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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64 , 2003-11-30 10:38


수면장애-정도언 서울대병원교수 [ 임호준 ]  

  



    
  정도언(52) 교수를 취재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기자의 ‘입 맛’에 맞게 의학지식을 ‘가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지 틀리지 않다면 대충대충 넘어가줘야 기사 쓰기가 수월하지만, 그는 항상 의학적이고, 원칙적이고, 정확하게 말하기 때문에 약간만 내용이 어긋나거나 비약돼도 “노(NO)”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 바람에 애초의 ‘목적’을 달성치 못하고 전화를 끊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레지던트나 병원 직원들에게도 ‘깐깐’하긴 마찬가지다. 조금도 과오나 편법을 인정치 않는다. 한 병원 관계자는 “환자에게 가장 정확하고 꼼꼼한 진료를 해야 한다는 집착이 때론 주위 사람을 힘들게 하지만, 그 속에서 ‘참 의사’의 길을 배운다”고 말했다.
1976년 서울의대를 졸업한 정 교수는 정신분석학 및 수면의학이 전문분야. 국내 프로이드 학파의 ‘거두’인 조두영 서울의대 명예교수의 뒤를 이어받아 지난 5월까지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또 1991년 한국인 의사로는 최초로 미국수면의학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으며, 1992년 서울대병원에 수면다원검사실을 최초로 개설하는 등 국내 수면의학을 이끌어 오고 있다. 디지털 수면다원기록기의 개발, 만성 난치성 불면증의 단기 입원치료 프로그램 개발 등이 그의 업적이다. 그러나 수면의학이 너무 과학성만 강조해선 안된다고 그는 강조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수면장애 환자의 정신세계까지 침투해 진단·치료하는 게 특징이다.
정 교수는 “수면장애는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국가 차원의 문제”라며 “수면장애로 인한 국가적 손실을 줄이기 위해 미국처럼 정부차원의 수면의학 연구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잠을 자야 피로가 회복되고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수면 중엔 인체 근육과 신경 등이 휴식상태에 들어가며, 젖산 등 낮시간 축적된 각종 피로물질이 분해된다. 또 성장호르몬 등 여러가지 유용한 호르몬이 분비돼 성장과 신진대사 등을 촉진한다. 강제로 잠을 못자게 하면 면역력이 극도로 떨어져 사망한다는 동물실험 결과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간과하는 또 다른 잠의 중요한 기능은 정보처리와 갈등해소다. 사람의 꿈은 기억을 정리, 분류, 삭제, 저장하는 일을 담당한다. 쓰레기와 같은 과거의 기록을 모두 떠 안고 살아간다면 인생이 얼마나 고달플까. 꿈을 통해 사람의 뇌는 필요하고 유용한 기억을 저장하고, ‘쓰레기 기억’을 삭제하게 된다. 따라서 꿈을 많이 꾸면 “잠을 설쳤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정도언 교수는 필요한 잠을 자면서 꿈도 충분히 꿔야 학습 능률이 올라간다고 지적한다. 졸려움을 참으며 밤 늦게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악몽도 나쁜 것만은 아니다. 대구 지하철 참사 등과 같은 충격 이후 겪는 악몽은 현재의 경험과 과거의 나쁜 경험을 통합해 다소의 치료적 기능을 한다고 정 교수는 설명한다. 물론 악몽이 지나쳐 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는 예외다.
사람의 잠은 잠의 깊이에 따라 1~4단계로 분류되며, 꿈을 꾸는 렘 수면 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잠이 들땐 얕은 잠인 1단계를 거쳐 2-3-4단계로 진행되며, 4단계가 끝나면 렘 수면 단계로 올라와 꿈을 꾸게 된다. 렘(REM·Rapid Eye Movement)이란 안구가 급속하게 움직인다는 뜻이다. 렘 수면이 끝나면 다시 1~4단계 중 어느 한단계로 돌아갔다 다시 렘 수면으로 돌아오길 하룻밤에 4~6회 반복한다.
수면시간의 첫 1/3에 깊은 잠 즉 3,4단계 수면이 집중돼 있고, 끝 1/3에 렘 수면이 집중돼 있다. 깊은 잠 단계에선 외부 자극 없이 저절로 잠을 깨는 일이 거의 없는데, 깊은 잠은 보통 새벽 2시 정도에 끝나고, 그 이후엔 얕은 잠과 렘 수면이 반복되는 게 보통이다. 성인의 잠은 20~25%, 아기의 잠은 절반 정도가 꿈이다. 꿈을 안 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데, 꿈을 기억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심리적이고 애매한 것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논리적인 사람보다 꿈을 더 잘 기억한다. 또 꿈꾸는 도중이나 꿈 꾼 직후 잠을 깨면 더 잘 기억한다.
그렇다면 사람은 몇시간 정도 잠을 자야 할까. “정답이 없다”고 정 교수는 잘라 말한다. 수면 시간은 체질에 따라 다르며, 일반적으로 성격이 긍정적·적극적인 사람은 수면시간이 짧고, 수동적·소극적인 사람은 길다고 한다. 개인의 노력으로 줄일 수 있는 수면시간은 최대 30분 정도며, 그 이상 억지로 줄이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나폴레옹은 토막잠을 여러번 나누어서 잔 것으로 유명한데, 잠은 한번에 이어 자야 1~4단계와 렘 수면이 적절히 조화돼 피로회복, 신진대사, 성장, 기억력 저장 등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것이다.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는 수면장애는 미국에서만 7000만명 이상이 겪는 현대병이다. 잠을 충분히 못자면 집중력 사고력 판단력이 저하돼 산업경쟁력이 떨어지며,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며, 체르노빌 원전사고와 같은 대형 참사를 일으키기도 한다. 따라서 미국에선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1993년 국립수면장애연구소를 세워 수면을 연구하고 있다.
수면장애에는 불면증과 수면무호흡증 외에도 100여 종류가 있다.
그 중 렘수면 운동장애는 꿈에서 벌어지는 일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병이다. 꿈을 꿀 땐 온 몸의 근육이 풀어져 정상인들은 꿈을 행동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나 렘수면 운동장애 환자는 근육의 힘이 남아 있어 강도를 때려 잡는다고 옆에서 자는 아내를 몽둥이로 내려치거나, 악당을 피해 도망간다고 뛰어가다 벽에 얼굴을 부딪히는 등의 사고를 당하게 된다. 과거엔 취침 전 두꺼운 가죽 혁대나 쇠사슬로 몸을 침대에 묶어 사고를 예방했으나 요즘엔 근육을 무력화시키는 약물을 사용한다.
기면병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잠이 쏟아져 심지어 말을 하거나 식사를 하다 잠에 빠지는 병이다. 이 병이 있는 사람은 웃거나 흥분하면 갑자기 온 몸 근육의 힘이 빠지는 ‘탈력발작’이 나타나 간질 치료를 받는 일이 많으므로 주의해야 한다고 정 교수는 강조했다.
그 밖에 사지운동증은 무릎 아래 근육을 주기적으로 수축시키는 병으로 그 바람에 숙면을 취할 수 없게 되는 병이다. 유사한 증상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종아리가 저리거나 가려워서 잠이 들 수 없는 병도 있다. 이같은 수면장애는 수면다원검사를 통해 진단·치료 될 수 있다.
/hjlim@ch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