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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
 [영화관람] 밀리언 달러 호텔   카테고리가뭐야
조회: 2306 , 2002-12-29 03:09

시사회가 너무 이르게 있어서 조금 늦었다.

어떤 영환지 전혀 사전 지식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런게 좋더라.

남들이 어떤 영화다,재밌다,재미없다 이런 소리가 파다해 버리면 내 느낌이 소리들에게 쏠리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앉은지 5분도 안돼서 이 영화가 보통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난 미친놈년(!)들에게 관심이 많다.

기회가 되면 미친 사람에 대한 글을 써 보고 싶고 나 자체가 미친 사람이 되어 보고도 싶다.

어릴때부터 좀 어디가 이상한 듯한 사람을 길거리든지 건물내에서 부‹H히면 그 사람의 생각의 세계가 너무 궁금하고 알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혼자 중얼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사람, 허공에 있는 누군가와 혼자 대화를 나누는 사람, 자기가 인기가수인냥 혼자 거리 공연을 펼치고 심지어 옷을 벗고 다니고 지하철내에서 금주의 인기가요,팝 챠트를 줄줄이 외면서 다운타운 인기도를 분석하는 기막힌 머릴 가진 미친사람도 봤다.

어쩌다가 뭔가 이상하다라는 낌새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면 기다리던 반가운 사람을 만난거처럼 내 눈은 호기심이 가득해지고 가슴은 반가움으로 들뜬다.

왜 그런 미친(?) 반응이 내 안에 생기는지 모르는데 길가다가 우연히 미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이 성병환자류만 아니면 그 사람을 몰래 미행하고 행동패턴을 뒤에서 연구하고 저 사람의 뇌의 구조는 어떤 체계를 이룰까를 고민하고 즐겼다.

그 고민들이 나를 생각하게 만들고 상대를 동정하게 하기도 하고 이해해보려 하게 하고 알고 싶다는 지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모든 감정들은 평소에 내가 아주 좋아하는 감정들이다.

불쌍한 미친넘들을 놓고 정상인의 특권을 과잉 오남하는 건 아닐까.
아닌거 같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고 또 사람의 정신구조와 영혼에게 관심이 많다.

모든 사람이 태어날때 부터 어딘가 이상한 정신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을텐데 그 사람이 저렇게 변질되게 된 사연은 어떤게 있을까.

저 사람에겐 말 못할 아픔이 있는게 아닐까.
위로받고 치유받으면 저 비정상적 행동들은 고쳐지는걸까.

그렇게 그들을 머리로 분석하고 가슴으로 이해하는 행위들은 나의 천부적인 어떤 성향에 만족을 준다.

난 미친놈들이 나오는 영화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고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무시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를 더 돌아보게 하고 나를 더욱 깊이 있는 생각의 세계로 인도한다.
그리고 그들의 과장되게 비틀어진 모습에서 숨겨진 나를 찾기 때문에 난 그들이 고맙고 좋기까지 하다.

미쳤다라는건 어딘가 경지에 오른듯한 범접할 수 없는 세계로 가버린 잡히지 않는 애틋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에게서 내안에 숨겨진 모습에 대한 동질감과 다가갈 수 없는 이질적인 신비감을 함께 느낀다.

그들은 내가 좋아할 만한 매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를 자극하는건 역시 그들이 다시 보통으로 돌아올 순 없는걸까라는 치유와 회복에 대한 욕구다.

그리고 소외되고 소수인인며 철저히 외롭고 철저히 완벽해버린 어떤 존재에 대한 경외심,그러나 지속해서는 안될 완벽함에 대한 파괴욕을 함께 느낀다.

흔히 미칠려면 곱게 미치지라는 말을 하곤 한다.
미친 정도와 미친 강도와 모양과 색깔이 틀려서 그렇지 모든 사람은 미쳤고 미칠 수 있고 미쳤던 적이 있는 경력자들 또는 보균자들이다.

미친 성향을 안고 있으면서 노멀인척 살아가는 내 모습에 대한 거울이 되어 줘서 그런지 인간이란 존재의 여러가지 모양에 대해 애정과 관심이 있어서 인지-아마도 다 이유가 되는것 같다- 그들이 좋다.

그래서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가 좋고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속에 살아있는 강박증 환자들이 사랑스럽고 밀리언 달러 호텔에서 만난 여러 주인공들을 가슴에 품고 안아주고 싶었다.

이건 조금 다른 얘기지만 그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으로 조금 늦게 들어 갔기 때문에 또 그 영화가 어떤 영환지 전혀 사전지식없이 봤기 때문에 5분도 안돼서 느낀 비범한 영화에 대한 감동은 나를 가슴아프게 했다.

영화속에 묘사된 미묘한 스케치는 나도 알고 있는 감성이었다.
난 저 느낌이 뭔지 알겠다.
그러나 표현하진 못했다.

