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2673 , 2005-01-06 13:08 |
불수종과 죄로 인해 나와 당신은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며 땅위의 권세잡은 악한 세력에 순종하였습니다.
이 악한 영은 지금도 하나님을 대항하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저들과 똑같이 죄된 본성을 좇아 행하고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대로 온갖 일을 저질렀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분노를 사는 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면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2장 1절에서 3절 말씀
나는 교회로부터 모든 사람은 죄인이며 인간에게서 아무 희망이 없음을 배워왔다.
실제로 난 사람들을 알면 알 수록 어떻게 저렇게 악질적으로 악할 수있는가에 무척 상처받곤했다.
하지만 여러가지로 비인간적이라 할 만큼 천사표의 인간들도 접하면서 그들 맘에 하나님이 없는데도 따뜻한 인간미를 속에 담고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길 줄 알며 소외된 곳에 손을 뻗고 함꼐 눈물흘리는 휴머니스트들을 보아왔다.
그럼 잠깐 헷갈린다.
믿는 자인 나도 못하는 선행을 앞서 행하는 저 뜨거운 손길이 공중권세잡은 자와 손잡고 육체의 기쁨에 순종하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그래서 내심 그래도 착한 사람들은 존재하고 하나님이라고 딱히 찝어서 믿진 않아도 막연히 하늘이라는 절대자의 섭리에 순종하는 모습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내 잣대를 헐겁게 늘려놨다.
그리고 여러 정황으로 봤을때 성경대로만 살 수 없는게 아닐까.
어떻게 나만 손해보고 나만 죽이고 나만 억누르고 살 수 있는가.
세상은 그렇지 않은데 악날한 세상에서 악날하게 살아남아야지 바보같이 밟히기만 해서야 그게 사는건가.
빛과 소금도 좋지만 역시 물에 녹아 사라지는 소금처럼 금방 존재를 들켜버리는 빛처럼 살기엔 세상은 너무 척박하다...그러니 성경의 기준을 현실에 맞춰 조금 느슨하게 유도리있게 지키자..그렇게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세상에 정의를 위해 죽는 것이 기독교인만 있는게 아니고 착한 일에 앞서는 사람이 기독교인만 있는게 아니기 떄문에 모든 사람은 죄인이란 성경의 정의가 괴롭기 까지 했다.
세상엔 나쁜 사람들도 많지만 착한 사람도 많다.
그들은 따뜻한 심장을 가지고 있으며 발로뛰는 부지런함과 손을 내밀 줄 아는 용기를 함께 가진 자들이다.
그런 사람을 볼때마다 마음에 자극이 되고 난 하나님의 사람이면서 왜 저런 용기가 없는가에 도전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동시에 저런 사랑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해진다.
매번 하나님으로 부터 공급받는 내게 없는 사랑이 저런 고아된 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다니..그 사랑의 근원지가 어디일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했으니 사랑을 실천하는것이 하나님을 믿는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은 하나님이라는 구체적인 이름을 부르진 않지만 사랑이신 하나님을 믿고 있는거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사랑은 실천해보면 가장 내게 이로운 것이란걸 스스로 깨닫게 된다.
저들은 실천으로 깨달음에 이르렀으니 이제 사랑을 베풀지 않고는 못베길 것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이 된걸꺼다.
어쨋든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든 휴머니스트의 사랑이든 사랑이다.
그럼 된거 아닌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했으니 사랑하는 사람은 곧 하나님을 믿는것이라고 알고 싶다.
구체적인 이름 여호와를 들먹이지 못해도 그 이름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치해서 믿는 사람들에게 구원이 있기를...
2004 06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