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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암-노성훈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 [ 임호준 ]   주소록
조회: 1503 , 2003-11-30 10:35
위암-노성훈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 [ 임호준 ]  

  



    
  신촌세브란스병원 외과 노성훈 교수는 외과의사가 ‘체질’이다. 약간 벗겨진 머리와 부리부리한 눈 등 외모에서부터 외과가 아닌 다른 의사를 상상하기 힘들다. 지금은 건강을 위해 자제하는 편이지만 과거의 두주불사(斗酒不辭) 주법(酒法)도 그의 ‘외과다움’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가 ‘체질’인 진짜 이유는 수술실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고 평화롭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외래 진료, 회진 등을 하면서도 한번에 두세시간씩 걸리는 위암 수술을 매주 14~16건씩 한다. 하루 3~4건의 수술을 소화해 내는 그에게 “체력에 부치지 않냐”고 묻자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흐르는 수술방에만 들어서면 오히려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그 바람에 그는 매년 600건 정도의 위암을 수술하는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그의 수술법은 좀 독특하다. 그는 수술 때 칼 대신 전기소작기를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전기소작기는 출혈 부위를 지져 지혈하는 목적으로 사용하는게 보통이지만 노 교수는 자르고 지지는 수술의 전 과정을 전기소작기 만으로 해결한다. 그 바람에 4시간 이상 걸리는 수술시간이 2시간 정도로 단축됐고, 출혈이 적기 때문에 수혈을 받는 환자도 5% 미만에 불과하다. 회복이 빨라 수술 뒤 1주일이면 퇴원이 가능하다.
그는 또 환자의 편의를 위해 콧줄과 배액관도 없앴다. 수술 후 분비액과 가스 등을 빼 내기 위해 코에 줄을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시키는 콧줄이나 수술 부위에서 생긴 고름을 빼 내기 위해 환자의 배에 심는 배액관 등은 환자에겐 고통을 주고 입원 기간을 연장시키는 주범이었다. 노 교수는 환자들이 불편해 하는 점을 묻고 연구한 끝에 이같은 수술법을 개발했다.
1978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노 교수는 1986년부터 연세의대 교수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 국립암연구소와 일본 가나자와 대학 등에서 연수했다. 그러나 지금은 위암 수술법을 일본 등에 ‘수출’하고 있다. 일본 연수시절 그의 스승인 국립 시즈오카 암센터의 요네무라 박사가 제자들을 한달씩 한국에 보내 수술법을 배우게 하는 등 ‘일본 학생’들이 줄을 잇고 있다.
논문 집필도 기록적이다. 2001년 뉴욕에서 열린 4회 국제위암학회에서 13편의 논문을, 올해 로마에서 열린 제5회 학회에선 무려 18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로마 학회에선 ‘위암 적정 수술법 마련을 위한 8개국 대표 심포지움’에 한국 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위암은 생활습관, 특히 식생활 습관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짜고 매운 음식, 불에 탄 음식, 뜨거운 음식을 좋아하면 위암에 걸릴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진다. 잦은 회식이나 폭음, 흡연, 심한 스트레스도 위암 발병과 관계가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자의 1~2%는 만성 위염을 거쳐 위암으로 발전한다. 유전성 위암은 전체의 1% 정도에 불과하지만 전체 환자의 10% 정도는 가족력(家族歷)이 있다. 유전 되지도 않는데 한 가족에 두 명 이상 환자가 있는 이유는 가족끼리는 같은 음식을 먹고, 심지어 헬리코박터균도 공유하는 등 생활환경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위암 예방을 위해선 먼저 입맛을 바꾸고, 헬리코박터 제균치료를 받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하면 이같은 노력은 위암 가능성을 다소 줄일 뿐 예방하지는 못한다. 위암은 수 십년 동안 수 많은 발암인자들이 어우러져 발병하므로, 위암에 걸리고 말고는 인간의 노력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노 교수는 ‘2차 예방’을 강조한다. 암 자체를 예방할 순 없다면 정기검진을 통해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위암이 악화되는 것만이라도 예방하게 빨리 발견하자는 것이며, 그것이 2차 예방이다. 위암은 1기에 발견되면 95% 이상, 3기 초에만 발견되도 60% 정도 완치되지만 암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상태로 발견되면 수술도 못하고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다.
많은 사람이 속쓰림, 소화불량, 구토, 통증 등을 위암의 증상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이같이 애매모호한 증상을 판단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위암 환자 1000명을 조사한 결과 7%는 증상이 전혀 없었고, 22%는 속 더부룩함 등 애매모호한 증상이 있었고, 51%는 명치 부위의 통증이 있었고, 15% 정도는 체중이 감소했다. 그러나 무증상이나 애매모호한 증상은 물론이고 통증이 나타나는 경우라도 위·십이지장 궤양으로 인한 통증과 구분이 안되기 때문에 위암으로 의심될 만한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은 경우엔 십중팔구 늦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30대에 접어들면 정기검진을 시작하라고 그는 강조한다. 위암은 수십년에 걸쳐 진행되므로 나이가 들수록 발병률도 높아지지만 30대 환자도 10%나 되므로 안심해선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기검진을 할 때 주의해서 살펴봐야 할 것은 만성 위축성 위염, 장생피화상, 위용종 등 이른바 위암의 전암(前癌) 증상이다. 일반적으로 위·십이지장염이나 궤양이 암으로 발전하는 일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만성 위염, 특히 위 점막이 위축돼 얇아지면서 염증이 생기는 만성 위축성 위염이 있는 사람의 10% 정도가 16~24년 뒤 위암에 걸리게 된다. 위의 점막 세포가 소장이나 대장의 점막 세포와 비슷한 모양으로 바뀌는 장상피화생이 있는 경우나 위에 양성 종양(폴립)이 있는 경우도 위암 발병 가능성이 높다. 검진에서 이런게 발견된 사람은 더 철저히 검진을 받아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조기 위암 발견율은 30~40% 정도. 그러나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국가 차원에서 정기검진 사업을 시행해 현재 조기 위암 발견율이 60~70%를 웃돌고 있다. 최근 국가가 저소득층에 대해 위암 등 5대 암 무료 검진 사업을 시작한 것은 만시지탄이나 다행이라고 그는 말한다.
일단 암 진단을 받은 경우엔 당황하지 말고 의사를 전적으로 신뢰하라고 그는 강조한다. 암 세포가 온 몸에 전이된 경우라도 적절히 치료받으면 완치를 기대할 수 있으므로 지레 포기하지 말고 의사의 치료방침에 따르라는 것. 얼마든지 완치 가능한 사람이 주위 사람의 말에 더 솔깃해 병원 치료를 포기하고 민간요법을 받다 ‘희망대로’ 사망한 경우를 그는 지금껏 너무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제발 고집 좀 피우지 말라”고 그는 말한다.
/임호준기자 hjlim@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