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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하나
 모닥불   neuf.
조회: 2009 , 2019-02-22 23:23


요즘은 초연하다.
생각하는 버릇을 고쳤기 때문일까.
언어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끊어내는 연습을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다(=어떤 일이 떠올랐다)
그러면 거기에 대해서 곧바로 어떤 해석이 시작된다.
가령 오늘 내가 했던 어떤 행동에 대한 곱씹음이든,
전에 느꼈던 분노에 대한 생각이든-
떠올라서 생각이 시작되자마자
30초~1분 이내에 생각을 끊는다.

전에는 cut을 사용했으나 요즘은 '먹금'을 자주 쓴다.
먹금은 인터넷 용어이다.
병먹금이라고,
관종들에게 관심을 주지 말라(먹이 금지)는 뜻인데
나는 내 자아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뜻으로 사용한다.

머릿속에는 항상 생각이라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감각 데이터는 산소와 같고
언어는 장작과 같다.

산소가 있는 한 불은 꺼지지 않는다.
감각 데이터가 입력되는 한 생각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에 휘둘리지 않는 방법은 있다.
장작을 던지지 않는 것이다.
언어는 장작과 같다.
나는 내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잔상들에 반응하고 있을 뿐이다.

어떤 이미지가 떠올라 거기에 대해 언어로 반응하고 나면
그 언어에 대해 또 다른 언어로 반응을 하게 된다.
이 중 대부분은 그다지 필요 없는 것들이다.

하나마나 한 걱정들,
이미 지나간 것들에 대한 고뇌,
내가 답을 알 수 없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에 대한 고민 등이
타닥타닥탁-
언어라는 장작을 먹이 삼아 활활 타오른다.

화르륵,
하고 불이 타올랐다면
그저 바라보면 그만이다.
장작을 던지지 않으면 이내 사그러들게 되어 있으므로.

.
.

요즘은 초연하다.
나는 살아있으므로 나의 마음 속에는 항상 불이 타오르고 있다.
그러나 이 불을 더 타오르게 할 것인지 
아니면 잦아들게 할 것인지는 내게 달려있다는 것을 이제 안다.
장작을 더 던져 넣을 지 말 지,
어떤 장작을 넣을 지,
불쏘시개로 쑤시거나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넣을 지 말 지
모두 나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