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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개운한 하루   neuf.
조회: 519 , 2023-07-22 00:48

샤워를 마치고 잔잔한 음악을 들으면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몸과 마음이 무척 개운하다.

사실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다.
요새 대학원도 종강하고 할 일들이 다 마무리가 되어서
크게 할 일이 없는 일상을 보내고 있다.
오전에는 조교 출근을 했다가 오후에는 방에서 그냥 쉬었는데,
이런 저런 잡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꼭 혼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옛날에 힘들었던 생각도 나고
엄마에 대한 미운 마음
전남자친구와의 관계에서 아쉽고 화났던 점들
지금의 불만족스러운 것들

이런 것들이 머릿 속에 둥둥 떠다니면서 불안하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래서 누워있어도 제대로 쉬기가 어렵다
적당히 누워있다가 일어나서 오늘이 중복이라길래 시장에 가서 닭강정을 사왔다!
양이 많아서 엄청 배불렀다ㅋㅋㅋㅋㅋ
닭강정 먹으면서 미드 좀 보다가 답답해져서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산책을 하러 갈 때까지만 해도 별로 마음이 좋지 않았다
비행기를 보며 신기한 마음도 들었다가
하천 물을 보면서 우와 저기 떨어지면 깊겠다, 이런 생각도 했다가.

1시간 정도 무작정 걷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산책을 해서 좀 기분이 괜찮아졌지만 가슴이 여전히 답답해서 
돌아오는 길에 혼자서 무인 코인노래방에 들렀다
천원을 넣고 첫 곡은 매직카펫라이드를 부르고
두 번째로 알라딘의 speechless를 불렀다
둘 다 엄청 지르는 곡인데
특히 speechless 부르면서 엄청 질렀더니 속이 후련해졌다!!!

노래 두 곡으로 오늘 하루치 불안이 모두 날라갔다^^
속이 뻥 뚫려서 기분 좋다.
스트레칭 좀 하고 잠들어야지.
내일은 짐정리 좀 하고 운동갔다가 카페가서 노닥거려야지.
그리고 답답해지면 또 코노 가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일요일엔 친한 언니랑 등산을 가기로 했다
그치만 일기예보를 보니 비가 많이 올 것 같아서ㅠㅠ
그냥 맛있는 거 먹고 수다 떨어야지!
지쳐서 혼자 쉬고만 싶은 시기에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언니가 있어서 감사하다.

.
.


내가 가진 것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지금의 나를 덮어서 압도되는 날이 많다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다거나, 내 인생은 망했다거나,
그런 극단적인 생각들이 든달까?

그렇지만 한 편으로 또 지금의 내가 가진 것들도 많다.
정말 뿌듯하게도 대학원 석사 과정을 잘 마쳤고,
감사하게도 내가 가진 능력으로 돈도 벌고 있고
앞으로 자격증을 따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전문가도 될 것이고.
저녁으로 맛있는 닭강정도 사먹을 수 있고
친구도 만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도 할 수 있고
헤어져서 힘들지만 어쩄든 연애도 하고.
나름 나쁘지 않은 청춘인 것 같다.

아까 개운한 기분으로 걸어들어오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내 인생은 행복할 수 없을 거라고 느껴졌다가
노래 2곡으로 이렇게 개운해지다니ㅎㅎ
만약 내가 겪은 일 때문에 내가 행복하게 살지 못한다면
죽을 때 너무 후회될 것 같다!
내가 생존자인 것을 부끄러워하며 불행하게 살면 내 삶이 너무 아까워
한 번 밖에 없는데!!!! (급발진ㅋㅋㅋㅋ)

요새 줄곧 하던 고민의 답이 내려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생존자이지만 행복해야하는 걸까?
아니면 생존자이니까 불행한 게 어쩔 수 없는 걸까?
적어놓고 보니 이분법적이지만 꽤나 고민했었다.

어떤 날은 절대 행복해질 수 없는 것 같은 날이 있겠지만
또 어떤 날은 행복하고 다 잘 될 것 같은 날도 있을테니
그 때 그 때에 충실하게
그렇게 왔다갔다 하면서 사는 게 아닐까?
내 인생은 행복해! 이러고 딱 정해놓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또 마음이란 게, 삶이라는 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냥 어둠 속에 빠졌을 때 다시 올라올 수 있도록 내 마음에 귀를 잘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나는 잘 살고 있다.
잘 살아왔고, 앞으로도 잘 살 것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느 날에도,
이 기억이 마음 어딘가에 남아
눈 감고도 믿으며 나아갈 수 있기를.
그러다 어느새 빛이 들면 또 눈을 뜨고 힘차게 나아가는 거지 뭐~
별 거 있나!
내 인생 홧팅이다 ♡
굿나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