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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감사/불만 일기 (08.22)   neuf.
조회: 614 , 2022-08-22 10:53


감사일기와 불만일기를 모두 써보기로 했다.
사람은 감사도 하고 불만도 하니까.
불만'만'하는 게 문제이지, 불만을 하는 게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불만인지 정확히 아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떻게 불만을 함으로써
부정적인 정서를 경험하고 거기에 빠져드는 지를 알아차리는 것도
정서 조절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당

.
.

[ 어제의 감사 일기 ]

1. 자전거 타고 한강에 가서 경치 보면서 저녁을 먹은 것.
- 한강까지 자전거 타고 다녀올 수 있는 건강한 신체가 있어서 다행이다.
- 비가 안 오고 날씨가 좋았다.
- 저녁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이 있어서.

2. 재밌는 넷플릭스 드라마를 찾은 것
- 빌어먹을 세상따위(The end of the fucking world)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 학대, 방임, 성폭력, 그루밍, 살인, 마약, 자살 등 각종 삶의 문제와 마음의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난 이런 드라마를 보면 오히려 안심이 된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이런 드라마를 발견해서 감사하다!

3. 연락할 수 있는 가족, 친구가 있는 것.
- 내가 기분이 안 좋은 이유를 설명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동생이나 친구들에게 연락은 했다.
주변에 누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심이 조금 되었다.

4. 등산화가 기숙사에 있는 것!
- ㅋㅋㅋㅋ목요일에 설악산에 가기로 했는데 내 등산화가 본가에 있는 줄 알고
어떻게 가져와야 할 지 고민이 많았는데 어제 동생한테 물어보니까 집에 없다는 것이었다.
혹시 몰라 기숙사를 뒤져봤는데, 신발장 한켠에 비닐 봉지에 싸여 있었다.
기억은 정확히 안 나지만 전에 들고왔었나보다! 정말 다행이다. 감사감사~~

5. 컨디션이 좋은 것!
- 사실 주말에 기분이 너무 안 좋았는데, 움직이니까 그래도 좀 나았다.
기분이 좋아진 건 아니지만 더 나빠지는 건 막을 수 있었고,
주말에 뭐라도 했다는 게 기분을 좀 더 나아지게 해주는 것 같다.
요즘 신체 컨디션은 최상이다. 체력도 좋고, 
주변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오는데도 나는 걸리지 않고 있다.
운동을 해서 근육도 붙고 있고, 식단을 병행해서 살도 빠지고 있다.
몸이 건강한 것은 늘 내가 가장 감사한 부분 :)

6.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해소한 것
- 스트레스를 엄청 받았는데 건전하게 해소했다. 
그냥 먹고 싶은 것좀 먹고, 자전거 타고 한강 갔다오고, 드라마 보고. 
누군가한테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누구한테 이야기할 지 모르겠고, 한다고 한들 무슨 얘기를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사람들한테 연락도 해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움직이기 다소 귀찮았지만 침대에서 나와서 청소도 하고, 
자전거 타고 한강 가서 경치보고 맛있는 것도 먹었다.
스트레스를 운동, 청소 등 몸을 움직이는 것으로 푸는 게 가능해서 다행이다.


[ 어제의 불만 일기 ]

1. 난 왜 외롭고 슬플 때 연락할 사람이 없을까?
- 어제는 정말로 외롭고 슬펐다. 엉엉 울고 싶었지만 울음이 나오지 않아 답답할 정도였다.
마치 속이 울렁거리는데 토가 나오지 않아서 목구멍에 자꾸 손가락을 넣는 형국이었다.
근데 나오지 않는 토를 나오게 하는 방법은 아는데, 
나오지 않는 눈물을 나오게 하는 방법은 잘 몰라서 결국 울지 못했다.
토요일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마지막회를 보면서 잠깐 운 정도?

- 이럴 때 연락할만한 사람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누구에게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할 지 모르겠다.
엄마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퍼, 라는 말을 누구에게 해야 하나?
내가 그동안 얼마나 나를 희생했는지, 이제야 좀 깨달아져서 슬프고 다행이라는 말을
누구에게 전해야 하나? 누가 공감해줄까? 사실 누구한테라도 이야기하면 들어주겠지만,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안 해버릇해서 그런 것 같다.

2.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할까?
- 이건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면 늘 같이 떠오르는 생각이다. 
한강에 가서 벤치에 앉아 저녁을 먹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냥 다 평범하게 산 것처럼 보였다.
가족, 연인, 친구들, 혹은 혼자서 경치를 구경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물론 다른 사람들도 힘들 것이다. 그냥 내 고통에 젖어 있을 때는 나만 힘든 것 같이 여겨진다.

