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느끼는 것을,
느낀다.
그러니까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느끼는 것을
느끼지 말고,
느끼자.
.
.
티아레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폴론적 자아보다
디오니소스적 자아를
존중하라는 것.
좀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짜증이 나면
그것을 억압하기 위해
짜증이 나는 나의 감정상태를
억압하거나 파악하려 하지 말고
그냥
짜증을 내라는 것.
내 행동
내 말투
내 기분
지금 내 모습이 어떤 지
점검하고 체크하려 하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
순간을 통제하려 하지 말고,
순간 속에서.
.
.
오늘도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가는 길이라고 태워다 주었다.
아직 인사도 제대로 안 하는 사이인데
고맙게도 태워다 준다고 했다.
남자 둘과
나.
자의식이 발동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로서는.
나의 행동거지와 말투
시선
혼자 멍하니 있을 때의 행동 하나하나를
점검하며 통제했다.
이 행동은 저 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어떻게 하면 여자로서의 매력을 어필할 수 있을까.
(요즘 이런 것에 관심이 생겼다.)
이 사람은 이런 여잘 좋아할까
저 사람은 어떤 여잘 좋아할까
오늘의 컨셉은 어떻게 잡을까.
도도하게 갈까
귀엽게 갈까
발랄하게 갈까
무섭게 갈까.
오늘은 착하게 갔다.
그런데 착하게 행동하고 나니까
털털하고 나쁜 여자를 좋아할 것 같아 걱정이다.
웃긴 일이다.
털털하고 나쁘게 행동하고 나면
귀여운 여자를 좋아하지 않을까
걱정될 것이 분명하다.
.
.
그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들이 나에게 관심이 있나,
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것이다.
요컨데
내가 그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될 만한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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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겹다.
호수 바깥에서 돌을 던지면서
그 물결파의 틈 사이로
호수 안 쪽을 들여다보지 말고
부디
호수 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칠 수 있기를.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기를.
나는 거북이처럼 그곳을 향해 기어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