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나 시사회에 다녀왔다.
영화 홍보 보고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개봉하면 꼭 봐야지-고대하고 있었는데
시사회 이벤트를 하길래 몇 군데 신청했다. 네이버 당첨.
학교 끝나고 도서관에서 DVD좀 보다가 지하철을 타고 서울극장으로 갔다.
가서 느꼈다. 시사회란 '둘'이 오는 것이구나. 혼자 온 것은 나정도인 듯 했다.
시험 기간이기도 하거니와 달리 같이 가고 싶은 사람도 없고 같이 가고 싶은 친구는
재수중이고 해서 그냥 혼자갔는데. 다들 둘이서 온 모양이었다.
약간 민망하다. 이럴 때 내가 잘 쓰는 방법이 있다.
상황 설정.
같이 오기로 한 친구가 있었는데 따로 온 거다.
그런데 그 친구가 극장을 못 찾아서 못 오거나, 아니면 약속을 갑자기 취소 했거나.
이 경우에 혼자 있는 거나, 같이 올 사람이 없어서 혼자 있는 거나
겉으로 보기엔 똑같을 것이기 때문에.
그러면 이제 곧 마음이 편해지지.
좀 미련한 것 같긴 하다. 그냥 아무나하고 같이 가면 될 것을.
아무튼 한 10분쯤 기다리다가 영화가 시작되었다.
불이 꺼지자 저런 설정 따위는 필요 없었다. 안정감.
영화는 기대에는 못 미쳤다.
2살 때부터 북극(남극인가)에 살면서 전직 CSI요원인 에릭에게 살아남는 법을
훈련받은 한나. 사람을 죽이는데 아주 능숙한 킬러지만 순수하다.
나는 그런 한나의 개인적인 삶, 그러니까 격리된 곳에서 상대방을 죽이는 것만을
배우면서 자란 한나의 개인적인 감정이라든지 인생이 궁금했던 거였는데.
그런 것은 충분히 나오지 않고, 단지 목표물이던 여자를 죽이고 영화가 끝나버렸다.
물론 영화 자체는 오바스럽지 않고 군데 군데 웃음 포인트도 섞여 있으며
박진감 있게 만들어졌지만, 어쨌든 내가 기대했던 포인트는 액션이 아니라 '한나'라는
여자애였기 때문에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무삭제판이 있다면 감독한테 직접 가서
보여달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영화가 끝나고 다시 지하철에 앉아서 돌아오는 길.
옆자리에 연인인 듯한 남녀가 앉았다. 둘이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하는데 솔직히 조금
부러웠다. 약간 어색한 듯하기도 했지만, 좋은 감정으로 같이 영화를 보러오는 한 쌍.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감정의 배에 같이 타서 서서히 나아가는 그 커플을 보니
나는 언제까지 강가에 서서 떠나가는 배들만 지켜보고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가에 서 있으면 전복될 걱정은 없다.
하지만 결코 강을 건너서 다른 대륙으로 갈 수는 없다. 언제나 그 자리인 것이다.
아무튼 요즘은 이래저래 싱숭생숭하다.
제발, 제발
나 좀 이 징그러운 우울에서 벗어나게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