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써니>를 보고 나와 CGV압구정앞 벤치에 앉아 담배를 한대 피우는데,
오후 6시가 되어 가는데도 햇살이 눈부셨다.
압구정역 앞을 오가는 sunny한 청춘들을 보면서도
터널처럼 암울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참 좋은 때구나.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라는 라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영화는 나미(유호정)가 암으로 죽어가는 학창시절 친구 춘화를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며 시작된다.
춘화는 그녀에게 학창시절 서클 <써니>의 멤버들을 만나게 해달라는 부탁을 한다
멤버들을 찾으면서, 잊혀졌던 기억들이 호출되고
영화는 스물 몇해의 시간차를 두고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
나미, 춘화, 장미, 금옥같은 이름으로
학창시절의 그녀들과 40대의 그녀들을 매칭시키고
그 변모에 낄낄대게 되는 것이 이 영화의 재미지만,
동시에 40대의 그녀들이 (혹은 내가) 잃어버린 빛이 무엇인지를 묻게된다.
나를 떠난건 우선 젊음이겠지만,
함께 떠난 것들은 위태로움, 예민함, 불안같은 감성들이고
아마 그 것들은 "성장통"을 만드는 한 부분일 것이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라고 말한 이는 시인 함민복이다.
소년이 어른이 되는 경계쯤에서 찾아오는 것이 성장통이고,
지나보니 그 통증은 꽃처럼 아름답더라.
어쩌면 이제 내가 만들 수 있는 마지막 아름다움은
어른 나미역의 유호정 같은 깊고 따뜻한 눈빛이겠지만
저자거리의 내 삶에 그 깊음은 아주 잠시 찾아오고,
그마저 언제 나를 찾았는지 아득하다.
학교에서 총검술 16개 동작을 가르치던 시절에 학교를 다닌 나로써는
<말죽거리 잔혹사>같은 영화가 더 사실적이고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나도 역사가 있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영화의 메시지는 따뜻하고
오래만에 듣는 보니엠의 sunny, 조이의 Toutch by touch는 여전히 흥겹고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