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있어
감정은 마냥 괴로운 것이었다.
행복, 슬픔, 고독, 애정, 신남 등.
내 몸의 심박을 변화시키고
목구멍과 가슴께의 느낌을 변화시키고
숨결을 변화시키고
말투를 변화시키고
내 행동을 내가 제어할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일련의 모든 감정들은 나에게 부담스러운 것이었다.
그래서 지워버리려고 애썼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고 무엇을 느끼고
어떤 감정이 피어나든
다시 0로 돌리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는
그 감정의 중립 상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 말도 잘 하지 않았고
인사도 잘 하지 않았고
수다도 떨지 않았다.
심할 때는 주변의 색들마저도
나에게는 날카로운 자극으로 다가와
심란했다.
-
그런데 이제는 뭔가 조금 변한 것 같다.
이 감정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제는 따뜻한 감정들,
예를 들어
신남, 기분 좋음, 애정, 행복 등의 감정으로
기분이 묘해질 때면
그 감정을 즐기고 싶어진다.
전 같았으면
신나서 괴로워,
행복해서 괴로워,
들 뜨는 것은 괴로워, 무서워,
라면서 다시 평정심을 찾고
중립 상태가 되기 위해 입을 다물었을 텐데,
오늘은 그러지 않았다.
사촌 동생이 졸업을 해서
가족들이 모인 자리.
자리가 모자라 이모부와 사촌 동생만 따로 떨어져 앉게 되었다.
평소에 이모부는 나에게 참 잘해주었기 때문에
어른임에도 이모부가 따로 떨어져 앉아 있는 것이
신경쓰였다.
이런 느낌,
귀찮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표현했다.
이 쪽으로 오라고 말 하기도 했고,
괜찮다고 했을 때
'내가 괜한 짓 했나?'
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음식들을 덜어서 이모부를 가져다주었다.
참 기뻤다.
.
.
그리고
남자 아이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아주 평범한,
그저 성별이 남자일 뿐인 친구와도
잘 지내지 못했다.
'잘 해주는 방법'을 몰랐다, 나는.
하지만 오늘은 대화를 하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내 감정을 표현하고
공감도 하고, 대화도 나누었다.
참 뿌듯했다.
.
.
가끔은 나도 내 자신이 신기할 때가 있다.
죽순처럼,
나도 내가 자라고 있는 것을 느낀다.
자란 다음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라면서 느낀다.
생각이 변하는 것,
나를 가두고 있던 부정적 신념들이 하나씩
깨어지는 것을 느낀다.
전화 공포증도 어느 정도는 치유되었다.
전화를 걸기 전에
종이에 내가 해야 할 말들을 모두 적어놓은 뒤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내가 전화를 거는 것은 상대방을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나에게 계속 들려주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수화기 너머의 사람들에게
주눅이 들어 있던 것이었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과 평등해지기,
이제 어느 정도는 된 것 같다.
그리고 또 하나.
간단한 안부 묻기.
내가 가장 못하는 게 이것이다.
전화를 하면 전화를 빨리 끊고 싶어서
'여보세요. 어, 지금 통화할 수 있어? 아, 이것 때문에 전화했는데. 응. 그래, 알았어. 안녕'
나의 통화 방식.
일체의 다른 대화는 없는 방식.
그리고 끊고 나서 후회한다.
오랜만에 목소리 듣는 건데, 안부라도 물을 걸 그랬나?
그래놓고 다른 사람에게 전화를 해도 역시 용건만.
그 짧은 안부의 대화가 나에게는 껄끄럽다.
감정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나의 어색한 안부 묻기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열심히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다.
내가 전화를 걸었을 때,
'어, 하나야. 반갑다, 야.' 라고 한 마디 건네주면
한 없이 기분이 좋아진다.
바꿔말하면 내가 그렇게 해주면 상대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봐도
전화를 걸면, 짧게나마 안부를 묻는다.
그것이 상대방을 수화기 너머의 불편한 대상이 아닌
진짜 사람으로 대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배우지 못했다면
스스로 조금씩 배워가면 된다.
.
.
아무튼
오늘의 결론은
세상은 알록달록 하다는 것.
그리고 그 색깔들은 따뜻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