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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일기 한줄일기 내일기장
李하나
 Release   trois.
조회: 2386 , 2013-08-23 21:44



아빠는 정상의 범주 안에 두지 않기로 했다.
제대로 인격이 형성된 사람이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들을 아빠는 많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물론 
세상에는 아빠 같은 사람도 많다.
하지만 정상은 절대적인 게 아니다, 어차피.
다수인게 정상인 거야.

아빠는
소수다.
소수의 사람인 그를
다수의 기준으로 아무리 평가하고 재단하고
이쪽으로 끌고 오려고 해봤자
되지 않는 일이다.

.
.


그렇게 생각해놓고 보면 
더 이상 매달릴 이유도 없다.
그러니까
나에게 했던 행동 자체에 대해서는
백번 화를 내도 마땅하지만

'어떻게 아빠가 그럴 수 있어'
라는 울부짖음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는 뜻이다.

내가 백 번 그 사람한테
아빠 노릇을 하라고 말해봤자
그 사람은 자신을 아빠 이전에 자기 자신으로 본다.

나한테 그 사람은 아빠로 다가왔고
아빠로 같이 살았지만

그 사람한테 자기 자신은
아빠이기 이전에 한 남자였고,
한 개인이었다.



아빠라는 틀 안에 가두어놓고 평가해봤자
괴로워지는 것은 나일 뿐이다.
여기서는 풀어주자.
아빠따위는 없다고 생각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냥 
'나를 성폭행한 사람'
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를 성폭행한 나쁜 아빠'가 아니라.




더 이상 아빠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면서
'어떻게 아빠가 저래'
라고 억울해 하는 것도 참 웃긴 노릇이다.

아빠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쁜 아빠,
라고 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
.


나한테는 아빠가 없다.
왜냐하면 아빠가 될 사람이 아빠이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애초에 없는 아빠더러 아빠가 되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있었으니
내 목만 아프고 그 사람에게는 들리지도 않았던 것이다.

나는
아빠에게 울부짖을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상대에 대해
화를 표현하면 그 뿐이다.

나 자신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나는 불쌍한 딸이 아니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 자신 뿐이다.



응.
넌 나에게 똥을 줬어, 이 새끼야.
싸대기를 한 대 맞아야지, 그럼.
그냥 이렇게 덮어두고 지나갈 순 없지, 암.
뒷통수 조심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