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준)
소장님께서는 원래부터 독서광이었나요?
(승효상)
네. 어려서부터 독서광이었어요. 중고교시절 독서반에서 활동했죠.
그렇지만 제가 진짜 독서를 해야 한다고 깨닫은 것은 인생 최대의 갈림길을 만났을 때였어요.
젊은 시절 저는 당대 최대였던 김수근 건축가 밑에서 촉망받는 신진 건축가로 출발했어요.
저는 서른 여덟에 제 이름을 걸고 사무실을 차리며 독립했죠.
김수근이란 거대한 배경은 사라졌고 오로지 저 홀로 서야만 했습니다.
사실 이젠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에 회사를 나왔어요.
그런데 막상 회사를 나와보니 너무 혼란스러운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승효상 건축'을 해야 하는데 그 방법을 모르겠던 거예요.
그때 저를 승효상으로 돌아가게 해준 것이 바로 책이었어요.
(구본준)
그때 읽은 책이 무슨 책인가요?
(승효상)
마티 매기드가 쓴 <다이얼로그 인 더 보이드>란 외서예요.
아직 국내에는 번역되지 않았죠.
이 책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쓴 새무얼 배케트와 조각가 자코메티의 이야기를 다룬
아주 짧은 책인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저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어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미술을 자코메티가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작업을 했는냐를 다룬 책인데, 저자는 두 위대한 예술가의 공통점이
바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거의 강박관념 수준이었다는 걸 꼽습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의 그런 강박관념이 그때 저에게 정말 끔찍하게 와 닿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 하나를 가지고도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는지 놀랐습니다.
' 아, 프로들이 저렇게 고민하는구나. 프로들이란 저런 존재구나' 처절하게 실감한 거죠
- 298쪽 -
(구본준)
그러면 승소장님처럼 자기 브랜드로 살아가는 전문인들은 일반인들과 어떤 차별점을 두고서
독서를 해야 할까요?
(승효상)
일반인의 독서와 그리 다르지 않아요. 단 한가지가 다르죠.
전문가가 다른 사람들과 달라야 하는 점은 자기 프레임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겁니다.
전문가라면 남들과 다른 분명한 브랜드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위한 책읽기를 해야하죠.
자기 프레임을 만드는 방법은 자기 분야의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건축을 하면 건축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자기가 영업을 하면 영업의 본질이란 무엇인가?'
이걸 진짜로 고민해봐야 합니다.
(구본준)
진짜 고민이란 말이 와 닿습니다.
과연 자기 직업에 얼마나 절실하게 고민을 해봤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번에는 본질을 고민하는 독서는 또 어떻게 해야하는지 여쭤 볼께요
(승효상)
본질에 관련된 책을 찾아야죠.
그러다 보면 책을 읽는 도중에 고민하는 버릇이 꾸준히 생기게 돼요.
잘못된 답을 얻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 고민하는 과정 그 자체가 더 중요합니다.
이런 고민이 쌓이면 자기 프레임은 저절로 생깁니다.
처음 내건 저의 건측 프레임, 곧 건축론을 세우는 데 3년 정도 걸렸어요.
- 302 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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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래서 내게 묻는다. '영업의 본질은 무엇일까?'
2. 그랬군.
<고도를 기다리며>의 황량한 무대미술이 자코메티 였다니...
그의 조각과 그 무대미술을 한번도 연관시켜 생각한적 없으나
살을 발라내고 뼈만 세워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자코메티의 <프레임>이자 <예술론>일 것이다
알베트로 자코메티 -거대한 여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