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화된 신"이라는 책을 읽었다.
옮긴이의 말에 쓰듯 "'신'이라는 개념의 역사"를 짚는 저자의 추적을 따라가며,
무수히 많은 잊힌 역사들이 아쉬웠다.
책에서 다룬 대로 신적 개념이나 신앙에 대해서라고 한다면
기록되거나 전승되지 못한 것들,
기록되었지만 온전히 해석되기 전에 훼손된 것들,
기록되어 남아있지만 해석의 단서가 부족한 것들.
그리고 내게 있어 신적인 것은 영원성이었다.
'나' 혹은 '자아'라고 하는 것에 본질이나
생을 초월하여 불변하는 무엇(예를 들면 영혼)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없다고 안다.
있다고 한들 그것의 존재(혹은 존재의 당연성 내지 필연성)가
결코 인간의 인지와 이해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의 언어로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했다.
그 단서로 떠오른 것은 라이프니츠의 식별불가능자 동일성 이론이었다.
불변의 진리도 불변진리적 명제도 없는 것으로 안다.
그것을 확고히 승인한 순간은 더욱 구체적으로 기억한다.
"101 great philosophers"라는 책을 읽던 중이었다.
그렇게 똑똑하고, '진리', '만물의 이치', '세상의 원리'라는 문제에
일생토록 진지하던 사람들의 결론이 왜 다 제각각일까, 를 생각했다.
Ouf... C'est comme la philosophie en soi.
이후 접한 미셸 에킴 드 몽떼뉴는 내게 있어 선지자였다.
그러나 인류사가 미래에 '영원성'이라는 것을 자신의 속성으로 획득할 수 있는
가능성을 떠올렸다.
그것에 기여한다면 내가 이미 없고 잊혀도 영원성을 지닌 무엇의 일부라는 명제가
영원해진다는 것을 생각했다(불변진리와는 다르다).
영원성은 많은 예술가의 화두였다.
영원히 남을 작품을 남기고자 많은 이들이 열망했다.
그들은 인류사가 영원할 것이라 믿었을까?
그 '기여'의 내용과 기전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활발히,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하며 세상에 영향을 미치며
그것의 인연의 고리가 언젠가의 영원성에 닿을 것이라 믿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에 대한 태도이고 처음 밝히는 나의 개인적인 신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