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듣다가 문득,
한 가지를 깨달았다.
나는 딱히 심리학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이론들을 나한테 적용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수업 시간에 사회 이론에 대해서 많이 배우게 되고,
그걸 나한테 적용하다보면 꽤나 명료하게 설명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일 뿐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 지는 모르겠으니
도구주의나 다를 바 없지만,
과학이란 결과를 바꿔내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라고 했고,
내가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내 행동을 바꾸는 데 성공한다면
그거야말로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나 싶다.
장황했는데,
어쨌든 얼마 전에 개방체계/폐쇄체계라는 개념이 나왔다.
중고등학교 시절 과학 시간에 간단하게 배웠었던 것 같은데,
사회과학 방법론 시간에 다시 배웠다.
폐쇄체계는 말 그대로,
원하는 인과적 힘을 선택해서 조건과 상황을 설계하고
그 이외의 힘과 조건들은 작용하지 않도록 차단한 상태를 의미한다.
개방체계는 선택된 몇 가지 힘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바깥의 환경이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는 상태다.
흔히 폐쇄체계는 실험실이라고 할 수 있고,
개방체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폐쇄체계를 만들어 사고하고, 실험을 할 필요가 있고
그렇게 해서 내려진 결론을 개방체계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학문적 결과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라고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그 말을 듣다보니,
내가 나 자신에 대해서 정확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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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 하루에, 내 삶에,
내가 의도하거나 예상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좋다.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내가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예상치 못할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예상'하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나는 나 자신을 공부하는 것에 관심이 많고
나름대로 여러 방법과 지식을 써서 자신을 분석하곤 한다.
그런데 거기에 다른 여러 조건들이 껴버리면
알아내기가 복잡해진다.
가령,
나는 내 감정 상태를 알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래서 지나치게 사람들과 감정 교류를 하는 것을 피한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하루에 일어나버리면
나도 나를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리니까.
그런 상태는 싫다.
내가 왜 사람들과 겉핥기 식으로만 지내려고 하는지,
갑작스런 약속들을 왜 싫어하는 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는 나 자신을 폐쇄체계로 만들어놓고
연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최대한 외부 자극을 줄였어야 했던 것이고.
한 마디로
나 자신을 정신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냉동'시켜 놓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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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과정은 충분히 필요했던 일이다, 이제까지는.
그러지 못했다면 내가 지금 여기있을 지도 잘 모르겠고,
이런 모습으로 있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이해하고
어떻게든 해보려 노력하는 과정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찾았던 것이다.
휘말리지 않는 방법.
가장 덜 다치는 방법.
생선을 운반하는데
얼마나 걸릴 지도 모르겠고
날씨가 어떨 지도 모르겠고,
무슨 일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더울 수도 있고,
벌레가 많은 곳을 지나갈 수도 있다.
물고기를 가장 원상태에 가깝게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은
얼리는 것이다.
냉동은 '보류'와도 같다.
온도를 낮춘다는 것은 원자들의 충돌 횟수를 줄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자의 충돌 횟수가 줄어든다는 것은
별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과 같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에 별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살아옴으로써
나 자신의 인생을 잠시 보류시켜왔던 것이다.
고통으로부터,
파탄으로부터,
죽음으로부터.
그렇게 조심조심 냉동상태로 14년을 살았던 나는,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해 해동된 생선처럼,
이제 조금씩 해동이 되어가고 있다.
생선을 상하게 만드는 환경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제 내 인생에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나는 그것을 살아낼,
다뤄낼 준비가 되었다.
친구와 싸울 수도 있고
스트레스 받는 일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연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욕을 먹어도 하루 쯤이면 기분이 회복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 내 맘대로 되질 않아 의기소침해져도
반 년이면 훌훌 털 수 있을 것 같다.
그 모든 것들이 내 인생의 태엽을 엉키게 만들 것 같지 않다는 말이다.
하지만,
며칠을 얼려놓은 고기를,
지금 당장 먹고 싶다고 1분만에 녹일 수는 없는 것처럼-
나도 14년을 얼려온 나 자신을 순식간에 녹일 수는 없다.
잘 보존된 나는 천천히 따뜻한 외부기온과 만나
서서히 녹아갈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녹고 있다.
물론 얼린 고기를 전자레인지에 넣거나
열을 가하면 더 빨리 녹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노력을 할 것이다.
따뜻한 사람, 좋은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날 것이고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이고
의미 있는 일들,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할 것이다.
내 인생을 가꾸고
햇볕을 쪼여서
더 빨리 녹을 수 있도록.
그러나,
녹지 않는다고 화내지 않을 것이다.
녹지 않는다고,
애초에 내가 이렇게 차갑나보다,
내가 원래 이렇게 딱딱하나보다, 고
섣불리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지금 아직 덜 녹은 상태인 것 뿐이다.
다 녹는 데는 얼려왔던 시간 만큼이 걸릴 수도 있다.
다만,
언젠가 녹을 수 있다는 것만 알아두자.
상온에 놓인 얼음은 언젠가 반드시 녹는다.
너무 꽁꽁 얼어서 녹는 속도가 느리다고 할 지라도,
매 순간 그 얼음은 녹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 녹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지금 최선을 다해 녹고 있고
계속 녹을 것이다.
가장 중요하 것은
나는 나를 지켜냈고
잘 보존되었다는 것이다.
그 사실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