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니까 계속 옛 술자리 생각만 난다.
졸업이 임박해서
연극과 교수님과 했던 한잔.
아무 말 없이 한잔 들이키시고
한참을 그렇게 앉아있다
또 한잔 들이키시고
"야. 내 일년만 따라다녀라. 일자리 구해줄게"
그리고는 또 한잔 들이키시고...
꿈을 찾아 달려드는 부나방들이
가장 몰려든다는 예술, 연극
고생길 파 헤치든 중도에 포기하든
제 갈길 알아서 가는 제자들보다
글쟁이도, 연극쟁이로도 못 쓸
이 잡놈도 그래 제자라고
혹여나 제 길 못찾고 방황할까
마음 써 주시던 교수님
하고싶은 공부 실컷 한다고
인생준비 못하고 나동그라져서는
당장 돈은 벌어야겠고
뭐 해서 돈 벌지는 아직도 모르겠고
대학물만 먹으면 되는 학습지 6개월
친인척 빨로 들어갔던 생산관리 6개월
프렌차이즈 식당 주방직원으로 6개월
이래저래 백수질 일년쯤 하다보니
졸업한지도 삼년째
나이로는 조만간 서른
이룬 것은 내 몸 누일 월세방 보증금 얼마.
가방하나 들고 온 것 치고는
늘어날 대로 늘어난 지름신의 흔적들.
식당 주방에서 일해서
고기 좀 굽고 밥은 좀 볶았지만
라면물, 밥 물은 아직도 모르겠고
생산관리라고 해서
스티로폼 박스에 테이프 좀 둘렀었나?
아님 냉동고에서 플라스틱 박스 좀 쌓았었나?
학습지 하면서
애들이랑 잘 놀아준다고
그래서 애들이 학습지를 안 푼다고.
그때 교수님 따라 갔어도
별다른 일 있었겠나
어차피 최대 육개월, 최소 육개월
엉덩이도 가볍고 가려움도 잘 느껴서
어디 앉아서 버티기만하면 좀이 쑤시는데
모를 일이다.
걸어온 길에는 흔적이 남아
후회와 아쉬움이 묻어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