3.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청첩장을 직접 만나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이건 요즘 관계에 대해서 하는 고민이다. 나는 사람들이 좋지만 친밀감을 잘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을 얕게, 거리를 두고 만나는데, 이게 평소에는 편하지만 
가끔 중요한 일이 있을 때 곁에 있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고민이다. 
나도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

- 생일 때 함께 보내는 사람이 없다거나, 나중에 결혼할 때 청첩장을 직접 만나서 전해줄만한
가까운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사실 와줄 사람은 많을 것이다. 나는 얕고 넓은 관계를 맺으니까. 
그렇지만 가까운 사람이 없는 것이 좀 고민이다.

4. 왜 우리 엄마는 나를 보호해주거나 위로해주거나 나를 위해 화내주지 않았을까?
- 이건 내가 요즘 우울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사실 시작은 되게 사소한 고민이었다.
그냥 요즘 인간관계에 대해서 고민하다가 내가 자기 주장을 잘 못 하는 것에 생각이 미쳤다.
요즘 자기주장훈련이 좀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사실 동기들이랑 얘기하면 다 자기주장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자기주장을 못하는 건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 그런데 문제는, 내가 자기 주장을 하지 못하고 내 욕구를 무시하고 남을 배려하는 것의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집에서 내가 희생당해왔기 때문이다. 
'네가 참아'. '이게 무슨 별 일이라고.' 이런 말을 밥 먹듯이 들어왔고, 
우리 집은 나의 침묵과 희생 위에서 돌아갔기 때문에.

- 나는 뭘 하든 너무 빨리 근본적인 것을 끌어올린다. 
이런 통찰이 나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고통이 너무 크다. 
이제 곧 3학차인데 지금 이걸 끌어올려도 될까?
근데 문제는 한 번 올라오면 다시 잘 안 들어간다는 것이다.
더 이상 희생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떻게 뒤로 되돌린단 말인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식했는데 어떻게 과거의 삶의 방식으로 돌아간단 말인가?
현재의 방식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과거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결국은 어린 시절 내내 가족들은 나를 착취하고 나를 침묵시켜서 내 고통으로 숨쉬며 살았다는 것을,
이 잔인한 현실을 인정하고 나 자신을 위해 분노하는 것이 시작일텐데.
무튼 이건 나중에 자세히 쓰기로 한다.

-

이렇게 적어놓고 보면 좋은 점은
나의 감사와 불만의 패턴이 보인다는 것이다.
감사는 현재의, 구체적인 것을 대상으로, 조건없이 한다.
그냥 "오늘 ~ 해서(여서) 감사하다."이다.

그런데 불만은 과거의, 추상적인 것을 대상으로, 이유를 물어가며 한다.
그리고 대부분 '나'에 대한 불만이다.
" '나'는 '왜' ~하지 못할까? ~일까?" 이런 식으로.
별 답도 없고, 너무 두루뭉슬하고, 포괄적이다.
그래서 더 우울해지는 사고패턴으로 빠지는 것 같다.

물론 힘든 일을 겪었기에 내가 갖는 불만 그 자체의 내용이 너무나 타당하긴 하지만,
다소 그 과거의 경험에 빠져드는 경향이 있달까?
나는 현재에 있는데 말이다.

추상적인 불만은 되도록 글로 표현해서 정리하고,
가능하면 불만도 감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에 대한 것, 구체적인 것으로 조건없이 해보자.


1. 난 왜 외롭고 슬플 때 연락할 사람이 없을까?
→ OO언니에게 전화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 

2. 나는 왜 남들처럼 평범하지 못할까?
→ 이건 어떻게 바꾸지?

3. 나중에 결혼하게 된다면 청첩장을 직접 만나서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청첩장을 만나서 줄 정도로)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을 피하지 않았으면.)

4. 왜 우리 엄마는 나를 보호해주거나 위로해주거나 나를 위해 화내주지 않았을까?
→ 엄마는 보호자의 의무를 다 하지 않았어. 나는 그런데도 그에 대한 분노를 숨기고
엄마랑 잘 지내고 있어. 이건 뭔가 잘못됐어.


Better~ 
무튼 정리하니까 좀 객관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개강 앞두고 또 멘탈 풍비박산 날까봐 걱정했는데
이제 나의 실존적인 과제와 현실적인 과제의 균형을 맞추며 
나아가는 법을 좀 터득한 것 같다.

주중엔 또 현생 열심히 살고
시간 될 때 또 엄마와 어떻게 할 지 고민해봐야지.
생존자 자조모임도 오랜만에 신청해놨다.

Tedeschi 와 Calhoun이라는 심리학자는
외상 후 성장의 개념을 이야기하면서
외상을 경험한 후 생존자들은 더욱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긍정적인 경험이란
과거의 끔찍한 기억을 완전히 잊는 것도 아니고,
심리적인 고통이 모두 사라진 상태도 아니다.
과거의 기억과 심리적인 고통이 지속되는 와중에도
더 큰 삶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욱 충만하고 의미있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나 역시 또 다시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이게 내가 다시 퇴행했다거나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것은 성장의 과정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앞으로 내 삶에서 늘 있을 일이다.
나는 이번에도 현명하고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한다면 또 누가 나타나서 도와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이제 씻고 출근해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