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가장 친한 친구, 아니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하는 친구와 점심을 먹고 왔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기 시작해서, 햇수로 6년이 된 친구다.
내가 사람을 잘 좋아할 줄 몰랐던 시절, 나에게 먼저 다가와주고, 나를 가장 친한 친구라고
좋은 친구라고 말해준 아이.
그래서 나도 모르게 나도 그 친구가 나랑 가장 친한 친구라고 정해놓고 있었던 것 같다.
자주 편지를 주고 받았던 우리.
그 친구는 항상 편지의 시작과 끝을
'나의 가장 친한 친구', '평생을 함께할 친구', '사랑하는 친구' 등등으로 채워놓곤 했다.
처음 보는 이런 표현들에 나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그 친구가 나를 그렇게 생각해주는 그 마음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서
나도 그렇게 적어서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지금껏 그 친구와 지내면서,
정말로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몇 번인가 싶다.
가장 편하고, 아무 때나 불러낼 수 있고, 이 친구라면 평생 연락을 할 것 같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정작 가장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지는 않는다.
물론 큰 일은 말한다.
부모님이 이제 이혼을 하셨다든지, 뭐 그런.
하지만 나 자신과 관련된, 내가 요즘 어떤 걸 느끼고 있다든지
뭘 하고 싶어졌다든지 하는 얘기를 하는 게 편하지는 않다.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 무언가 말을 한 마디 할라 치면
바로 그와 관련된 다른 이야기나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물론 내가 그 친구의 이야기를 얼마나 잘 들어주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얘기를 하기에는 편한 친구가 아니다.
그래서 같이 있으면 나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내 주변에서 일어났던 일을 주로
이야기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소재는 금방 고갈되게 마련이다.
이미 오랜 시간 같이 지냈기 때문에 딱히 새로이 할 이야기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 친구와의 관계는 미묘하다.
어떨 땐 정말 좋은 친구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정말 내가 이 친구와 가장 친한 것이 맞나,
그 친구가 그렇게 생각하고 나에게 그렇게 얘기하기 때문에 그렇게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오래 떨어져 있어도 이 친구는 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내가 보고 싶은 건 다른 친구다.
그 친구를 만나면 내가 요즘 어떤 기분이라든지 어떤 일이 있다든지 하는 것을 편안히
말할 수가 있다. 물론 부모님의 이혼 같은 큰 일은 말할 수 없지만.
사소한 이야기들은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들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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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되서 너무 편해져서 감흥이 일지 않는 건지.
이제는 만나면 아무런 할 얘기도 없어진다는 그런 오랜 친구의 단계로 접어들어서 그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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