저 영화를 만든 사람은 누구길래 저 감성을 알고 있기만 한게 아니라 저렇게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단 말인가.
새로 나온 신예 감독인가?
저런 영화는 정말 처음이다.
그 작품세계와 경쟁해야한다는 그리고 그러지 못하고 있는 내 능력의 한계에 대한 인정함이 내 가슴에 질투심을 일으켰다.

질투심은 날카롭고 뾰족하다.
예리하고 깊다.
깊은 예리함은 따가운 고통을 준다.
그리고 출혈만큼 수분부족을 느끼기 때문에 갈증을 느낀다.
그 영화를 보는 내내 목말랐다.
난 놀라움과 경이로움으로 그 영화에 심취해 정신을 못차릴 정도였는데 주변 반응 정말로 냉정하고 따가웠다.

지루함으로 몸을 뒤틀고 지루함을 잊기 위한 잡담이 계속 오갔고 영화 중반부에 밖으로 나가 버린 사람들로 통로가 붐비기도 했다.

저렇게 갈리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
받아들이는 사람은 깊이 심취하게 하고 거부하는 사람들의 반응도 적극적인 그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
그럼 저 영화를 만든 작가는 누굴까.

영화를 보는 내내 저 작가가 젊은 사람일까봐 두려웠다.
신예가 저런 작품을 만들어 낸다면 정말 절망이다.
그 길은 그런 사람에게 내줘야 할거 같다.
나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처럼 느껴질거 같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리를 뜨기가 아까울 정도로 마음속에 박힌 알 수 없는 감정들을 되세길때 감독이름이 뜨고 너무나 친숙한 한 거장의 이름이 뜨는 순간 인정이 되면서도 안도가 되는 솔직한 마음..
그래..역시 거장의 작품이었어.
나 너무 조급해 하지 않아도 돼.

난 영화를 보고 좀처럼 울지 않는다.
나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미치는 것 없이 나를 생각없이 감정에 심취하게 만들어 최루성 눈물을 흘리게 하는것들에 대한 반발감이 들고 실질적인 대책없이 감정100%의 눈물은 사치스럽고 허무하다.

내가 손댈 수 없는 허구의 세계를 보고 눈물을 흘려 주기엔 내 눈물이 아깝다.
난 그렇게 내 눈물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나를 억지로 울게 하는 영화로 부터 냉정하다.

그러나 얼마전 보았던 빔벤더스의 작품은 나를 울게 했다.
`부에노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쿠바에 얼마 안남은 재즈연주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디지탈 영화였는데 영화가 시작하기 전에 낯설던 그 주인공들이 영화가 끝날 무렵이면 깊이 그들과 하나되고 아는 사람이 된거 처럼 정이 들고 영화가 끝나니까 그들과 헤어지는거 같아서 눈물이 났다.

칠순을 넘기는 고령자들의 경지에 이른 신들린 연주가 언젠간 사라질것만 같고 그렇게 사라지는것들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깃들린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내게 옮겨와 나를 울게 했다.

내가 빔벤더스의 영화를 처음 본건 모든 관객들이 다 지루함에 몸서리 쳤던 베를린 천사의 시라는 영화였다.
얼마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제목인가.
그리고 영화의 한장면은 얼마나 아름답고 그 영화에 대한 느낌이 아름다울거라고 전달되는가.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었을때 얼마나 지루한 제목인가 얼마나 지겨운 영상인가 얼마나 졸리운 나레이션이란 말인가..

그렇게 막 10대를 벗어난 내게 그 영화는 지겨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빔벤더스는 사람냄새를 아는 작가이고 인간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존재감에 대한 질문에 공감하고 그 존재감에 대한 해답을 얻지 못한 허무한 영혼을 위로한다.

이 세계는 과연 허구일까 나는 실존하는걸까.
이 모든것이 거짓이 아닐까.
거짓이면 어떻하지.
나는 언제 어디에 서있는거지?

내가 나를 나라고 느끼는 이 자아도 진짜일까?
허구와 실제라는것 조차 세상에 있는 개념일까.
모두들 착각하고 속고 있는건 아닐까.
내가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아갈 가치가 있는 존재일까?
죽었다고 내 존재가 사라질까.
살아있다고 내가 존재하는걸까?

이 모든 생에 대한 회의와 허무함을 따뜻하게 위로하고 존재하라고 격려하며 살아가라고 허구란 없다라고 말해주는듯하다.

자칫 그의 영화는 죽음도 삶도 별로 경계선 없는 연장선으로 느껴 죽음을 미화하기도 하는것 같지만 잘만 받아들이면 그의 작품은 살아있는것을 사랑하게 만들어서 훗날 죽는 날이 와도 그걸 받아들이고 반갑게 맞을 수 있는 용기를 준다.

죽는 날 그날 하루를 위해 기나긴 살아있는 날들이있는지 모르겠다.
우린 이미 모두 미쳤다.
이왕 미친거 곱게 미쳐서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고 친구처럼 죽음의 그날을 준비하자.

죽음이 오래 기다린 친구처럼 느껴지려면 하루하루에 충실해야 하겠지.


  등록일자: 2002/05/30 1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