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일 때
아빠에게 썼던 편지를 오랜만에 읽어보았다.
과제를 할 때는
과제 말고 모든 것이 재밌다고 했던가.
문서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했는데,
안 읽어볼 수 없었다.
과제가 아니니까!
.
.
담담하게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
겪었던 일,
내 감정이 쭉 표현되어 있었다.
구체적으로.
덕분에
내가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잠시 잊고 있었던 것들까지도
다시 기억할 수 있었다.
맞아,
나는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편지의 마지막은 통쾌했다.
'나는 늘 아빠에게 바라기만 했다.
나를 그만 괴롭혀 달라고.
내게 사과해달라고.
죄책감을 느껴달라고.
하지만 이제 그런 건 바라지 않기로 했다.
네가 나한테 미안해하든 말든,
나는 신경 안 쓰고 내 인생을 살 거다.
왜냐하면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증명해냈고
세상에 알렸고,
당신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해 내가 할 일을 다 했다.
이제 남은 것은 앞으로를 사는 일이다.'
읽는데
새삼 나 자신이 정말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
.
3심이 끝난 지 6개월이 넘어간다.
이제는 조금 아득해졌다.
신기할 정도로.
20년 가까이 내 인생을 지배했던 문제가
단 몇 개월만에 기억 너머로 희미해져간다.
물론 몸은 기억하겠지만,
적어도 나는 이제 더 이상 과거에 매여있지는 않다.
.
.
내가 썼던 말로
일기를 마무리해본다.
"당신은 나를 망가뜨렸지만
나는 내 힘으로 다시 다 쌓아올릴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