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난번에 많이 편찮으시다고 하셔서 진주로 한번내려가 뵌적이 있는데, 결국은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누나와 나는 비를 맞으며 전주로 내려갔고, 가기싫은 나는 억지로 가야만 했다.
정말 가기싫었다. 오늘은 학원에서 문제도 집어주는 날이고, 그리고 해야할 공부양도 아직 많이 남아있었고, 정말 큰 이유는 그 어색한 분위기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유가 없었다라고 해야할까?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다는것 다른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기 싫다는 것은, 아마도 자기가 초라하게 느껴지기때문일것이다. 난 초라하다. 적어도 지금은...
남들앞에 보여지는 내모습이 너무도 초라해서 보여주기 싫은것 같다. 백수에 돈도없고, 비젼도 없고, 학력도 딸리고....그렇다고 심하게 어린나이도 아니기에 다른사람들이 생각하는것 듣지 않아도 보지않아도 뻔히 알수 있다. 한심해하고 답답해하겠지...
하지만 나는 전주까지 누나등쌀에 떠밀려 내려갈 수 밖에 없었고, 어머니와 만난 나는 형식적인 대화만 주고 받았을 뿐...역시 나의 무관심은 다시 작동되고 말았다.
장례식장은 사람들로 많이 북적였다. 워낙 시골 분이시라 마을주민들 다아시는 사이였고 자식들도 꽤 많이 있으신 편이라 여기저기서 식구들이 다 합쳐지고 하니 장례식장은 우리한팀밖에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북적북적하니 분위기가 꽤 좋았다. 나이가 많으셔서 다들 호상이라 생각하는지 울거나 흐느끼는 사람은 한명도 못봤고 다들 웃고 떠드는 마치 마을잔치같은 분위기였다.
외할아버지의 죽음...나에게는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을 일이었다. 이라크파병군이 죽음보다도 올림픽의 금메달보다도 한자 신동의 출현보다도 더 큰 감정의 기복이 생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어렸을적 몇번보고 기억도 다 잊혀지고 쭉~ 안보다가 바로 몇달전 아프시다고 해서 병원가서 얼굴만 들이민것이 내기억의 전부니까... 옆집아저씨가 죽었어도 이러진 않았을거다. 나에게는 성수대교참사나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대구지하철참사만큼정도의 안타까움만 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도 금새 다른사람들의 왁자지껄한 분위기로 인해 없어지고 난 밤새도록 밤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는 나와 누나를 다른사람들에게 소개시켜주기 바빴고, 우리는 여기저기 어른들께- 솔직히 지금은 기억도 안나는 사람들에게 인사만하고 다녔고 그렇게 인사를 하다가 우리또래의 애들하고도 인사하게되었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안나지만 그래도 나이가 다들 나보다 어리고 아직 비슷비슷한때라 그런지 천진난만하게 대해주었다. 그나마 그애들 덕분에 나름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애들은 이것저것 나에대해 묻기도 하고 내게먼저 다가와 말도걸어주고 했지만 나는 그애들한테 이것저것 별로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했으니 안볼께 뻔하니까...그냥 하룻밤 추억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하룻밤을 묵고 삼일장도 다 보지 않고 나는 집에가겠다고 했고 다른 어른들께 인사도 하지 않은채 올라와버렸다. 그냥 그래야 할것 같았다. 그게 편했다. 내 감정이...
올라오면서 엄마한테 은반지 하나 얻고, 차비 좀 받고, 마치 무슨 거래를 하는냥 당연하게 전주까지 내려온 댓가처럼...그렇게 또 헤어지고 말았다. 또 다시 아무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이틀동안 난 뭘 한거지?? 내일이면 또 잊어버릴거다. 레드~ 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