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동안 학교를 다녔다.
나의 일상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 언니 오빠들이
채우고 있었다.
나보다 몇 십 년 위의 사람인 선생님은
그저 선생님일 뿐이었다.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 갔다.
대학 사람들과도 나는 동질감을 느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그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각자 다른 목적으로
대학에 온 그들.
같은 학년이지만 나이는 다른 그들.
그러나
나와 비슷한 생각과 비슷한 관심사에 의해
대학에 진학한 그들과는
쉽게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때 친구들보다도
더 동질감을 느꼈다.
.
.
대학을 휴학했다.
그리고 아울렛 안에 있는 한 신발 매장에서
신발을 파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13년 동안 동질감을 느끼던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나와는 전혀 동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에
온전히 속하게 되었다.
이질감이
장난이 아니다.
어떻게 친해져야 할 지도 모르겠다.
나와 친해질 수 있는 사람들인 지도
솔직히
잘 모르겠다.
-
사람이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해보지만
어떻게든 이질감이 느껴진다.
뭐라고 할까,
나와는 생활 방식
사고 방식
삶의 목표가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가까워지기가
꺼려진달까.
가끔 이야기를 나눠도
'많이 팔았어?'
이런 질문들.
나에게는 낯설다.
그리고
꺼려진다.
-
이야기를 나눌 때
내가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하면
분위기가 이상해지고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가령,
학교를 왜 휴학했냐고 하면,
'대학에 다니는 이유를 찾고 싶어서.'
'앞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라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또
앞으로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사회적 기업이나 대안학교나, 심리 상담소나 그런 일이요.
시골에 가서 살고 싶어요.'
뭔가 이런
일반적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면,
나를 낯설어하지나 않을까
실제로 그런 경험을 많이 해봐서
이번에도 지레
겁을 먹는다.
지금 같은 매장에서 일하는 언니와
대화할 때도
너무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으려
의도한다.
대화가 갑자기
'응?'
하고 붕 떠버리기 때문이다.
.
.
그게 걱정이 되어서
먼저 입을 열지 않는다.
뭐 딱히
답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냥
친해질 수 있으면 친해지고
만약 친해질 수 없다면
친해지지 않으면 그만이다.
다만
오만과
편견으로
인간관계의 가능성을
닫지는 말자.
내가 생각하는 삶의 방식이
그들이 생각하는 삶의 방식보다
조금 더 진지하고 조금 더 착하고
조금 더 의미있다고 생각하면서
'오만'하게 굴지 말자.
사람은 나름대로 각자의 삶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와는 다르다고
자연스럽게 '그들'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지금의 '편견'을
되도록 희석시켜보자.
어쨌든 다들
'마음'을 가지고 있는
같은 '사람'이다.
'생각'을 나눌 수는 없어도
'시간'과 '마음'은 나눌 수 있는
'인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