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사랑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해 본 것이 언제였던가.
아마 초등학교 5,6 학년 때였던 것 같다. 7년쯤 되었지.
살아온 날이 얼마 안 되니 이만하면 꽤 오래됐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누군가를 사랑한 적도, 사랑한다고 생각한 적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도 없다.
왜 나는 사람을 사랑하는 기능을 잃었는가?
아마 아버지 때문일 것이다.
아버지는 늘 나를 못살게 굴었다. 어렸을 때부터, 지독하게.
그러면 나는 늘 울면서 부탁했다. 그만하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다 널 사랑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속으로 외쳤다.
'사랑한다면 아껴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무슨 사랑이야!'라고.
사랑은 사람을 부드럽게도 하지만 때로는 잔인하게도 만든다는 것을
나는 너무 어렸을 때 깨달았다. 사랑의 양면성 내지 이중성을.
사랑한다면서도 밉고, 사랑하는데도 계속 뭔가를 바라게 되고 내가 바라는 것을
해주지 않으면 금새 싫어지고, 그러다가도 다시 좋아지는 그 사랑의 과정을,
나는 아주 어렸을 때 깨달았고, 불행히도 그 매커니즘을 증오하게 되었다.
사랑한다면 무조건 아껴주어야지, 왜 아프게 해? 왜 울게 해?
그게 사랑이야? 라고 소리 치면서.
그 후로는 아예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도 누군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좋다가도 싫은 것이 사람 마음이지만
나는 그것을 참을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어느 순간에는 싫어한다는 것을,
상처를 준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예 처음부터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으면 싫어해도 죄책감이 없다. 나 자신을 혐오하지 않아도 된다.
너를 사랑하긴 하는데 너 미워.
너를 사랑하긴 하는데 너 짜증나.
너를 사랑하긴 하는데 너 왜그래?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만 남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하루 더욱 내 정신의 밑바닥으로 들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더욱 더, 더욱 더 근원적인 나의 모습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