등감이 학교 생활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서도 나는 내가 찌질하다고 생각해서
자신감이 정말 없었다.
아이러니한 건 전혀 자신감 없어 보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왜냐하면 친구들이 나를 평할 때
조용하고 착한 아이라고 평가하기보다는
활동적이고 시크한 아이,
라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정말 수줍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건데-
그렇게 안 보이는 걸까.
나중에서야 내가 '회피'라는 방어기제를 통해
내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했음을 깨달았다.
나는 '못 어울리겠어'가 아니라
'어울리는 데 관심 없어'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서
친구들에게도 그런 메세지를 보내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정말 반에서 말도 잘 안 하고,
친구도 많이 사귀지 않았음에도
나는 인기가 많았고
한 번도 왕따를 당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게 나의 회피 성향을 오래 지속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사람들은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갈 호의는 있어도
다가오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 다가가는 용기는 많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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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고등학생 때는 이 회피 성향이 정점을 찍었다.
나 외의 모든 사람들을
'한심하게 친구나 사귀는 아이들'이라고 규정지었던 것이다.
정말 엄청난 방어기제였다.
역시 고등학교에서도 성공했다.
나는 공부 잘 하는 아이, 운동 잘 하는 아이,
과묵한 아이 등으로 통했다.
코웃음이 나왔지만 어쨌든 다행이었다.
찌질한 아이는 아니었으니까.
내가 가장 무서워한 건 그거였다.
찌질한 아이.
나는 사람들에게 문을 닫고 지냈지만
같은 학년에서는 왠만하면 나를 알았다.
이 아이러니적인 상황 속에서
나는 내 고등학교 생활을 '자폐아적'이라고 칭하고 싶다.
어쨌든 나 스스로는 모든 문을 닫아걸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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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가족 관계에서 느꼈던 열등감,
사춘기 시절에 생긴 외모 콤플렉스가
가정 환경 및 친족 성폭력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와 겹치면서
제대로 해결이 안 된 것 같다.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제대로 된 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방어기제로 열심히 둘러싸서 쭉 가져간 것이
아마 문제 해결을 지연시키지 않았나 싶다.
대학생이 되어서
모든 문제를 성폭력 트라우마로 돌리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면서
이 부분은 많이 좋아졌다.
이제는 인맥이 넓다는 소리를 많이 듣지만
사실 느낌은 변한 게 없다.
가까운 사람을 대하는 느낌은 고등학생 때나 지금이나 변한 건 없다.
하지만 확실히 여유가 생긴 것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열등감을 느끼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분석을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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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먼저 할 간단한 일은,
내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즉,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 무엇인지 캐치를 해서
그 행동을 받아들이거나 개선시키거나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집청소 하기가 귀찮은데
그걸 하지 않는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면 집청소를 하자. 날 잡아서.
그럼 기분도 상쾌해지고 나 자신도 자랑스러워질 거야.
그리고 나는 안경 쓴 내 모습이 못 생겼다고 생각한다.
안경을 써도 자신감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직 잘 안 된다.
그럼 렌즈를 사자.
안경을 써도 자신감 있어야 한다고 자신을 자꾸 내몰지 말고
좋은 도구가 있음 쓰면 되지.
아르바이트해서 빠른 시일 내에 렌즈 사줄게:)
사회 참여를 덜 하는 내 모습이 자랑스럽지 않다.
주변 친구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사회 참여를 한다.
시민 단체 활동을 하거나 정당 활동,
혹은 시민 운동들을 열심히 한다.
최저 임금을 올리기 위해
세월호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을 멈추기 위해
핵을 없애기 위해
빈곤을 해결하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모든 성(性)이 평등해지는 세상을 위해,
등등의 목표를 갖고 열심히 활동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런 친구들 사이에서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
성폭력 없는 세상?
뭔가 거창하지 못하다는 느낌이 자꾸만 든다.
이것도 하나의 열등감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위한 무슨 행동
-가령 여행이라든가, 교환학생이라든가
를 할 때면
내가 사회적인 문제에 기여할 시간에 나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는
죄의식이 느껴진다.
정말 그러한가?
물론 지금보다 훨씬 많이 사회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는 것은 맞다.
젊은 사람으로서 해야 할 일도 많고.
정치에도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지.
하지만 일단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잘못'은 아니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꼭 그렇게 단체 활동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것만이
사회참여는 아니니까.
그리고 나는 좀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해도 되.
그렇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걸.
나는 언어에 관심이 많아서 언어 공부도 하고 싶고
여행도 좀 더 하고 싶은 걸.
그러면 그냥 그걸 하면 되.
그걸 할 시간에 집회에 나가야한다고 생각하지는 마.
그런다고 내가 집회에 나가는 건 아니잖아?
세상은 굴러가.
출처도 없는 시선은 이제 그만 벗고
자신의 삶을 인정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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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아무튼 뭔가 복잡한데
책들을 더 읽고
사람들과 대화도 해보면서
하나 하나 차근차근 풀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열등감이라,
풀고 나면 또 얼마나 좋을까.
또 얼마나 좋아질까.
새로운 숙제가 생겨서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